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의 의미
코로나가 기승이던 몇 년 전 어느 날, 우리 집에서는 특별한 축하노래가 울려 퍼졌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온 가족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생일 축하노래 음정에 가사를 개사해 불렀다.
전학 온 지 1년이 채 안 되었던 초등학교 3학년 막내 딸아이는 용기를 내어 반장선거에 나갔다. 공약을 연필로 써서 영상까지 찍어 가며 연습하는 딸아이를 조금은 기특한 마음으로 지켜봤었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
그날의 축하명목은 다름 아닌 막내의 '반장 낙방', 아니 '반장 도전' 그 자체였다.
가족들은 막내가 반장선거에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기특하게 여겼다. 낙방을 했지만, 도전해 봤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고양시키는 일이었나 보다. 밝은 표정으로 아쉬움을 쏟아내는 아이는 칭찬받아 마땅했다. 케이크 이벤트는 반장 낙방을 위로하고 앞으로를 응원하는 파티였다.
그날의 위로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아이는 새 학기가 올 때마다 반장 선거에 나갔다. 몇 번의 낙방을 거친 아이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결국 반장에 당선되었다. 집안의 막내라 아이 같기만 하다는 내 편견을 뒤엎고 야무지게 반장 노릇을 마쳤다. 다음 해에는 부반장까지 했다.
사소하지만 특별한 위로, 우리 가족만의 별스러운 축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축하받을 당사자가 이벤트를 제안했다. 큰 딸의 '엎드려 절 받기', 아니 '엎드려 축하받기' 이벤트는 2년 반의 학원 조교 아르바이트를 무사히 잘 마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딸아이는 대학 입학 직전인 2월에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3학년 1학기를 마친 지금까지 이어왔다. 처음에는 주말 이틀 주 2회이다가, 3학년이 되고는 일요일 주 1회였다.
학과 특성상 3학년이 되면 실습과 잦은 시험, 많은 학습량 때문에 아르바이트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딸아이는 한 학기를 더 이어갔다. 3학년 2학기 개학을 앞둔 지금, 앞으로 학교 생활에 더 집중하기 위해 이번에 아르바이트를 마무리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나는 주문제작 케이크 가게에 가서 딸이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에 레터링을 새겼다. 매일 산바카라하며 구경하곤 했던 무인 꽃집에 꽃도 예약했다.
"선물 받으시는 분이 여자 대학생이라고 하셔서 은은하고 깨끗한 느낌으로 준비했어요."
"어머나! 너무 예뻐요."
"무인 꽃집인데 마침 저를 만나셨으니, 서비스로 드릴게요."
예쁘게 포장된 연노랑 장미 한 송이를 내민 사장님은 활짝 핀 장미만큼이나 미소가 화사한 분이셨다. 사장님의 다정한 응대 덕분에 이 이벤트 준비가 더 행복하게 기억될 느낌.
처음에는 2년 반의 아르바이트 마무리가 대단한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벤트를 준비하며 돌아본 아이의 지난 시간은 단순한 시작과 끝이 아니었다. 첫 슬롯생활의 시작이자 성장의 기간이었고, 인내와 성실, 바카라임의 가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학원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버스 배차 간격이 길었다. 그런 이유로 딸아이가 아르바이트에 오가는 이동 시간에 나와 남편이 운전사를 자처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주말마다 라이딩해 주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엄마, 아빠도 너랑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것 같았어. 이제 우리도 자유네."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를 마친 딸아이를 차에 태웠다. 딸아이는 상기된 목소리로 마지막 근무의 소회를 종알종알 풀어댔다.
"마지막이라니 기분이 이상했어요. 아르바이트 없는 대학 생활도 기대돼. 더 집중해서 학점 챙기고, 이제 취업 준비도 잘해야지."
"그래, 그동안 수고했어. 그렇게 가기 싫다고 매주 징징대더니 마지막이라니 시원섭섭해?"
"끝이 좋으면 좀 미화되고 그런 건가?"
마지막 날 딸아이는 원장님, 부원장님께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학원 식구들과 나눠먹을 도넛을 준비해 갔었다.
"엄마! 원래 퇴직금이 없는데, 원장님이 나 기특하다고 예외적으로 퇴직금 챙겨주신대. 송별회도 해주신다네."
"오늘 드린 정성스러운 편지에 감동하신 거 아닐까?"
2년 반이란 시간 동안 딸아이는 어느새 학원에서 최고참 조교가 되어 있었다. 자발적 선택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느낌 때문일까? 첫 아르바이트를 짧지 않은 기간 지속했고, 앞으로 슬롯로 나아가기 전 좋은 경험으로 간직하는 딸아이가 마음 한편 대견했다.
가족들이 축하 노래를 불러 주자, 딸아이는 케이크와 꽃다발 사진을 연신 찍으며 활짝 웃었다. 꽃다발처럼 싱그럽고, 생크림 케이크처럼 보드라운 미소의 딸아이. 그녀만의 영상을 찍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삶의 마디마디마다 위로와 격려, 축하를 아끼지 않는 우리 가족이 되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