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와 글쟁이들의 세계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와 싸우고 있다> 드라마가 종영되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데 글쟁이들의 무슨 찬란한 향연 같았다. 지독한 에고가 들어가고 지독한 미친 짓들이 들어가는. 어쩌면 박해영 작가의 그간의 에고를 다 풀어냈구나, 싶은 게 마음이 짠 했다.
어릴 때 문학반 활동을 하면서 글쟁이 특유의 근성(딱히 다른 표현이 생각이 안 난다) 혹은 꼬락서니들을 많이 봤다. 특히나 연애에 대한 것들. 한 사람만 사랑하면 세계관이 정착되어서 제대로 된 글을 못 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움직여야 하는 것들에 대한 표현들. 내 때는 글을 쓴다는 것은 죄다 문학이었다. 그래서 상상해야 하고 그 상상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맨날 끌어안고, 밀어내는 반복에 대한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글쟁이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 아이러니하게도 글쟁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내 안에는 그 이상한 에고들이 늘 잠재해 있다는 것을 가끔 느꼈다. 그때마다 숨이 꽉꽉 차오르는.
<모자무싸>는 영화감독이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영화 본연의 이야기 안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큰 틀은 ‘글’이었다. 제작자도 글 이야기를 하고, 감독도 글 이야기를 하고, 영화판 PD도 글 이야기를 하고, 배우도 글 이야기를 한다.
<모자무짜>에서 박경세(오정세 역)는 진부한 대사를 극복하기 위하여, 보조 작가를 찾았다. 물론 OTT에서 보조작 가와 같이 쓰면 좋겠다 했지만. 처음에는 박경세 감독은 반대했다. 왜 내가 남과 같이 글을 쓰냐고 반대했다. 그러나 젊고 밝은 기운이 넘치는 여자 작가를 면접하고는 오케이 했다. 글을 잘 쓴다 못 쓴다는 이유보다는 "감독님, 재미있어요. 감독님 최고"라는 그런 말에 솔깃했다. 그동안 글 안 나온다고 맨날 구사리만 먹고 있던 차에 만났으니 얼마나 신날까.
그렇게 박경세 감독은 그녀와 글 작업을 하면서 작업실 분위기는 미친 듯이 밝아지고. 깨알 같은 웃음이 밖으로도 나온다. 소위 정신적 바람을 피우는 거다.
박경세 감독의 결정적으로 정신적 바람이 들키는 날은 다른 감독 쫑파티 하는 날, 아내인 고혜진(강말금 역)이 나오라고 전화했을 때는 글 쓴다고 밤샘했으니 잔다고 안 나간다고. 그러나 보조작가가 문자 하니 냉큼 나왔다. 여기서 웃겼던 것은 아내가 말한 감독의 쫑파티나 보조작가가 말한 감독의 쫑파티가 같은데 냉큼 나간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쫑파티에 나타난 박경세 감독을 보며 아내인 고혜진은 반갑게 손을 흔들지만 바로 보조작가에게 간다. 당연히 아내가 있는 줄 모르는 박경세 감독.
그 이후로 당연히 부부로서 일상의 말싸움을 한다. 근데 그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또 글이다. 영수선배(전배수 역)도 박경세는 고혜진만 바라보고 있어서 모든 작품의 여자 세계관은 고혜진만 나온다고 했었다. 글쟁이들에게 왜 자유로운 영혼이라 하는지 이쯤이면 이해해야 할까.
자유롭게 글을 써야 하니 아내는 이 작품 끝내고 이혼하자고 하고, 그래야 남편이 이 현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다 보니 드라마가 죄다 ‘글’에서 시작하여 ‘글’로 끝난다. <헤어질 결심> 작가는 정서경작가와 박찬욱 감독이었다. <기생충>도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였다. <밀양>은 원작자가 이청준 작가였고, 각색을 이창동 감독이 했다. 돌아다보니 결국 감독이 어떤 형태로든 ‘글’에 관여한다.
글을 쓰는 글쟁이들의 에고를 영화감독이라는 주제로 <모자무싸>를 드라마로 녹였다. 박해영 작가는 2023년 씨네 21 인터뷰에서 <나의 해방일지>를 쓰고 글을 엎었다, 덮었다 하면서 ’ 감정의 근원을 찾는 작업‘을 계속한다 했다. 그 사이에 이선균 배우는 유명을 달리했다. 원래 쓰려던 글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했다. 이선균이 살아 있었으면 <모자무싸>가 나왔을까 싶은 게.
<모자무싸>를 통하여 나는 글쟁이들의 우물 같은 에고와 그럼에도 글을 통해, 드라마를 통해 그래도 웃고 삶을 지탱하자는 메시지를 받는다. 순리대로(?) 죽어야 한다는 황동만(구교환 역)의 대사 “아파 죽지 말고, 다쳐 죽지 말고, 스스로 죽지 말고, 늙어서 죽자”는 말에서 박해영을 만났다. 남성 작가들의 이런저런 영역표시 같은 지랄발광에서 묵묵히 다시 글을 써 준 박해영 작가에게 그냥 고마움을 전한다. 글쟁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