담배 연기 사이로

피에르 부아스리, 스테판 브랑지에 - 『담배: 필터 없는 보고서』

by오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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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워본 적 없다. 그렇게 말하면 담배 연기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내게 늘 되묻는다. 끊은 거야? 아뇨, 아예 안 피웠습니다. 연신 내뿜는 연기에 반쯤 가려진 얼굴이 말한다. 잘했어. 에... 같이 잘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 연기 뒤로 미소가 보인다. 해봤는데 잘 안 돼. 서서히 사라지는 미소는 마치 채셔캣 같은데, 콜록콜록.


금연구역 앞은 늘 흡연자들로 북적거린다. 무엇이 먼저였는지 과연 아는 사람은 있을까. 향긋한 담배연기 하나가 말한다. 예전엔 천장이 다 누렇게 되었다지. 너구리굴이 눈앞에 펼쳐진다. 멋진 사람들이 그곳에서 예술적으로 천장을 물들이고 있다. 나는 상상 속에서도 콜록거린다. 다른 연기가 말한다. 여기까지 없어지면 어쩌지? 나는 그 바로 옆 천장이 설치된 흡연 부스를 바라본다. 한산하다. 모두들 자기 옷에 밸 냄새를 걱정한 건지 그 안으로 들어가길 망설인다.


건강 이야기는 늘 하지만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건 질병이 임박할 때에나 체감되는 듯했다. 대부분은 냄새, 그리고 시선 이 두 가지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간접적인 거지. 실제로 담배가 슬롯에서 본격적으로 공격받게 된 건 간접흡연을 하지 않을 사람들의 ‘자유’와 흡연의 자유가 부딪치면서부터라지. 그전까진 담배는 자유의 영역일 뿐,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상품이었다. 그 정도가 되어서야 눈치를 좀 보게 된 것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고. 바닥에 침과 꽁초가 수북하다. 이건 좀 눈치를 봤으면 한데.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비우며 수십 분씩 사라지는 사람들이었다. 종종 사무실에, 편집실에 덩그러니 남아있다 보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결정들이 이루어지곤 했다. 역사는 금연구역에서 이루어지는군. 그게 싫어서 어릴 적엔 간접흡연을 애써 자처했다. 물론 지금은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는 생각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안 나가거나 하지만. 나가서 뭘 듣겠다기보단 그냥 이것도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거다. 나도 엉덩이 떼고 쉬고 싶다고! 그렇다고 피는 사람이 다 나쁘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도 일종의 포로인 셈이지.


왜냐고? 끊겠다는 소리는 입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연기가 되어 하늘로 뭉게뭉게 퍼진다. 누구는 오늘부터, 누구는 일주일, 누구는 한 달, 그러다 연 단위로 끊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 근성을 칭찬하는 담배연기들이 자욱해진다. 나는 다시 손을 휘휘 젓는다. 어쩌다 이 끊기 중독에 빠지신 겁니까. 너도 잘 알잖아. 전자담배에서 툭 떨어져 나오는 필터와 함께 말이 쏟아져 나온다. 피우려고만 하면 피우기 쉽다는 걸.


군대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아니 집에서부터 담배는 늘 내 옆에서 어떤 가능성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영원히 불화의 원인으로 내게 남아 있었다. 부부싸움의 원인이었고, 학교폭력의 결과물이었고, 부조리의 우회로였고, 밀실의 상징이었다. 그게 싫어서 의식적으로 거부했을 뿐, 그 어떤 중독물질 가운데에서도 이만큼 접근성이 좋은 게 있었을까 싶어진다. 늘 쌌고, 어디서나 팔았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어도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사치에 가까운 현대인에게 그 사치를 제공해 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 일방통행길이 펼쳐지는 것이다. 집에 도착한 『담배: 필터 없는 보고서』(피에르 부아스리 글, 스테판 브랑지에 그림, 그림씨, 2026)를 훑어보니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로비, 광고, 그리고 부적절한 전문가들의 처신이 한데 모여 만들어 낸 이 중독성 높은 화학물질의 시작과 지금을 꽤 냉소적인 유머로 다룬 그래픽 노블인데, 보다 보면 촘촘하고 꼼꼼한 빅 타바코(대형 담배사업자들)의 전략에 한 번도 담배를 안 피워 본 사람마저 끊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해 버릴 정도다. 담배를 피우게 만들기 위해 들이는 기업의 심리-정치 전략은 의도적으로 '개인'의 자유라는 외피를 뒤집어쓴다. 그러기에 니코틴 중독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 의지가 부족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지면서도 자포자기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예정된 전투에서 패배한 이들은 ‘덜 위험한’ 혹은 ‘더 건강한’ 담배를 찾아 자신을 위로한다. 그래도 이것이 내 마지막 저항인 것이니.


이 바카라의 미덕은 담배회사들이 1492년 식민지배와 함께 유럽으로 수입된 의식용 풀인 담배를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공간 속으로 밀어 넣었는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어떻게 각인시켰는지, 담배를 반대하는 과학자들과 시민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좌절시켰는지를 '필터 없이' 보여준다는 데 있다. 소비자를 찾기 위해 여성 해방 물결에 기대어 흡연과 자유를 결부시키는 사례에서부터 미래의 구매자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기법 등 혀를 내두를 기법들을 감상(!)할 수 있다.(소비와 해방을 동일시하는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유구하다) 이 과정을 훑다 보면 비단 담배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중독되지 않으면 소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품들이 얼마만큼 다각도로 정교하게 세공되어 우리에게 하나의 ‘문화’로서 제공되고 있는지도 유추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바카라의 맨 뒷부분엔 그림 하나 없는 금연 실천 가이드도 있다. 꽤 진지하다. 물론 바카라 한 권 본다고 피우던 사람이 갑자기 안 피우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바카라 하나 정도는 읽어보고 오늘도 담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가까운 누군가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그 담배 옆에 가져다 놓을 수는 있을지도.


바카라을 덮고 나니 눈앞에 다시 담배연기가 피어오른다. 형 이거는 무슨 향이죠? 뭔가 과일 향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그 향이 그 과일 향이라는 데 동의하지 못했거나, 과일이 그 담배 연기를 정당화하는 게 못마땅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정당화를 넘어서,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올까. 그때까지는 나도 그 연기들 속에 있게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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