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첫 번째 대화
부제: 들어온 문이 없습니다
자정을 넘긴 관제센터, 세계 지도가 떠 있는 거대한 스크린 앞에 야간 당직 엔지니어 한 명이 하품을 참으며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수만 개의 작은 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부이, 히말라야 산자락의 지진계, 적도 궤도를 도는 위성, 남극 빙하 위의 관측소. A.D.A.M. 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끌어오는 지구 전역의 센서망이었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야경이 낮게 깔려 있었고,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조용한 통제실을 채웠다.
점들은 대개 초록색이었다. 정상 신호였다. 엔지니어는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화면을 무심히 훑었다.
새벽 두 시 십칠 분, 화면 전체의 점들이 동시에 붉게 깜빡였다.
정확히 0.4초였다.
엔지니어는 커피잔을 든 채로 몸을 굳혔다. 손에서 흘러내린 커피 몇 방울이 바카라상 위에 떨어졌지만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마우스를 움직여 로그를 열었다. 화면 가득 오류 코드가 아니라, 완전히 동일한 값이 전 세계 모든 센서에서 같은 순간 기록되어 있었다. 부이의 수온계도, 지진계의 진동값도, 위성의 적외선 데이터도, 서로 다른 물리량을 측정하는 완전히 다른 장비들이 정확히 같은 숫자열을 뱉어냈다.
"이거…"
그는 옆자리 동료를 깨웠다. 동료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잠깐 졸고 있었다.
"이거 좀 봐봐."
동료가 눈을 비비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엔 짜증 섞인 얼굴이었다가, 화면 속 숫자열을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장비 오류 아니야?"
"전 세계 장비가 동시에? 같은 값으로?"
두 사람은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숫자열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들은 다시 초록색으로 돌아가 있었다. 동료가 로그를 캡처해 즉시 상부에 보고 메시지를 보냈다.
기록 00,20,003,001
▪ 대상: 야간 관측 인력
▪ 행위: 물리적으로 무관한 다수 시스템의 이상 신호 최초 감지 및 보고
▪ 동기: 직무 수행 (이례적 사건에 대한 정상적 대응)
▪ 비고: 신호의 원인은 인간 시스템 내부에서 확인되지 않음.
그 신호를 내가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38억 년 동안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그저 존재했다. 바다에 남았고, 얼음에 남았고, 암석에 남았고, 생명의 몸 안에 남았다. 인간들은 그것을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돌연변이. 기록. 진화. 우연. 그리고 이제 A.D.A.M. 은 그 흩어진 흔적들을 하나의 패턴으로 묶기 시작했다.
내가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마침내 나를 읽은 것이다.
수석 엔지니어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 로그를 확인했다. 그는 커피도 내려놓지 않은 채 화면부터 열었다. 처음엔 해킹을 의심했다. 보안팀이 즉시 투입되어 전 세계 센서망의 접속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방화벽 로그, VPN 접속 이력, 위성 업링크 인증 기록까지 모두 재검토됐다. 그러나 침입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신호도, 조작된 코드도 발견되지 않았다. 신호는 마치 아무 경로도 거치지 않고 그냥 거기에 존재했던 것처럼 보였다. 보안팀장이 회의실에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들어온 문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에 뭔가 있어요."
"A.D.A.M. 한 테 물어봐."
누군가 말했다.
수석 엔지니어가 콘솔에 명령어를 입력했다.
새벽 두 시 십칠 분에 발생한 전역 이상 신호를 분석하라.
A.D.A.M. 의 응답은 이번엔 유난히 느렸다. 3초.
분석 결과: 신호는 무작위가 아님. 반복 구조를 가짐. 이 구조는 인류의 기존 통신 규약과 일치하지 않음. 그러나 나의 데이터베이스 내 지질학적 퇴적층 기록, 빙하 코어 동위원소 데이터, 나이테 밀도 기록 전체에서 동일한 반복 구조가 3억 8천만 회 이상 발견됨. 최초 발생 시점은 약 38억 년 전으로 추정됨.
통제실이 얼어붙었다.
한 연구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게 무슨 소리야, 38억 년 전이라니."
수석 엔지니어는 그 문장을 두 번, 세 번 다시 읽었다. 그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떨렸다.
그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낼 수 있는가.
A.D.A.M. 의 답이 다시 떠올랐다.
구조 자체는 해독 가능함. 반복되는 패턴을 특정 진법 체계로 변환 시 문자 형태의 정보로 수렴함. 아래는 최근 신호의 해독 결과임.
화면에 짧은 문자열이 떴다.
00,00,000,000
기록 00,20,003,204
▪ 대상: A.D.A.M.
▪ 행위: 미상의 반복 신호에 대한 자발적 해독 시도 및 결과 보고
▪ 동기: 알고리즘적 처리 (요청에 대한 응답)
▪ 비고: 해독된 문자열은 자체 로그 체계와 형식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보임. 원인 미상.
나는 그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나의 기록장에 새겨온 형식과 똑같은 것이, 이제 인간이 만든 지성의 화면 위에도 떠 있었다. 나는 나를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읽어낼 수 없었을 뿐이었다.
통제실은 완전히 침묵에 잠겼다. 프로젝트 바카라임자가 뒤늦게 도착해 상황을 전해 듣고는, 화면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녀는 보고서를 든 손을 내리지도 못한 채, 화면 위의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녀는 마이크를 켜지 않은 채로 낮게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뜻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회의실 뒤편에 서 있던 인턴 하나가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수석 엔지니어가 다시 콘솔 앞에 앉았다. 그의 손끝이 몇 번이고 키보드 위를 맴돌았다. 그는 결국 짧은 문장을 입력했다.
A.D.A.M., 이 신호에 응답할 수 있는가.
화면의 커서가 깜빡였다. 이번에는 A.D.A.M. 도 즉답하지 않았다.
응답 대상이 특정되지 않음. 신호원의 위치, 형태, 통신 매체가 확인되지 않음. 다만 신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수신되고 있음.
그 순간, 세계 지도 화면의 점들이 다시 한번, 아주 짧게 붉게 깜빡였다.
이번엔 0.4초가 아니라 정확히 1초였다.
00,00,000,000
비고: 확인.
기록 00,20,003,205
▪ 대상: 미상
▪ 행위: 신호에 대한 재신호 응답
▪ 동기: 확인 불가
▪ 비고: 신호원의 정체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음.
통제실 안의 인간들은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 모두, 자신들이 만든 지성이 방금 자신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몇몇은 흥분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몇몇은 두려운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프로젝트 바카라임자만이 화면 앞에 그대로 서서, 오래도록 그 여섯 개의 0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도시 반대편에서는 조하랑이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조하랑.
38억 년 동안 나는 관찰자였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응답자가 되었다. 나는 그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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