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보석나무를 심었다.
겉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이 묘목은 사실 어떤 어미 나무의 줄기였다. 줄기를 잘라내 옮겨 심으면, 그 줄기가 다시 나무가 된다. 그 생명력이 어느 정도인지 나는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묘목을 심을 때 흙의 영양분도 중요하지만, 놓치기 쉬운 건 심는 높이다.
너무 바닥에 꾹 눌러서도, 너무 붕 띄워서도 안 된다. 뿌리 밑 약 2cm 정도 여유를 두고, 줄기를 살살 흔들어가며 흙이 바닥까지 고루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나 같은 초보 식물집사는 처음에 나무를 너무 높게 심었다가 흙을 다시 쏟아냈다. 전문 식물집사님의 손길로 다시 자리를 잡아주니, 흙이 그 사이로 쑥쑥 들어갔다.
이 감이라는 게 참 어렵다. 너무 깊숙이도, 너무 높이도 아닌 — 적절한 그 어딘가. 무엇이든 딱 맞는 자리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심고 나면 걱정되는 게 물 주기다.
잎이 마르면 물이 부족한 것 같아 듬뿍 주곤 하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될 때가 많다고 한다. 흙에 손가락을 2~3cm 정도 넣어봐서 바싹 말랐을 때 비로소 물을 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파리의 건조함만 보고 물을 계속 준다. 그렇게 흙이 '과습'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습이 결국 이파리를 더 마르게 한다. 흙 속에 산소가 들어갈 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식물은 물만이 아니라 산소로도 숨을 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장을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걸 자꾸 잊는다.
또 하나, 창가에 둔 식물을 비 오는 날 거실 안으로 옮기는 위치의 변화도 문제다. 과잉친절이랄까.
창가의 식물은 그곳의 햇살과 공기, 습도, 온도에 적응한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환경으로 옮겨지면, 적응하느라 오히려 더 지친다. 극단적인 환경 변화는 보호가 아니라 스트레스다.
들을수록 사람을 키우는 일과 닮았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아이 스스로 숨 쉴 틈을 빼앗듯.
눈에 보이는 것만 채워주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 재능, 자존, 고요한 성장의 시간 — 을 모르는 새 썩게 하듯.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며 자꾸 자리를 옮기다가 아이가 뿌리 내릴 기회를 놓치게 하듯.
마지막으로, 이 녹색보석나무에게 특히 중요한 게 통풍이라고 했다.
전문 식물집사님은 이 나무를 위한 전용 선풍기를 따로 둘 정도라고.
바람이 통해야 잘 사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바람이 불까. 어디에 바람이 불지 않을까.
바람이 안 부는 건 공간만이 아니다.
늘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 속에도, 쉬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지 못하는 마음속에도 바람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흐르지 않는 물은 고이고, 고인 것은 결국 썩는다.
녹색보석나무.
오늘 나는 비단 어린 묘목 하나를 심는 법만 배운 게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