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해

전호준 X 정석헌

byHo jakka

깨톡! ‘이것은 반가운 카톡 소리가 아닌가. 누구지?‘ 가양 33이라는 독서모임 단카방에 제 글쓰기 친구 석헌님께서 보낸주신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최악의 독자

바카라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바카라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바카라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것만을 마치 그 바카라의 모든 내용인 양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바카라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그 바카라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


이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이런 의견을 공유해주신 석헌님께 감사했고, 두 번째는 ‘으음?‘이라는 정체 모를 소리가 제 입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럼 최고의 독자는 뭘까?


혼자 이리저리 생각해 봤는데 생각보다 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석헌님께 ‘이 소재로 글 한번 써볼까요?‘ 여쭸더니 흔쾌히 ‘그러시죠’라며 답장이 왔어요. 너무 쿨하고 좋은 석헌님.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이번 글.


최고의 독자란 대체 무얼까요? 사실 전 질문 자체에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불현듯 저 글을 처음 대했을 때부터 그랬을 수 도 있단 생각도 드는데. 결국 바카라이란 건 저자의 생각이자 의견이며 논리잖아요, (아! 바카라은 도끼일 수 도 있습니다. 운명의 조각칼일 수도 있고요) 니체는 결국 바카라은 이렇게 봐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내 말이 다 맞다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충고도 남이 듣고 싶을 때, 그 사람이 필요할 때,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듣는 사람의 기분이 상하거나 관계가 틀어질 수 도 있겠죠. 독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독자의 세계에는 최악의 독자라는 것도 최고의 독자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바카라 읽는 사람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바카라을 읽으며, 독자로서 그 바카라과 그 시간에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작가로서 우리가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현재의 모습들 ㅡ 거리의 간판, 모퉁이, 소화전, 신문가판대를 보고 듣고 감지해서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끌어드리기 위해서다.

이 글을 읽고 작가의 세계만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독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비슷하지 않을까요.


결국 독자로서, 우리가 바카라 속으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덧붙임> 같은 주제로 글을 써보자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허락해주신 석헌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이 글에는 그 어떤 비방도 담겨있지 않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시죠? 공유와 댓글은 호자까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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