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이른 아침, 평소보다 빨리 와이퍼가 움직였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남편이 늦은 출근을 해준 덕분에 악천후에도 일찍 강의실에 도착할수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비를 맞고 오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교육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시작이 더 중요하다. 마음이 급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조금은 느긋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그때 어제 바카라에서 스쳐 지나갔던 사자성어 하나가 떠올랐다.
첩첩남남(喋喋喃喃).
작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 혹은 서로 정답게 속삭이는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비가 오면 습도가 높아진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잘 전달된다고 한다. 기압이 낮아질수록 소리가 위로 흩어지지 않고 아래쪽이나 수평 방향으로 더 멀리 퍼지기 때문이란다.
'바로 이거다.'
강의의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비를 맞으며 교육장에 오실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비 오는 날은 몸도 마음도 조금 처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오늘 같은 저기압에 좋은 점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소리입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평소보다 여러분께 더 잘 전달되는 날이라고 하네요. 첩첩남남(喋喋喃喃)이라는 말처럼, 오늘은 조금 더 가까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45분 수업, 15분 휴식.
주무관님의 요청에 맞춰 세 번의 강의를 이어갔다. 점심시간을 늦추는 교육은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시간은 철저히 지켰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공백(空白)의 발견과 채움'.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일과 육아를 함께 살아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3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사실 조금 걱정했다.
교육생 중에는 미혼인 분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아'라는 주제가 과연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강의가 끝난 뒤 예상과 다른 피드백을 받았다.
"당장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래의 내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3월 강의에서는 이미 육아지원 제도를 사용하고 있는 교육생들이 많았다. 반면 이번 7월 교육에서는 앞으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육아 관련 제도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만큼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갈등도 점점 드러나고 있다.
나 역시 현장에서 그 변화를 체감한다.
하지만 그 바카라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려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 구조를 봐야 한다.
제도를 쓰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써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얼마 전 AI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를 낳고 일하는 것의 득과 실은 무엇인가?"
결국 내가 남긴 메모는 한 줄이었다.
중요한 것은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
비 오는 날에는 소리가 더 멀리 전해진다고 한다.
오늘 내 이야기도 누군가의 마음에 조금 더 오래 닿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