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세상의 친구들

SNS 시대의 새로운 인간관계

byItz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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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XX 작가님이랑 사이좋으신 것 같아요."


글쎄? 과연 어떤 '사이'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 사이'라는 말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다만 누군가에게 "온라인 친구"라고 소개하면, 왠지 모르게 진정성이 결여된 가벼운 관계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플랫폼에서의 지인'이라 부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원래 지인(知人)이란 아는 사이를 뜻한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지만, 분명히 알고 지내는 사람들. 과거에는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전제되어야 했지만, SNS 시대는 온라인 공간만으로도 이러한 지인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례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늘 친절하게 소통하려 노력한다. 마치 이전부터 잘 알던 지인처럼 편안하게 대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고맙고, 반갑고, 더 친해지고 싶다는 이 세 가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SNS 공간이 가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여전한 한계가 있지만.


같은 바카라을 읽으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 이웃들, 사진과 글을 매개로 만나 수년째 일상을 나누는 이들, 트위터(X)에서 영화 이야기로 몇 시간씩 소통하는 누군가. 이들을 단순히 '타인'이라 부르기엔 너무 가깝고, 그렇다고 오프라인의 '친구'라 하기엔 어딘가 어색하다.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이 특별한 관계를 설명할 명확한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플랫폼에서 '아는 사람', 즉 '지인'이라는 말이 가장 편안할 뿐이다. 하지만 뭐라고 부르던 우리는 서로를 '어느 정도' 안다. 아니, '우리는 친하다'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최소한 해당 플랫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서로가 상대의 취향을 알고, 가치관을 알고, 때로는 은연중에 드러나는 아픔이나 약점까지도 이해한다.


그것이 바로 이 공간에서 갖는 지인 관계의 본질이다.


플랫폼은 만남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을 뿐, 관계의 깊이까지 제약하지는 못한다. 같은 관심사로 묶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매일 만나는 지인들은, 때로 현실의 친구보다 더 깊이 있고 본질적인 대화를 나눈다. 적어도 그 관심 분야에서만큼은 그렇다.


이 가능성은 혈연이나 지역이라는 우연이 아니라, 순수한 취향과 가치관이라는 자발적 선택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유명인은 아무리 자주 마주쳐도 내 지인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관계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일방통행적 시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일본 전국을 여행하는 한 부부의 유튜브를 꾸준히 시청해 왔다.


어느 날에는 서툰 일본어로 조금 긴 응원 글을 남겼고, 일본을 방문할 때면 일정과 여행지를 알려 드릴 테니 혹시 가까운 곳에 계신다면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며 이메일 주소도 함께 남겼다. 이후에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꾸준히 그 부부를 응원하며 안부를 묻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등 소소한 교류를 이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메일 박스에 일본어 제목의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바로 그들이었다. 기나긴 여행 생활 가운데 두 사람이 겪는 부부 사이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메일이었다.


그렇게 수십만 명의 팔로워 중 한 사람에서 개인적인 관계가 시작되었다. 내가 진정성 있게 다가가자 그들 눈에 그 진정성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진정성을 가지고 마음 문을 열고 더 깊고 넓은 '지인의 관계'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화면이라는 차가운 유리막을 넘어, 오직 진심 하나만으로 서로에게 가닿았던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기적 같은 연결이 늘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플랫폼 속 관계들에는 대체로 피하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한다.


가상공간이라는 투명한 장벽,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공유하는 선택성, 그리고 클릭 한 번으로 언제든 관계를 끊을 수 있는 단절의 용이성. 이 세 가지 경계선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는 분명 현실의 오랜 친구와 구별되는 지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관계가 결코 허구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형식적인 제약이 마음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척도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은 플랫폼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진정성'에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좋아요'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면 결국 공허할 뿐이다. 특히 서로가 같은 입장에 놓인 이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에서는 조금 심한 경향이 있다. 글은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품앗이하듯 "옛다, 라이킷!" 하고는 1분 남짓한 사이 열 개 안팎의 글에 하트를 누르고 떠나가는 발걸음.


물론 관심을 가져주는 마음 자체는 감사하다. 그러나 형식적인 관심에서는 좀처럼 온기를 느끼기 어렵고,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러니 억지로 애써 주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정한 댓글 한 줄, 정성이 스며든 공감 한마디는 화면이라는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어 마음 깊숙이 닿는다. 그럴 때면 신발도 벗어던진 채 달려가 답글을 달고 싶을 만큼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비록 오프라인에서는 만나지 못해도 온 마음으로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응원한다면 진정한 지인이 될 수 있지만, 매일 곁에 머물면서도 가식적인 대화만 나눈다면 그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하지 않나.


우리가 댓글 창에서 조심스레 주고받았던 그 수많은 온기 어린 문장들도, 결국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확인하고 싶었던 조용한 몸짓이었을 테다. 스크린 너머의 존재에게 솔직하게 나를 보여주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플랫폼에서 만난 지인을 평생의 '친구'로 깊어지게 만드는 유일한 열쇠가 아닐까.


SNS 시대의 새로운 우정은 시공간을 초월한 진정성의 교환이다.


나의 온기를 건네고, 너의 마음을 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팔로우와 언팔로우가 숨 가쁘게 교차하는 가벼운 세상 속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갈구하는 가치도 결국 이것일 테다.


"너를 본다.

너의 말을 듣는다.

너와 이 순간을 함께한다."


이 단순하고도 명확한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스크린 속 '지인'을 넘어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가 된다.


"아셨나요? XX 작가님!"



토퍼의 빗각.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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