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中-
그날도 나는 습관처럼 웃었다.
재미있어서 웃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웃은 것도 아니었다.
억지로 웃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웃고 싶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 웃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내 감정을 신뢰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쁜데도 괜찮다고 말했고, 괜찮은데도 괴롭다고 생각했다.
떠나고 싶은데 남아 있었고, 남고 싶은데 먼저 떠났다.
그러니 그날의 웃음 역시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확실한 것은 모두가 만족스러워 보였다는 것뿐이다.
테이블 끝에 앉은 남자가 그 자리에 없는 동료의 이름을 꺼냈다.
누구는 술이 들어가자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고, 잔을 부딪칠 때마다 얼음이 듣기 좋게 울렸다.
그 동료가 얼마나 눈치가 없는지, 부장 앞에서 어떤 멍청한 말을 했는지가 한참 동안 안줏거리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는 오래 이어졌다.
술은 몇 병이 더 비었고, 사람들은 몇 번이나 더 웃었다.
그 동료는 그 자리에 없었는데도 가장 오래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나는 적당한 순간에 잔을 들었고, 입꼬리를 적당한 높이로 올렸고, 적당한 타이밍에 그러게요, 하고 받았다.
"그러게요."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는 그 동료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잔을 들었다.
그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럽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예전의 나라면 적어도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정 정도는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웃었고, 맞장구를 쳤고, 잔을 비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야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저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럴 자격이 있는 걸까.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었고, 심지어 몇 마디를 보태기까지 했는데.
생각해 보면 사람을 싫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누구나 싫어할 만한 구석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구석들을 경멸하다 보면 결국 내 안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발견된다는 점.
나는 남들의 잔인함을 싫어했지만 정작 그 잔인함이 필요한 순간에는 침묵했다.
남들의 비열함을 싫어했지만 정작 그 비열함 덕분에 분위기가 유지될 때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가끔은 인간관계가 사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들을 드러내는 일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는 타인을 짓밟으면서 드러나고,
누군가는 침묵하면서 드러난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불쾌하면서도 웃고,
경멸하면서도 맞장구를 치고,
돌아와서는 혼자 그 일을 곱씹는다.
그것이 몇 년이고 반복되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슬롯성이라고 불렀다.
원만함이라고 불렀고,
배려라고 불렀고,
어른스러움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말들이 싫었다.
그 단어들은 지나치게 건강했다.
마치 내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그러나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건강하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썩은 이를 뽑아내듯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상처가 아물듯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안쪽 어딘가를 아주 작은 벌레들이 오랫동안 갉아먹은 흔적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알아차리기 어렵다.
사람들은 내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예전보다 편해졌다고도 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사라진 것들은 대개 말이 없으니까.
그런데 아주 드물게,
예전 같았으면 분명 화를 냈을 순간에 아무 감정도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견딜 수 없었을 말을 듣고도 그냥 웃어넘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잠시 생각하게 된다.
성숙해진 것인지,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부분이 닳아 없어져 버린 것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았을 순간에, 지금의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좋아졌다고 말한다.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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