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00일의 썸머»를 다시 보았다.

이건 그냥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왕자를 소위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읽고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면 각각의 맥락이 사뭇 다른 의미로 해석되니 다들 한 번씩은 놀란다. 나는 이제 어린왕자보다 영화 «500일의 썸머»를 그런 관점으로 감상해 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컷 일러스트 AI 활용

맨 처음 시나리오 작가는 이 영화의 첫 시작 부분에서 지극히 사적인 메시지를 공적으로 남긴다.


이 영화는 허구의 이야기다.

누군가 연상된다면 이는 순전히 우연일 뿐이다.

특히 너, 제니 베크먼.

나쁜 X

어젯밤, 영화 «500일의 썸머»를 다시 보았다. 내 한 줄평은 다음과 같다.

어떤 관계로 규정되면
그 이전 상태로는 되돌릴 수가 없다.


인연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신중함과는 다른 것이고 운명이란 말도 나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얼마큼의 인연을 위한 수순이라고 표현하겠다.

※스포가 있습니다.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아직 안 보셨다면 영화를 먼저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썸머(여주)는 톰(남주)과 헤어진 후 새로 만난 남자에게 비로소 운명적 만남이란 걸 느낀다. 운명론을 주창하는 톰과 토론을 할 정도로 운명 따윈 없고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는 주의였던 썸머가.

톰을 거쳤기에 그다음 남자(썸머의 남편)를 만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연애라는 신랄한 과정이니까. 20대에는 썸머라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끄덕이며 보게 된다. 이건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에 관한 고찰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복수를 위한(?) 영화는 그렇게 연애라는 관계를 깊은 통찰로 그린 세기의 명작으로 남았다.

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컷 일러스트 AI 활용

톰의 시선을 중심으로 한 비선형적인 시간 전개는 두 번 이상 보았을 때 감상의 지점이 달라지는 효과를 낳는다. 톰은 자신이 그리는 썸머를 환상 안에 홀로 가두고서 만나는 기간 내내 헤맨다. 망설이고 머뭇댄다. 그녀가 정말 자신이 믿는 운명의 연인이었다면 수동적이지 않았어야 한다. 흘러가는 건 시간이 아니라 숱한 기회들이었다. 그걸 겪고 이별한 여자 썸머는 결국 읽고 있던 바카라에 관심을 보이며(교보문고 아님)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온 다음 남자를 통해 운명을 믿게 되는 아이러니.


이해할 수 없던 썸머가 이해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니 그간의 연애로써 이걸 드디어 크리티컬 매스처럼 깨달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썸머가 그랬듯이. 나에게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까?가 아니라, 올 것이다. 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뭐,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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