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권력 20

정치인이 압도하는 세상, 소멸되는 3지대의 언어

by신동일

1. 정중동의 일상을 보내던 11월 중순에 폭력과 전쟁의 기운이 너무나 불편하다고 포스팅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예지가 틀렸으면 좋았겠지만 보름 후에 무장한 군인이 국회에 투입되고 계엄령의 통치가 실행되었습니다. 북한과의 국지전도 실제로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2. 두어달 동안 추궁하고 야유하고 대립하는 광분의 텍스트가 사방에 넘쳤고 판사와 법원을 공격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폭력이 공의롭다며 방치되고 조장되고 있습니다.


3. 마침 미국의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의회폭동 가담자들을 전원 사면했습니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며 김정은 통치자와 친분이 있다고 낄낄대는 트럼프 대통령을 4년 동안 지켜볼 생각에 막막합니다.


4.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공포스럽고 공허하기도 합니다. 정치인, 혹은 정치적 인물들이 화면을 채우고 모든 말을 훔치며 세상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영웅에 맹종하는 닫힌 슬롯, 배타적이고 집단적인 원리주의 슬롯가 한없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5. 국민의 힘 정치인들을 보면 한숨이 납니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보수의 가치를 두고 고민이나 제대로 했을까요? 저들이 몇번이나 국회의원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밉습니다. 야당 정치인의 말도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냉혹하고도 일방적입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도 그러했고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인가 제겐 전혀 민주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6. 이당과 저당으로 나뉜 이항의 대립 구조에서는 밀고 당기며 서로에게 거친 말밖에 할 수 없겠죠. 지금의 구조로는 어떤 사건을 다시 만나도 폭력과 대립의 레토릭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7. 제가 정치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이원집정제든, 내각제든, 4년 중임제든 개헌조차 별 의미가 없습니다. 권력은 모여져 있고 대립 구조는 둘로 구분되어 있으니 말과 생각과 사람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슬롯적 다수는 무력하게 그들의 전쟁에 동원될 뿐입니다.


8. 다양성의 가치, 합의하고 소통하는 언어가 필요하고 이편/저편도 아닌 3의 공간이 자꾸 허락되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가장 실망한 것이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 꼼수를 부린 점입니다. 정권이 넘어가든 가져오든, 선거에 지든 이기든, 그들은 추종자를 이끄는 기득권력의 구조를 버릴 수 없었겠죠.


9. 둘 중 하나만 선택하게 하면 무슨 일이 생겨도 권력은 그렇게 유지됩니다. 3지대는 거대 양강으로부터 공격받고 소멸되죠. 양비론적 비판을 하는 자들은 조롱받습니다.


10. 생태적 구조가 허락된 곳은 균형과 공존, 차이와 다양성이 인정되는 곳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슬롯 어디나 그러한 편이지만 정치는 가혹한 반생태적 공간입니다. 거기 언어가 결코 생태적이거나 창조적일 수 없죠. 정치 담화를 연구하진 않지만 직관적인 관찰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1. 제가 하는 일은 언어에 관한 생태적 감수성과 통치성의 진면목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비판적 학술문헌으로 전하는 일입니다. 일을 많이 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이항대립의 전쟁터에서 우리가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태적 삶과 비판적 언어를 앞으로도 가르칠 것입니다.


12. 지금 세상이 쉽게 달라지진 않겠죠. 그래도 제가 선택한 인생은 말과 글에 관한 슬롯적 가치를 연구하고 전하는 일입니다. 하던 일이 폄훼되고 훼방받을 것임을 직감하지만 담담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멈추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페이스북에서 포스팅한 글입니다.)

https://www.facebook.com/iget12/posts/pfbid02Usb7bnc4AnZBT6EEJne3kyAEhFt4KuDN7AazJmZ2aRK3jGdiHJB7nRWPT99FHTPhl?notif_id=1737511516441563&notif_t=feedback_reaction_generic&ref=notif

작가의 이전글집으로 가는 길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