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에 부장님이 계셔

Y를 만났다

by김애니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냥 그런 관계. 친구가 그렇지.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감독에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Y.


Y와 나는 종교관이 같지만 성격은 다르다. 그날 만남에서 더 느꼈다. Y가 꽤 예민한 친구란 것도.


예를 들면, 오늘 나는 밥먹으러 간 식당에서 물을 많이 마셨다. 맛있어서 그랬는데 Y가 물 한잔에 행복한 나를 보곤 그 맛을 알려주겠다며 음미해줬다.


그리고 미처 갈 만한 카페를 준비하지 못해서 아무말대잔치였던 나. 나도 생각하지 못한 어떤 영역을 말로 긁어주었다. Y가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언제나.


30대 후반을 지나가는 우리의 일상은 세상 모든 곳에 계시는 부장님을 모시는 삶 그 자체였다. 어디든 슬롯생활이 끊이지 않고, 비위를 맞춰야 살아남는 세상에서 버티고 있다.


20대 때 미리 경험했다면 지금쯤 서로 하고 싶은 그것을 하면서 지내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2~3년마다 이직하며 몸값을 올려 일을 할 순간에 나는 9년을 보냈고 뒤늦게 이곳저곳 전전긍긍 중이다. 젊은 나이에 할 일을 이제 겪느라 쉽지 않다.


지금 일하는 곳이 스타트업 그러니까 성장하는 곳이라고 했더니 작은 조직이 더 힘들단 이야기를 해줬다. 그렇게 공감 자체가 귀하게 느껴졌다. 나 진짜 힘들거든 이란 말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나보다.


친구가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의 소신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길래, 묻고 싶은 질문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에 관해 꽤 긴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안정된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 순간을 회상했다. 어떤 면에서 나는 후회했고 Y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회사를 박차고 나온 걸 후회하는 이유는 조직생활의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말을 들은 Y는 당연한 거라고 했다.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하는 중인 Y. 더 나아가기 위해 요즘 하는 고민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듯싶었다.


세상엔 쉬운 게 없다고. 끝없는 영업의 길이라고 우리는 공감했다. 어쩌면 쉬웠으면 쉽고 적당히 해도 누가 해주는 그런 일은 세상에 바라면 큰 코 다친다.


또 언제 만날지 몰라 아쉬운 만남. 적당한 시간에 마스크를 먼저 쓴 친구를 보곤 우리의 헤어짐이 곧이란 걸 알았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한 행동이었지만.


오랜만에 이야기를 했고 나눴다.


한없이 한가롭고 편안한 오후를 보냈다. 거리 곳곳에도 사람이 많았다.


친구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까. 나는 또 어느 길을 향해 떠날까. 우린 또 언제 만날까. 멀어지고 좁아지는 관계들이 아쉽고 안타깝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