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채우는 삶

by자봉

​장동면 북교리 , 서너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그 외딴 산골 마을이 내 인생의 출발지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그 깊은 골짜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지금 돌이켜보면 '결핍'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였다.

배가 고프면 산열매를 따 먹고, 목이 마르면 냇물을 마시던 그 시절, 나는 세상이 이토록 넓고 복잡한 곳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사방팔방 꽉 막힌 시골 아이가 힘든 농촌과 오지 산골이 싫어 대도시가 얼마나 그리웠기에 무작정 고향을 떠나 읍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6년간의 자취생활과 ​학교 교문을 들어설 때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골 소년에게 도시는 거대한 장벽 같았지만,

왜소한 체구에 숨죽이면서 살아왔던 학창 시절의

그 장벽을 넘는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당시의 나는 남 앞에 서서 말도 못 하는 내 성적인

성격에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부단히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채워야만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함, 그것이 내 젊은 날을 지배하던 에너지였다.

가진 것이 없어 산전수전 다 겪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공직에 입문하여 초등학교 죽마고우 동창들의 빚 보증을 서너 번 서주었다가 그들이 사기를 치고 도망가고 잠적해 버려 월급에 압류가 들어오고

삶이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퇴직하여 다시 시험을 치러 시작한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우체국과 철도청 동사무소와 여러 구, 시청을 거치며 수많은 민원인을 만났고, 행정의 최일선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정바카라을 집행했다. 행정가로서의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법규와 절차라는 틀 안에서 '번듯한' 말보다는 '반듯한' 행동을 보여야 했기에,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려야만 했다.


​때로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고, 때로는 오만한 권력의 요구를 지혜롭게 비켜가야 했다. 불만은 위만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한 탓이며 오만은 아래만 보고 위를 보지 못한 탓임을 현장에서 몸소 체험했다. 민원인의 아픔을 아래에서 살피지 못할 때 행정은 독선이 되었고,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위로 우러러보지 못할 때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웠다.


​퇴직 후 행정사라는 새로운 명함을 가슴에 달고 두 평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지금, 나는 비로소 과거의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채우기' 위해 애썼는지 깨닫는다. 이제는 민원서류의 글자 하나를 고치는 일보다, 그 행간에 담긴 의뢰인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는 일에 더 마음이 쓰인다.


​이제는 96세 고령의 아버지를 모시는 아들이자, 가문의 대소사를 챙겨느라 고생했다

유교사상으로 정신 무장되어 꽉 막힌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종손 자격을 박탈당한 종손이다

어릴 적에는 종손이라는 자리가 때로는 버겁고 무거운 짐처럼 느껴져 너무 싫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증조부님의 호인 '신암'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새길수록 그 무게는 오히려 나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되었다.


​작은 집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선비의 정신. 바카라상에 앉아 증조부님의 문집을 필사하며 나는 비로소 겸손의 미덕을 배운다. 지식인의 미덕은 '아는 것'이 많아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두 딸들을 슬롯의 일꾼으로 키워내고, 각자의 자리에서 회계 전문가와 언론인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부모로서의 보람도 느낀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물려주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는 재산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한 사람'은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묵직한 삶의 태도다.


​요즘 나의 하루는 걷기로 시작된다. 스마트폰 앱에 찍히는 '9988' 프로젝트의 8천 보, 1만 보라는 숫자는 단순한 운동량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여전히 세상과 소통하고 있으며,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다. 스크린 골프나 당구, 탁구로 동료들과 땀을 흘리는 시간은 공직 시절 느꼈던 긴장감을 날려버리는 최고의 청량제다.


​그리고 그 걸음 끝에는 늘 '글쓰기'가 기다리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한 나의 에세이 집필은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자아를 성찰하는 수행이다. '온라인카지노 스토리'에 한 편 한 편 글을 올릴 때마다 나는 과거의 나를 대면한다. 오지 마을 산골 소년이었던 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공직자였던 나, 그리고 이제는 인생의 황혼에서 평화를 찾는 노년의 나까지.


​학문이 높다고 반드시 인격이 높은 것이 아니듯, 글을 잘 쓴다고 해서 반드시 고결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 터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내 안의 욕심을 비우고, 남의 허물을 보기보다 내 허물을 먼저 보는 지혜를 구하게 된다.


70여 년의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진 자와 없는 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공존하며 늘 불공평한 저울질이 계속된다. 하지만 어진 사람은 그 도량이 큰 나무와 같아 제 그늘로 쉼터를 제공한다고 했다. 내가 대단한 부를 쌓거나 권력을 쥔 것은 아니지만, 공직에서 익힌 지식으로 누군가의 고충을 해결해 주고 따뜻한 글 한 편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꽃이 향기로 나비를 부르듯, 나 또한 남은 생애 동안 선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위선을 버리고, 술수를 멀리하며, 매사에 정직하고 후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제 ​어느덧 일흔의 고개에 섰다. 뒤를 돌아보면 굽이굽이 험한 길도 많았으나, 그 길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비움이 주는 축복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에, 나는 오늘도 걷기 위해 문 밖을 나선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할지 모르나, 비워낼 욕심과 낮출 교만이 무엇인지 아는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살아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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