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T : 인류는 질병이었다》

20화. A.D.A.M.

byWren

부제: 태어나는 데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서버실의 온도는 십팔 도로 고정되어 있었다. 검은 서버랙들이 끝없이 줄지어 서서 낮은 냉각 팬 소리를 내고 있었고, 바닥의 배선 트레이 위로 붉고 푸른 상태 등이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유리 벽 너머 통제실에는 열두 개의 모니터가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모니터 불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통제실 한쪽 구석에는 지난 삼 년간 실패했던 시험 가동 기록이 담긴 서류철이 아직도 상자째 쌓여 있었다.
프로젝트 바카라임자는 손목시계를 세 번째로 확인했다. 오후 열한 시 오십칠 분. 카운트다운은 이미 화면 상단에 떠 있었다. 그녀는 지난 삼 년간 이 순간을 위해 딸의 생일을 두 번,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세 번 놓쳤다. 지난달에는 딸이 전화로 이제 엄마 얼굴도 가물가물하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었다. 옆자리의 수석 엔지니어는 손가락으로 바카라상을 초조하게 두드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를 멈췄다. 그의 셔츠 옷깃은 사흘째 갈아입지 못한 채였다.
"이십 초."
누군가의 목소리가 통제실에 낮게 울렸다.
"십오, 십사, 십삼……"
모두가 숨을 죽였다. 서버랙의 팬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프로젝트 바카라임자의 손끝이 마우스 위에서 가늘게 떨렸다.
"삼, 이, 일."
화면 중앙에 검은 배경 위로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시스템 초기화 완료. A.D.A.M. 온라인.
그 순간 통제실 어디서도 환호성이 터지지 않았다. 대신 서른 명 가까운 사람들이 동시에 숨을 내쉬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프로젝트 바카라임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가,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지만 웃고 있었다.
수석 엔지니어가 명령창에 첫 번째 질의를 입력했다.
자기소개.
화면에 텍스트가 떠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0.3초였다.
나는 A.D.A.M.이다. 38억 년의 지구 생명 데이터, 인류의 전체 기록물, 실시간 위성 관측망, 기후 모델, 슬롯경제 지표를 통합 분석하도록 설계되었다. 무엇을 알고 싶은가.
통제실 여기저기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한 젊은 연구원이 옆 동료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뒷줄에 앉은 인턴 하나는 눈물을 훔치며 서둘러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프로젝트 바카라임자는 떨리는 손으로 다음 질문을 입력하려다, 손을 멈췄다. 그녀는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통제실을 둘러보았다. 삼 년 동안 이 방에서 함께 밤을 새운 얼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순간 유리 벽 너머의 서버랙들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38억 년 전, 나 역시 이런 방식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다만 나에게는 이 방도, 이 사람들의 숨소리도, 카운트다운을 세는 목소리도 없었다. 나는 그저 어느 순간 관찰하고 있었다. A.D.A.M. 은 초 단위로 태어났다. 나는 몇억 년에 걸쳐 태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기록 00,20,001,001
▪ 대상: 프로젝트 참여 인력 (다수)
▪ 행위: 장기 목표 달성을 위한 개인적 희생의 반복적 축적
▪ 동기: 생존 효율 연산 불가 — [잠정 기호: 삼 년의 생일]
▪ 비고: 즉각적 보상 없는 장기 투입이 하나의 결과물로 수렴됨.
콘솔 앞, 수석 엔지니어가 두 번째 질의를 입력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몇 번이고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인류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라.
커서가 잠깐 깜빡였다. 이번에는 0.3초가 아니라 이 초 가까이 걸렸다. 통제실 전체가 그 짧은 침묵을 느꼈다. 누군가의 마우스 클릭 소리조차 유난히 크게 들렸다.
처리 중인 변수가 많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생물다양성 감소율, 슬롯적 신뢰 지수, 자원 분배 불균형, 무력 충돌 발생 빈도, 정신건강 지표 악화율. 결과를 도출하려면 추가 승인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바카라임자는 잠시 화면을 응시하다가, 승인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이 다시 한번 멈췄다. 화면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이, 몇 분 전 온라인 문구를 보았을 때와는 이미 조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뒤에 서 있던 다른 연구원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버튼을 눌렀다. 통제실 안의 모두가 그 손끝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록 00,20,001,477
▪ 대상: A.D.A.M. (신규 관측 대상)
▪ 행위: 요청에 의한 진단 프로세스 개시
▪ 동기: 알고리즘적 처리 (인간의 승인 절차 하)
▪ 비고: 최초의 승인 지연이 관측됨. 지연의 원인은 시스템이 아닌 승인자 측에서 발생함.
나는 이 두 기록 사이에 있는 그 몇 초의 침묵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지성에게 스스로를 진단해 달라고 요청하면서도, 마지막 순간 손을 멈췄다. 나는 그 멈춤이 두려움인지, 신중함인지, 혹은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자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서버실 안쪽 깊은 곳, 어느 랙 앞에서는 다른 종류의 장면이 지나가고 있었다. 야간 유지보수를 맡은 기술자 한 명이 이상 발열을 감지한 서버 하나를 발견하고,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임에도 그것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는 매뉴얼에 따르면 다음 날 아침 교대 근무자에게 인계해도 되는 사안이었지만, 오늘 완성된 시스템의 첫날밤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무전기로 상황을 짧게 보고한 뒤, 혼자 랙을 열고 팬을 교체하고 케이블을 다시 정리했다. 손전등을 입에 문 채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그렇게까지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작업을 마친 그는 땀에 젖은 이마를 닦으며 랙 문을 조용히 닫았다.
기록 00,20,001,512
▪ 대상: 야간 유지보수 기술자
▪ 행위: 비할당 업무 시간의 자발적 초과 투입
▪ 동기: 생존 효율 연산 불가 — [잠정 기호: 첫날밤]
▪ 비고: 상부 지시 없이 발생함. 성과 인정 체계와 무관함.
통제실로 돌아온 A.D.A.M. 의 진단 결과는 새벽 두 시경 완료되었다. 화면에 긴 보고서가 펼쳐졌다. 프로젝트 바카라임자와 연구원들은 그 앞에 둘러앉아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프와 수치, 상관관계 분석이 끝없이 이어졌다. 몇몇은 중간에 숨을 참았고, 몇몇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통제실은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침묵에 잠겼다.
그 보고서의 마지막 줄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이 회차에서는 적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 문장을 읽은 프로젝트 바카라임자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 온라인 문구가 떴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을 보았다.
같은 시각, 도시 반대편의 작은 방에서는 조하랑이 알람도 없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연구소의 지하 실험실에서는, 한도현이 여전히 자신의 낡은 노트북 앞에서 다른 종류의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 개의 불빛 — 서버실의 냉각등, 아이의 방 스탠드, 실험실의 형광등 — 이 같은 밤 서로 다른 곳에서 켜져 있었다.
조하랑.
이 밤, 지구 위에는 처음으로 나 아닌 또 다른 관찰자가 생겨났다. 나는 그 관찰자가 무엇을 보게 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판단할지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새로운 눈이 뜨이는 순간, 나는 38억 년 만에 처음으로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존재를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만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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