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논란을 떠올리며

열기가 지나가면 하려고 참아왔던 말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호프>를 둘러싼 논란에 답하며, 나홍진과의 친분을 이유로 좋은 평을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그의 대응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호프>에 대한 이동진의 평을 전부 동의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입을 기어이 열게 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능히 짐작이 가능하다. 나도 똑같이 느꼈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니까.


평론가의 평은 늘 도마 위에 오르고는 한다. 자기 의견과 다를 때 성난 관객이 돌을 던지는 일은 잦아서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 남의 작업에 입대는 일을 하기에 나의 글에 누가 왈가왈부 하더라도, 그것이 다소 거칠더라도 그러려니 넘기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달랐던 이유는 평론가의 순수성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동진은 이전 인터뷰에서 친분을 이유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워질까 봐 도리어 사적인 자리를 자제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런 사람이기에 "친분을 이유로 높은 별점을 줬다"라는 발언만큼은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 역시 <호프>에 대한 반응이 안 좋을 때 옹호하는 글을 썼고, 그건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평론가들은 튀고 싶어서 관객과 반대로 간다는 건 항간의 오해다. 몇 날 며칠 정성껏 쓴 글에 나쁜 말이 쏟아지는 걸 보는 일은 누구나 김 빠지는 일이다.


그런데 정말 놀랐던 건 "돈 받고 글 쓴다"라는 댓글을 본 순간이다. 이 해괴한 말은 아무런 근거 없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내가 돈을 받았다는 걸 확신하며 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평론가는 평가하는 사람이다. 강의도 쓰고 유튜브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영화가 "좋다", "나쁘다" 말하는 게 전부다. 그걸 정말로 돈 받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업계에서 매장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정조차 망상에 불과하다. 영화를 옹호하는 글 보다 매도하는 숏폼 하나가 힘이 센 시대에 누가 평론가 따위에게 돈을 쓰겠는가.


평론가는 직업이라 하기 어렵다. 생계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평론가가 비평 활동 외에 다른 일을 한다. 이건 쓰라려서 굳이 말하지 않는 부분이다.


비평을 계속하기 위해서 다른 일을 병행하는데, 정작 비평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나는 다른 일을 접고 비평만 하는 길을 택했다.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삶의 큰 부분을 포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돈 몇 푼에 평가를 바꿨다는 말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내 삶을 통해 지켜온 가치를 모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이제야 하는 이유는, <호프>를 둘러싼 열기에 찬물을 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활동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상한 소리를 듣는 게 생각보다 많아서 흘려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입을 열지만 앞으로는 다시 자제할 생각이다.



좀 건방진 말이지만, 나는 늘 관객의 편이라 자부해 왔다. 관객이 극장에 가지 않을 때도, 유튜브 요약본이 대세가 될 때도. 하지만 이번 논란은 우려스러운 구석이 있다. 내 의견과 다른 글을 읽고 궁시렁대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넘어 "화가 난다 → 저 평론가는 틀린 소릴 하고 있다 → 돈을 받았을 것이다 / 친분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미치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런 생각도 해 봤다.

혹시 이 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까? 영화에 대해 투명하게 쓴다는 것. 그게 누군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예술을 보고 쓰는 활동에 투신하는 멍청한 인간이 있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확실히 그쪽보다는 몰래 돈 받고 쓴다는 가설이 더 합리적으로 들린다.



사람은 모두 남의 사정에 무지하다. 무지는 곧잘 무례로 이어진다. 영화제 심사를 할 때는 몇 백 편의 출품작을 봐야 한다는 말에 누군가가 물었다.


그럴 때는 2배속으로 보세요?

아니요.

왜 안 그러세요?


나는 그에게 어떠한 악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말이 적절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를 좇으며 산다. 그래서 끝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나와 다른 인간이 있다는 건 이 뻔한 세상을 탐험할 만한 곳으로 만든다.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노력은 삽질로 취급받는 세상에서 영화가 좋아서 보고 쓰길 반복하는 인간도 있고, 또 다른 곳에는 자기만의 가치를 위해 내가 모르는 노력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들 사이에 숨어 순수성을 연기하며 대단한 예술가 행세를 하는 사기꾼도 있다. 보이지 않는 가치는 소중하고 혼탁하다.


그러니 알아 달라는 말도 사치다. 그건 내 삶을 통해 증명할 부분이고 끝내 몰라도 상관없다. 다만 이해할 수 없어도 저 사람에겐 저것이 중요하구나, 그래서 그걸 지키며 사나 보다, 그런 담백한 존중의 태도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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