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 포함
우리는 슬롯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가장 힘든 순간은 대개 그 슬롯 속에서 발생합니다.
캐나다에 사는 친구는 SNS로 대화할 때마다 항상 제 안부부터 묻습니다.
“요즘 몸은 좀 어때? 나이 들수록 몸 조심해.”
사실 그 친구는 평생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친구였습니다. 그는 평생을 집보다 수술실에 머문 시간이 더 길었을 겁니다. 그때는 늘 제가 이런 안부를 물었죠. 그런데 은퇴 후 미국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하더니 아주 운동광이 되었습니다.
반면 저는 은퇴 후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젊은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처럼 청소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인생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서로의 안부 인사가 뒤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우리를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이 과연 육체적 피로뿐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 속에서 사람이 가장 힘들다”는 말이 정답에 가깝겠지요. 그래서 친구가 안부를 물을 때마다, "몸은 견딜만하지만 사람이 힘들지."라고 대답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마치 입에서 가시를 토해내는 듯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바로 뒷담화, 오지랖, 잔소리라는 ‘삼총사’ 녀석들입니다. 삶에 도통 도움이 되지 않기에 저는 이들을 ‘녀석들’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 삼총사를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없는 사람 이야기 하는 ‘뒷담화’,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는 ‘오지랖’,
했던 말 계속 반복하는 ‘잔소리’.
이런 일에 능한 사람을 만나면 하루의 에너지가 통째로 고갈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곁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거나 주도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언제나 ‘말’이 우선이거나 전부라는 사실입니다.
흔히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보다 옆에서 거드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가장 원망스러운 존재는 그 상황을 방치하는 ‘남편(놈)’ 아닐까요?
어쨌든 이 보기 싫은 삼총사는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본인들이 타인에게 ‘피하고 싶은 존재’로 비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걸까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보려 해도,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타인의 실수나 삶에 대한 이런 과도한 반응은 단순한 성격 차이일까요, 아니면 깊은 심리적 결핍 때문일까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물론 ‘자신’도 이런 스타일이라면 나부터 점검해야겠죠. 저도 가끔 이러는 경우가 있어 갑자기 스스로에게 감전사할 정도의 전율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가장 공통적인 원인은 그 사람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심리적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실패나 부족함을 마주할 때, 그것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을 확인하는 기회로 ‘소비’하려 합니다.
‘뒷담화’는 비교를 통해 은근한 우월감을 확보하려는 방식이고, ‘오지랖’은 타인의 문제에 개입함으로써 스스로를 더 유능한 위치에 올려두려는 시도입니다. ‘잔소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복되는 훈계를 통해 ‘내 판단이 옳다’는 확신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어릴 적 기관총을 뭉뚱그려 따발총이라고 불렀습니다. 발사할 때 소리가 ‘따따따…’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세 가지 증세가 나타나면 사람들 입술에 자동으로 이 ‘따발총’이 장착되어 여러 사람에게 무작위로 상처를 입힙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지면 이들의 행위는 아주 자연스럽게 정당화됩니다.
바로 관계 속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뒷담화를 통해 관계 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오지랖을 통해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로 보이길 바라며, 잔소리를 통해 자신이 가장 바카라임감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행위는 상대를 향한 배려라기보다, 자신의 불안과 통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습니다.
타인의 실수는 예측 불가능성과 불완전함을 드러내며, 이는 곧 구경하는 이에게 불안을 유발합니다. 그 불안을 견디기보다 사람들은 개입하고, 평가하고, 지적함으로써 상황을 통제하려 드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입장은 깨끗이 지워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피곤한 삼총사로부터, 그리고 우리 내면의 욕구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타인을 나의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로 소비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진정한 관계는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춰 교정하거나 평가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응시’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침묵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말이 앞서는 배려는 결국 상대의 영혼을 갉아먹는 칼날이 됩니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나 자신의 불안을 먼저 들여다볼 때, 비로소 ‘말의 가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진정한 온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타인을 소비하는 삶이 아닌, 타인과 함께 숨 쉬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니까, “나부터”.
[오늘의 처방전: 따발총을 멈추는 세 가지 약]
● 뒷담화 예방약: '거울 보기'
타인의 흠이 보일 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기 전, 내 마음속의 어떤 '불안'이 그 사람을 깎아내려 자신을 높이려 하는지 3초만 들여다보도록 합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충분히 당당하다면 남의 이야기는 필요 없답니다.
● 오지랖 완화제: '질문하기'
"내가 도와줄까?"라고 묻기 전에 "그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는가?"를 먼저 확인하세요.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친절은 배려가 아니라 침범이니까요.
● 잔소리 소독약: '여백 두기'
상대의 실수는 그가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여백'이랍니다. 내 말로 그 빈칸을 다 채우려 하지 마세요. 때로는 침묵이 백 마디 훈계보다 훨씬 더 큰 가르침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