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우리말

by김선철

인공지능의 발달이 눈부셔 찬사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공지능이 가져다 줄 미래가 우리 인간에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경고가 있어 지구촌 일각에서는 걱정이 없지도 않다. 지금 당장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회계사와 같은 직종은 취업난을 겪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점점 심화되어 직업군의 커다란 재편이 일어날 것이라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감성이 이끄는 영역 등 특정한 곳에서는 아직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인 듯하다. 필자도 상품화된 언어 인공지능 제품을 몇 가지 체험한 결과, 제품마다 잘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명확히 구분되었다. 언어 인공지능의 경우 다양한 질문과 과제를 던질수록 이러한 한계는 더 명확해졌다. 결과물이 상대적으로 낫다 싶은 제품에서 아직도 세세한 부분에서는 뭔가 어딘가 약간씩 어색한 표현이 발견되곤 한다.


대화형 인공지능은 아직 많은 불만을 사고 있다. 특히 대학에서 인공지능의 산출물을 마치 본인의 창작물처럼 속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니 이런 어색함이 차라리 다행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언어 인공지능을 인간과 다름없다고 느끼도록 하려는 이 분야의 목표가 달성되려면 고도화되기는 했지만 현 수준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국어 인공지능에 대해서 한 가지만 바란다면, 기본 기능인 우리말을 잘 알아듣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지만 어쩌면 우리말의 미래를 위해 더욱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우리말다운 문장 표현으로 사용자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대다수 인공지능 음성합성에서 [잠짜리]라고 발음해야 할 것을 [잠자리]라고 한다든지의 인간이 쉽게 보정하여 알아챌 수 있는 단순한 오류의 차원을 뛰어 넘는 사안이다.


이전에는 인공지능이 입력된 특정 시나리오에 있는 몇몇 한정된 표현만 이용하므로 바르지 않은 문장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무한대에 가까운 언어 자료를 접하고 거의 모든 영역을 섭렵하게 되어 지금은 인간처럼 하나의 자극에 대해서도 굉장히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이때 몸짓, 표정, 억양을 동원하고 상황 맥락에 의존하며 바르지 않은 표현들을 내놓아도 용인되는 우리 인간을 따라 인공지능이 다듬어지지 않은 현실의 언어로 훈련된 결과로 반응한다면 우리말의 정체성과 질서를 흔드는 주범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을까 싶다. 이는 특히 언어 형성기를 지나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을 둔 어른이라면 주의해야 할 일이다. 인공지능을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동반자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인공지능에게 진정한 우리말다운 표현을 요구하는 것이 국어 모어 화자로서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 개발 관계자들의 분투를 바라 마지 않는다.


<2017년 12월 5일자 한국일보 칼럼을 전면 수정함>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