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안의 자식이 세상으로 나아갈 때

간호복과 군복, 교복 빨래를 하며

by이디뜨

"엄마! 내 한 주 동안의 피, 땀, 눈물이 묻어 있는 실습복이야. 근데 볼펜 자국이 그어졌어. 어떡해?"

"엄마가 잘 지워 볼게."

전날 밤 간호 실습을 마치고 온 딸아이와의 대화이다.

고3 아이를 일찍 독서실에 데려다주고, 주말 늦잠을 자는 나머지 식구들이 깨기 전 큰아이의 실습복을 집어 들었다.

인터넷에 '볼펜 자국 지우는 법' 하고 검색했더니, 알코올스왑으로 볼펜 자국을 꾹 누르면 적당히 휘발된단다.

알코올스왑으로 눌러서 반쯤 지워진 볼펜자국이 세탁 후 말끔히 지워지길 바라며, 실습복만 단독으로 세탁기에 넣었다. 옷감이 줄어들까 봐, 건조기능이 시작되기 전에 꺼냈더니, 실습복에서 달큼한 파우더향이 코끝에 풍겨왔다. 아침 햇살 가득한 베란다로 실습복을 가져가서 빨랫대에 널어놓고, 나는 한참을 거기 서있었다. 옷걸이를 입은 연보라색 실습복이 잔잔한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실습복이 딸아이인 양 바라보고 있으니, 내복만 입고 집을 종횡무진하던 꼬마의 실루엣이 머릿속에 스친다.

'세월이 왜 이렇게 빨라. 내복쟁이가 간호사 실습복이라니.'

새벽 실습으로 아침도 거르고 다녔을 딸아이가 집에 있는 주말 아침은 메뉴선정도 더 신중해진다. 베란다에서 나와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향하며 냉장고 재료를 머릿속으로 재빨리 가늠해 본다.




"엄마! 복귀 전에 군복 한번 빨걸 그랬나?"

"그럼 그럼. 지금 빨면 내일 바로 입을 수 있어.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복귀할 때 입고 들어갈 옷 다 내놔. 전용 양말이랑 ROKA 반팔도 다시 챙겨. 주머니도 확인하고?"

하마터면 휴가 나온 날 벗어놓자마자 옷걸이에 걸어둔 군복을 그대로 입혀 보낼 뻔했다.

세탁기에 넣기 전 아들의 군복에 코를 갖다 대봤다. 전쟁터에서 구르다 온 군인도 아니고, 세탁기, 건조기 구비 잘되어 있는 현대식 군생활을 하는 아들의 군복은 어떤 냄새일까?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아들의 군복에서는 상상 속 쩔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적당한 살결 냄새가 나는 아들의 군복을 세탁기에 넣고 표백제와 섬유유연제도 더 추가했다.

'복귀해서도 섬유유연제 냄새나면 집생각나고 좋겠지?'

이제 딱 군생활 절반을 넘겼다.

다음날이면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군대에 복귀하는 아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세탁과 건조가 다 되기를 기다려 보송하게 마른 군복을 세탁기에서 꺼냈다. 세탁된 군복은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빳빳했다. 군복을 거실창 앞에 세워둔 아들 전용 철봉대에 걸어두었다.

가끔씩 전화로 가족들 한 명 한 명 뭐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으며 아들이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내가 진짜 나라 열심히 지키고 있어."

농담처럼 말하지만 , 전방 GOP에서 복무하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맞아. 아들이 나라 지켜줘서 엄마 정말 든든해. 밥 잘 챙겨 먹고. 아프지 말고. 또 전화해."


휴가 마지막 밤 일찍 자러 들어간 아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나는 철봉대에 걸린 아들의 군복을 바라보며 불 꺼진 거실 소파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느새 성장해 씩씩하게 제 몫을 다하는 성인 아들이 그렇게 걱정되어서는 아니다. 다만, 철봉대에서 다음날을 기다리는 군복을 바라보니, 어쩐지 마음이 아렸다.




잠을 설친 6월의 첫날, 아들이 복귀하는 월요일 아침.

"엄마! 내 생활복은?"

중학생 막내의 질문에 나는 답했다.

"옷장에 봐. 빨아놨어."

나의 시간은 빨래와 걸음을 같이 한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덤덤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우성아파트 2층 베란다. 엄마가 다림질해 걸어놓은 교복 하복을 꺼내 입고 헐레벌떡 집을 나서던 내 시간이 바로 엊그제 같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