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진짜 삶을 발견하는 순간

모옌의 환각적 리얼리즘과 AI의 환각이 건네는 질문


정답의 기계와 환각이라는 오류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시대가 열리며 인류는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수십억 개의 문장을 학습한 대형 언어 모델은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가장 매끄럽고 완벽해 보이는 답변을 쏟아낸다. 기술 문명은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이 명료한 텍스트를 ‘사실’과 ‘정답’의 정점에 놓으려 애쓴다.


​그러나 정교해 보이는 이 인공지능의 세계에는 치명적이고도 기묘한 틈새가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 논문 저자를 당당히 만들어내고, 역사적 사실을 기이하게 비틀어 진짜인 것처럼 태연하게 답하는 현상, 바로 ‘환각(Hallucination)’이다. 개발자들과 기업들은 이 환각을 기술이 극복해야 할 결함이자 치명적인 오답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알고리즘을 투입한다. 효율과 사실성을 숭상하는 현대 슬롯에서 환각은 정제되어야 할 오류이자 불순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다르게 던져볼 수 없을까. 기계가 뱉어내는 환각은 정말로 제거되어야 할 단순한 오류에 불과한 것인가. 혹은 우리가 ‘사실’이라 믿어왔던 현실의 매끄러운 표피 뒤에 숨겨진, 인간 존재의 정직한 이상 징후를 보여주는 거울은 아닌가.


​기계가 내뱉는 매끈한 거짓에는 냉소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인간은 오랫동안 ‘허구’와 ‘환각’이라는 도구를 통해 현실보다 더 정직한 삶의 진실을 포착해 왔다. 사실(Fact)의 수집만으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깊은 진실(Truth)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지의 비명이 만든 환각 : 모옌이 그려낸 삶의 무게


​기계의 환각과 문학적 허구가 다다르는 이 깊은 접점에서 만나게 되는 문학적 정점이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莫言)의 산문집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와 그의 거친 ‘환각적 리얼리즘(Hallucinatory Realism)’이다.


​중국 가오미 둥샹의 붉은 대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모옌은 가난과 기근, 그리고 압도적인 노동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가 목도한 현실은 차가운 사실의 언어나 매끄러운 논리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함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 들판에서 헐벗은 채 고독과 허기를 견디던 소년 모옌에게 현실은 사물이 말을 걸고, 바람이 비명을 지르며, 괴물과 유령이 대지를 거니는 환각의 공간이었다.


​산문집의 표제작인 〈강풍〉에서 할아버지와 어린 ‘나’는 들판에서 베어낸 풀을 한가득 수레에 싣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정체불명의 거대한 강풍을 만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몰아치는 바람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민초들의 삶을 당장이라도 꺾어버리려는 거대한 운명의 폭력이자,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찢어발기며 서서히 다가오는 재앙이다. 할아버지는 수레바퀴를 꼭 쥐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대지에 바짝 엎드려 강풍과 사투를 벌인다.



​강풍이 지나간 뒤, 수레에 가득 쌓여 있던 풀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고 단 한 줄기의 풀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우리가 이겼다.” 실질적으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그 절망적인 대지 위에서 강풍에 맞서 버텨낸 인간의 의지는 그 자체로 숭고한 진실이 된다.


​모옌의 문학에서 환각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헛된 망상이 아니다. 사실의 체계로는 포착할 수 없는 가혹한 생의 고통, 민초들이 온몸으로 견뎌낸 역사적 비극의 질감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대지와 환상이 하나로 엉켜 드는 ‘극사실주의적 응전’이다.



데이터의 정답과 문학적 허구의 차이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환각과 모언이 빚어내는 환각적 리얼리즘은 겉보기에 유사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방향성의 차이를 지닌다.


​AI의 환각은 통계적 확률의 산물이다. 다음에 올 단어를 계산하다가 무바카라임하게 튕겨 나간 기계적 미끄러짐이며, 진실을 담아내려는 의지나 고통의 체온이 부재한 빈 껍데기다. AI는 자신이 만드는 환각에 대해 아무런 바카라임도 지지 않으며, 고통받지도 않는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가장 그럴듯한 사실의 표피만을 복제하려 하기에, 그 환각은 종종 허무한 거짓말로 전락한다.


​반면 모옌을 비롯한 문학이 빚어내는 환각은 현실의 압도적인 무게를 버텨내기 위한 ‘영혼의 사투’다. 눈앞에 펼쳐진 사실이 너무나 비참하고 가혹할 때, 인간은 환각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빌려 현실의 뒤편에 숨겨진 진짜 진실을 끌어올린다. 모옌의 소설 속에서 들판의 풀들이 비명을 지르고 귀신들이 방황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기 위함이 아니라, 차가운 숫자와 연대기적 역사 기록이 지워버린 가난한 이들의 피눈물과 고독을 증언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사는 현대 슬롯는 수치와 데이터, 그리고 ‘팩트 체크(Fact-check)’라는 정교한 검증의 틀로 세상을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모든 사실의 합이 반드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뉴스 헤드라인에 나오는 수치화된 기근의 통계보다, 배고픔에 지쳐 대지의 흙을 씹어 먹었다는 모옌의 환각적 회상이 고통의 본질에 아득히 더 가깝다.


​데이터는 사물의 외형만을 기록하지만, 문학의 환각은 그 사물을 견뎌낸 인간의 내면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가짜 진실의 시대, 진짜 질문을 던지는 법


​우리는 매일 생성형 AI가 출력해 내는 유려한 문장들을 마주한다. 오타 하나 없이 깔끔하고, 논리정연하며, 효율적인 문장들이다. 그러나 그 매끄러운 텍스트를 읽을 때 종종 깊은 허기를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삶을 관통해 온 사람의 체온과 고통의 흔적, 즉 ‘진실의 무게’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위험은 AI가 만들어내는 환각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기계가 제공하는 매끄러운 사실의 파편들에 눈이 멀어, 그 뒤에 숨겨진 입체적이고 서사적인 진실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감각이 퇴화하는 데 있다. 우리는 효율적인 정답만을 요구하느라, 가끔은 삶의 비틀림과 환각 속에서 건져 올려야 할 삶의 정직한 고통을 잊어가고 있다.


​‘환각적 리얼리즘’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당신을 짓누르고 강풍처럼 불어닥칠 때, 당신은 오직 눈에 보이는 차가운 사실만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그 바람에 맞서 버텨내는 영혼의 깊은 파동을 읽어낼 것인가.


​지어낸 이야기(Fiction)가 주는 진짜 힘은 우리를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환각의 형태를 빌려 우리를 짓눌러온 현실의 정중앙으로 다시 내던지는 데 있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질지라도, 가혹한 삶의 현장에서 뼈를 깎아내며 지어 올린 문학적 허구의 숭고함을 대신할 수는 없다.



강풍 속에서 버텨내는 삶의 숭고함


​다시 모옌의 〈강풍〉 속 들판으로 돌아가 본다. 강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텅 빈 수레와 고작 풀 한 줄기뿐이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사실의 눈으로 본다면 이 싸움은 완벽한 패배이자 허망한 환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지에 바짝 엎드린 채 손가락이 터지도록 바퀴를 쥐고 있던 할아버지의 굳센 손, 그리고 “우리가 이겼다”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던 그 목소리에는 그 어떤 과학적 데이터로도 측정할 수 없는 단단한 진실의 질량이 들어차 있다.


​차가운 스크린이 출력하는 매끄러운 인공지능의 답변을 잠시 접어두고,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환각과 허구의 문장들을 다시 펼쳐 들어야 할 때다. 기계가 말하는 매끄러운 가짜 진실에 속지 않고, 인간이 온몸으로 지어 올린 서사 속에서 진짜 삶의 무게를 건져 올리는 것. ​불어오는 거친 삶의 강풍 속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단단한 문장 하나를 가슴에 품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술이 정답을 완성해 주는 시대에 우리가 문학을 읽고, 생각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참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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