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무한 스크롤 - 익명성 뒤에 숨은

시선의 감옥


​출퇴근길 지하철 객차 안에 들어서면 눈앞에 기이하고도 정갈한 풍경이 펼쳐진다. 빽빽하게 들어찬 인파 속에서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45도 각도로 숙이고 있다. 손바닥만 한 매끄러운 사각형 유리판 위에서 엄지손가락만이 부지런히 위아래로 궤적을 그린다. 타인의 어깨와 어깨가 물리적으로 바짝 밀착되어 숨소리마저 공유해야 하는 과밀의 시공간. 그러나 그 누구도 옆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거나 시선을 교차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인 채 무한히 이어지는 화면의 굴레 속으로 몰입하는 행위. 그것은 타인의 민낯과 직면하지 않기 위해 현대 도시인이 펼쳐든 가장 완벽하고 세련된 문명적 방패다.


​슬롯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도시라는 밀집된 공간에서 낯선 이들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기묘한 예의범절을 '시민적 무관심(Civil Inattention)'이라 칭했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되 그를 위협하거나 사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상대의 시선을 슬그머니 비껴가는 미세한 눈빛의 연출. 과거의 도시인에게 그 수단이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나 손에 쥐어진 일간 신문이었다면, 현대의 도시인에게는 스마트폰의 매끈한 액정 화면이 그 역할을 완벽히 대리한다. 스크린을 향해 고정된 시선은 타인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송한다. "나는 지금 당신을 보고 있지 않으며, 당신 역시 나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엄지손가락 끝에서 끝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무한 스크롤(Infinite Scroll)'의 물성은 이 시선의 방패를 유지하는 강력한 동력원이다. SNS의 피드와 숏폼 영상, 끊임없이 갱신되는 뉴스 헤드라인은 완결점이 없다.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이 디지털 우물은 도시인의 시선을 스크린 내부에 완벽하게 묶어둔다. 다음 화면에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가변적 보상'의 메커니즘은 우리의 뇌에 미량의 도파민을 끊임없이 주입하며, 고개를 들어 현실의 타인을 바라볼 여지를 한 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무한한 스크롤링은 시선의 차단을 넘어, 과밀한 대중교통 안에서 직면해야 하는 어색함과 미묘한 불안을 마취시키는 감각적 완충재다. 사방이 타인의 시선으로 둘러싸인 과밀의 시공간 안에서, 도시인은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소소한 권력 행사를 통해 자신이 이 물리적 중력으로부터 탈출해 있다고 착각한다. 손바닥 안의 사각형 화면은 거친 현실의 오프라인 세계를 일순간에 배경으로 격하하며, 각자만의 격리된 디지털 섬을 일구어낸다.



​그러나 이 완벽한 시선의 방패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또 다른 형태의 시선의 감옥으로 몰아넣는다. 타인의 생생한 눈빛을 피하기 위해 도피한 그 사각형 유리가면 뒤편에서, 우리는 알고리즘이 짜놓은 정밀한 감시와 타인의 승인 욕구라는 더 정교한 창살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타인의 정제된 삶을 관조하고, 나의 일상을 렌즈에 담아 타인의 '좋아요'라는 시선을 갈구하는 과정. 현실의 눈맞춤이 주는 피로를 피하기 위해 찾아든 스크린 안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더욱 지독하게 매여버리는 기표의 역설을 경험한다.


​스크린을 터치하는 손가락이 잠시 멈추고 검은 액정이 반사판이 되어 자신의 초점 잃은 얼굴을 비출 때, 도시인은 비로소 문득 깨닫는다. 눈맞춤을 잃어버린 도시는 공존하되 연결되지 못하는 타인들의 섬으로 흩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화면 너머의 무한한 세계에 몰입할수록, 내 곁에 서 있는 실제 타인의 온기는 점차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밀려나간다.


​지하철이 다음 역에 멈춰 서고 문이 열려도, 고개를 숙인 인파의 궤적은 흔들림이 없다. 무한 스크롤이 만들어낸 단정한 정적 속에서, 도시인은 타인의 시선을 완벽히 무력화했다는 착각을 품은 채 오늘도 무사히 승강장을 지나쳐 간다. 스스로 가둔 매끄러운 시선의 감옥 안에서, 타인과 마주할 용기를 조금씩 유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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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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