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T.S.
난 드디어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로 했단다.
며칠 전 새벽 꿈을 꿨어. 꿈속에서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었단다. 네온색 화려한 천으로 만든 전통 장례식 복식과 상여를 맨 사람들이 무대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연극을 공연하고 있었어. 온몸에 푸른색 물감을 칠하고 '죽음'을 연기하는 배우가 무대를 펄쩍펄쩍 뛰어다녔어.
객석에 앉아 있던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무대 위에 난입했지. 손에 든 종이를 북북 찢으며 "내 목숨 값이 고작 이것뿐이냐"고 '죽음'을 쫓아 갔어.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죽음'을 연기하는 배우는 작은 어린아이였어. 내가 분노를 터뜨리자 '죽음'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더듬었어.
"과...광고 타임"
뻘쭘하게 '죽음'이 뱉은 애드리브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어. 심각하고 경직된 종교적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지고 한바탕 웃고 지나갈 뿐인 가벼운 것이 되었지. 그 순간 나는 대본에 없는 등장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어. 무슨 애드리브를 칠까 고민하다 잠에서 깼어.
푸른 빛이 창에서 스며드는 새벽이었어. 꿈에서 본 이미지를 잊기 싫어서 급히 메모를 했지. "삶과 죽음은 모두 한편의 연극같은 것"이란 문장을 쓰면서 생각했어. 그럼 무대로 난입했던 나는 무슨 역할을 받은 걸까. 그림자 속에서 남들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는 존재로서 살고 싶지 않아. 인생이 지금보단 더 극적이고 생동감있길 바라. 그러나 실상 반복 되는 현재의 삶에서 조금씩 질식하고만 있어. 주인공이 되길 바랐는데 어째서 나는 또 주변인이 되어버리고 만 걸까. 서늘한 새벽, 푸른 색의 죽음을 생각하다 출근 시간을 놓쳐버렸지 뭐야.
얼굴을 씻고 메이크업을 해. 거울에 비친 얼굴은 지친 30대의 여성이야. 그 위에 뽀얀 파운데이션을 한겹 발라. 컨실러로 칙칙한 눈가와 입매를 덮어. 그 옆에 팔자주름을 보며 속상해하지. 명백한 노화의 흔적. 내가 매일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 볼 위에 혈색감이 도는 핑크색 블러셔를 올리고 불그레한 립스틱을 발라. 메이크업 전보다 1~2살은 어려보인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푸른색을 가리고 붉은 색을 더해.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