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대기번호 부여 시스템
음. 두괄식으로 말하면 제목이 곧 내용이다. 주변에 영화제 일정 미리 잡아놓은(KTX, 숙소 등) 친구나 지인들 내지 인친들, 영화업계 동료들이 제법 많이 있는데 작년과 달라진 올해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및 프로그램 예매 방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좋은 평가나 반응을 보인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진심 그 누구도. 주변 모두가 앞다투어 욕하고 있는 건 물론 영화제 공식 계정의 게시물 댓글에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올해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및 프로그램 예매 방식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누구의 아이디어로, 누구의 의사결정으로 마련되었을까.
예를 들어 영화제 기간 중 3박 4일 정도 부산 방문 일정을 잡았다고 해보자. 각 일자별로 상영시간표를 보고 대략 보고 싶은 영화들의 상영시각과 각 상영작별 관람 전후 이동 동선을 체크해둔다. 어떤 날에는 영화를 두세 편 혹은 그 이상도 관람할 수 있다. 센텀시티에서 일반 상영작을 보고 나서 커뮤니티비프 프로그램을 보러 이동한다든지. 센텀시티 CGV나 롯데시네마에서 소향씨어터로 이동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다만 원하는 작품의 예매에 전부 다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각 시간대나 날짜별로 우선순위를 안배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포기하거나 추후 취소자리를 구하면 보기로 한다든가 하는 의사결정을 별도로 수반한다.
문제는 올해 BIFF는 상영작 하나를 예매(좌석선택, 결제 등 단계 포함)하고 나면 또 다른 영화를 예매하려면 다시 대기번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룩백>(2026)이라든지,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2026)라든가 기타 영화제 기간 중 상영작 여러 편에 대해 예매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면, 작품 한 편의 상영 일정 예매에 성공하고 난 뒤 또 다른 영화를 예매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순번에 따른 대기 시간을 감내해야만 한다. 1만~2만번 대의 대기번호가 앞선 순번들이 빠지길 기다리며 내 차례가 마침내 도래해 영화 한 편의 좌석을 운 좋게 잡아 결제하고 나면, 다른 상영작을 예매하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몇 번까지 있을지 모를 대기번호를 새로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를 만약 열 편을 예매하기로 작정했다면 각각의 영화들 모두 그러니까 총 열 번을 대기해야 하고, 기껏해야 100-300석 정도의 영화당 상영회차당 좌석을 고려한다면, 제일 처음 시도한 영화 이후의 영화들은 좌석을 구할 확률이 아주 극도로 희박해진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 일주일 넘게 교통편과 숙소를 잡아놓고도 영화 예매를 한두 편 밖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연히 취소 자리가 나올지 여부는 불투명하며, 티켓의 현장 판매분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마치 디지털 취약계층 좌석을 별도로 마련해놓은 것처럼 예매 페이지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데 과연 그 좌석이 얼마나 될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예매 오픈 시각은 오후 2시. 대다수 온라인 게임인들이 자리를 비우는 데 한계가 있다. 개막식, 폐막식과 오픈시네마 등 일부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예매가 열린 9월 17일 오후 2시, 네 편의 작품을 예매하기 위해선 하나의 예매를 마친 뒤 또 새로운 작품을 검색하고 각 작품에 대해 새로운 대기번호를 부여받아 그저 "기다려야" 한다. 만약 내가 운 좋게 10월 9일 저녁 <스파이럴> 오픈시네마 상영을 예매한 뒤 10월 10일 저녁 <바이올리니스트>의 예매를 할 수 있다 해도 문제는 각 영화들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개, 폐막식이나 오픈시네마, 미드나잇 패션 등 일부 섹션만을 대상으로 했던 1차 예매에서도 2만번 대 이상의 대기번호를 봐야 했는데, 대다수 일반 상영작들이 몰려 있는 2차 예매에서는 과연 얼마만큼의 대기가 생길까.
심각한 문제는 모든 상영작 및 프로그램 예매 일정을 단 이틀만 잡았다는 점이다. 상영작이 수백 편인 만큼 콘서트나 전시 등의 다른 예매와는 차원도 층위도 전혀 다르다. 대기 시스템을 각 영화마다 별도로 부여할 것이었다면, 최소한 예매 일정을 일자별로 더 세부적으로 안배한다든지 하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여러 개의 섹션에 걸쳐 여러 날에 걸쳐 수백 편의 상영작이 있고, 대다수 관객들이 처음 염두했던 원하는 시간표 그대로 관람을 할 수 없어 현장에서 유연하게 표를 구해 보는 경우도 있는데 최우선으로 골라 들어간 영화 한 편 이후에는 수만 번의 대기번호가 빠지길 기다려야 해서 사실상 원하는 대부분의 상영작은 좌석을 구하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 평일 오후 두 시, 30분에서 1시간씩 여러 번의 대기열을 일일이 기다려가면서 한가하게 예매할 수 있는 관객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콘서트 티켓팅처럼 소위 용병을 다수 구해야만 그나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불만과 비판이 쏟아져 나온 부산국제영화제 예매 방식에 대한 취재 기사에서 관계자의 코멘트를 보고 경악했다.
https://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638329
"대기열 방식은 동일 IP 다중 접속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했다"
기업 PR 분야에 종사하는 덕에 언론 기사를 평소 많이 읽어보는 편인데 올해 본 가장 한심한 관계자 코멘트인 것 같다. 그냥 생각도 배려도 고민도 전혀 없어보인다. 현실적인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최악의 취소 수수료 정바카라(ex. 상영 5일 전~3일 전부터 취소 수수료를 1천원, 2일 전~60분 전까지는 3천원을 부과한다든지 하는)도 백번 양보해 그렇다 쳐도 그 누구도 올해의 예매시스템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언급을 하는 이가 없는데 느끼는 바가 없는 걸까. 동일 계정의 다중 접속(동시 접속)을 제한하는 일과 각 영화별로 대기 번호를 따로 부여하는 일 사이에는 별로 관련성이 없어보인다. 저 답변 자체가 예매 방식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음을 실토하는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부산시민영화제인가. 대충 영화 한 편 정도만 가볍게 지나가다 보고 갈 라이트 관객들만을 타깃으로 한 건가.
그러니까... 근본적인 해결바카라인 서버 인프라 확충은 고사하고 그냥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쪽으로 답을 찾으셨다고요? 어떤 영화제도 예매 시스템을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소위 말해 고객 경험(UX) 관점에서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올해 6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주요 영화제 최고상 수상작에 국제장편영화상 출품 자격을 별도로 부여하기로 한 정바카라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제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는데, 그 정도의 위상에 관객들을 맞이하는 시스템이 걸맞은 채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이번 정바카라이 암표 근절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벌써 인기 상영작은 여기저기에 티켓을 판매한다는 플미/리셀 게시물들이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예매 시스템에 문제가 많았다는 건 하루이틀 일도 아니지만 9월 17일자 '부산일보' 기사 [‘안정’ 찾은 BIFF 예매… 기승 부리는 ‘암표’는 골머리]를 보면 "한 사람이 여러 영화와 좋은 좌석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라며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코멘트를 한 것으로도 모자라 1차 예매 때 보니 시스템이 안정되었다는 자화자찬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올해로 31회를 맞이한 아시아 대표 영화제가 보여주고 있는 관객 경험은 참담한 수준이다. 그 누구에 대한 배려도 고민도 없어 보이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예매 방식이 2차(일반 상영작 등) 예매 오픈 이후에는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봐야겠다. 참고로 영화제 공식계정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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