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만에 뒷면을 잃어가는 역

야에스 재개발

bycitevoix



00 역의 뒷면에서



도쿄역 마루노우치 쪽 광장에서 역을 바라보았다. 붉은 벽돌 역사의 지붕 너머로 유리 타워 몇 개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역의 반대편, 야에스다.


마루노우치 쪽에서 본 도쿄역은 돔을 얹은 한 세기 전의 얼굴이다. 기록 속 반대편의 역은 전혀 다른 표정이다. 두 개의 유리 타워 사이로 흰 막 지붕이 길게 걸려 있고, 그 아래로 고속버스와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같은 역인데, 저쪽은 왜 오랫동안 역의 뒷면으로 불렸을까.



01 문이 없던 쪽


1914년 도쿄역이 문을 열었을 때, 역의 얼굴은 온전히 황거를 향해 있었다. 붉은 벽돌 역사와 개찰구는 마루노우치 쪽에만 있었다. 반대편 야에스에는 해자의 물길이 흘렀고, 역으로 들어가는 문조차 없었다. 야에스라는 이름은 에도 시대 이곳에 살던 네덜란드 사람 얀 요스텐(Jan Joosten)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에도 시대의 이야기를 품은 이름이 정작 역에서는 가장 늦게 불렸다.



야에스 쪽에 출구가 생긴 것은 역이 문을 열고 15년쯤 지나서였다. 전쟁이 끝난 뒤 물길이 메워졌고, 다시 십여 년이 지나 신칸센 승강장까지 이쪽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점점 야에스로 몰렸다. 니혼바시와 교바시의 번화가로 이어지는 쪽도 이쪽이었다. 역의 얼굴은 여전히 마루노우치였지만, 역을 실제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이미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다.



02 지붕 아래의 광장


2013년, 야에스의 역 앞은 새 얼굴을 얻었다. 헬무트 얀(Helmut Jahn)의 사무소가 디자인을 이끈 대형 지붕 그랑루프(GRANROOF)다. 설계자들은 역사성을 간직한 마루노우치 쪽과 대비해, 야에스 쪽을 미래를 상징하는 현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한쪽 얼굴이 과거를 지킨다면, 다른 쪽 얼굴은 앞날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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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루프 양옆에 선 두 유리 타워, 그랑도쿄 노스타워와 사우스타워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2002년 도쿄도는 이 일대를 쓰지 않은 용적을 다른 땅으로 옮길 수 있는 특례용적률적용지구(特例容積率適用地区)로 지정했다. 붉은 벽돌 역사를 낮은 그대로 지키기로 한 도쿄역은 남는 용적을 주변 빌딩들에 넘겼고, 두 타워도 그 용적을 받아 올라갔다. 용적을 판 대금은 약 500억 엔이 든 마루노우치 쪽 역사 복원의 밑천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의 앞면을 낮게 지킨 만큼 남은 높이를, 뒷면의 타워들이 받아 올라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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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앞 광장도 같은 제도의 틀 안에서 넓어졌다. 광장과 남북 두 부지의 소유자가 함께 정비에 나섰고, 역 앞을 비워 택시와 버스가 드나드는 교통 광장과 사람이 걷는 광장이 한 지붕 아래 함께 들어설 자리를 만들었다.

지붕 너머에서도 변화는 이어진다. 2023년 봄 문을 연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에는 사무실과 상점에 초등학교까지 한 건물 안에 들어섰고, 꼭대기 층들에는 불가리 호텔 도쿄(Bulgari Hotel Tokyo)가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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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지하 2층에는 고속버스 터미널이 들어섰는데, 이웃 구역들의 개발이 마무리되면 일본에서 가장 큰 버스터미널이 된다. 바로 옆 구역에서는 2026년 가을 또 하나의 타워가 문을 열었고, 그 옆 구역은 2029년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기차와 버스, 지하 보행로가 한데 얽힌 이 일대는 지금도 한 구역씩 새 얼굴을 얻는 중이다. 한 세기 동안 뒷면이던 곳이, 지금 도쿄역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쪽이 되었다.



03 역을 사이에 둔 두 회사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를 지은 것은 미쓰이부동산이다. 히비야 편에서 본 도쿄 미드타운 히비야에 이은, 세 번째 도쿄 미드타운이다. 니혼바시를 걸으며 보았듯, 미쓰이의 뿌리는 역 동쪽의 니혼바시에 있다. 한 세기 넘게 역 서쪽의 마루노우치를 가꿔 온 미쓰비시와, 역 동쪽에서 자라 온 미쓰이. 도쿄역은 두 회사의 동네가 맞닿는 경계이기도 하다. 역 동쪽 야에스에 미쓰이의 타워가 서고, 역 북쪽 도키와바시에는 미쓰비시의 도쿄 토치가 올라가는 풍경을 두 회사의 경쟁으로 읽는 시선도 있다.


경쟁이든 아니든, 그 사이에서 오랫동안 뒷면이던 야에스는 새로운 무대가 되었다. 기차와 고속버스, 호텔과 학교가 한 역 앞에 모이고, 땅 위와 땅 밑의 보행로가 여러 블록을 잇는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옛 건물을 지키고 거리를 고쳐 쓴 마루노우치와는 결이 다른 교통의 결절점에서 도시를 다시 짜는 또 하나의 도시재생이다.



04 마루노우치에서 배운 것


역 북쪽의 도쿄 토치에서 시작해 오테마치의 숲을 지나, 마루노우치의 빌딩과 역, 거리와 건물들을 차례로 걸어왔다. 나카도리에서는 한 회사의 사유지였던 길도 반세기의 실험 끝에 모두의 거실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브릭스퀘어와 미쓰비시 1호관, 메이지생명관에서는 새로 짓든 다시 쌓든 그대로 남기든, 도시는 다시 지을 때마다 무엇을 남길지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히비야에서는 하루 종일 일하는 업무지구에도 숨을 돌릴 가장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도쿄 미드타운 히비야에서는 그 가장자리를 한 건물 안에 겹쳐 쌓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도쿄국제포럼은 공공 건물이 도시에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비워 둔 땅이라는 것을, KITTE는 보존이 건물뿐 아니라 그 건물이 도시와 맺어 온 관계까지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야에스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배움이 역의 반대편에서 다시 쓰이는 과정이다. 이곳의 새 건물들도 사람이 걸어 다니는 데크와 광장, 머무는 자리를 먼저 이야기한다. 마루노우치가 한 세기에 걸쳐 쌓아 온 방식을, 야에스는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처은 도쿄역 광장을 마주하며 역에 앞면과 뒷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역의 앞면은 건물이 향한 방향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걸어 나와 머물 수 있는 쪽이 앞면이다. 마루노우치 광장에서 지붕 너머로 머리를 내밀던 그 타워들 아래에서, 도쿄역은 지금 한 세기 만에 뒷면을 잃어 가는 중이다.


글, 사진 | citevoix

내용 참고 | JR동일본, 미쓰이부동산, 도쿄도 도시정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