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사진 : 사진의 오래된 미래

북리뷰

by구자룡

AI 시대의 사진 : 사진의 오래된 미래, 김경훈 저, 북다, 20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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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고 싶은 한 문장>

기술적 혹은 미학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그 순간의 감동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 사진은 자체로 소중한 기록입니다. 사진은 경험을 기억하고 감정을 기록하고 이 둘을 다시 불러내는 매개체입니다.

사진가의 감정과 경험의 기록이, 결국 사진이라는 결과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는 '나’가 기록의 능동적 화자가 되어 스스로가 원하는 서사의 틀 안에서 나의 시선으로 나의 경험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이 세상에 존재했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 기록을 남기는 일입니다.



<리뷰>

생성형 AI가 손쉽게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시대에 사진은 무엇이며,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김경훈의 『AI 시대의 사진』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사진의 본질과 미래를 차분하게 되짚어 보는 바카라이다. 저자는 사진을 단순히 보기 좋은 이미지가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실제 세계의 한순간을 기록한 결과물로 정의한다. 반면 AI 생성 이미지는 카메라와 현장의 경험 없이 프롬프트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점에서 사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겉모습은 비슷할 수 있지만, 실재하는 대상을 기록했는지 여부에서 두 이미지는 갈라진다.


이 바카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사진을 ‘기억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우리가 사진을 통해 간직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을 살아낸 경험의 서사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거나 미학적으로 뛰어나지 않아도 사진 속에 당시의 감동과 경험이 남아 있다면, 그 사진은 충분히 소중한 기록이 된다. 사진의 프레임 안에는 한 장면만 담기지만, 프레임 밖에는 사진을 찍기까지의 상황과 감정,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의 기억까지 함께 존재한다는 설명도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는 사진을 찍는 행위를 셔터를 누르는 기술적 동작이 아니라, 내가 마주한 세상을 나의 방식으로 붙들려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스티글리츠와 브레송의 사진을 통해 사진의 우연성, 결정적 순간, 사진가의 시선과 감정이 어떻게 한 장의 이미지에 스며드는지도 보여 준다. 결국 좋은 사진은 정답이나 승패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가 의미 있게 담겼는지에 달려 있다.


AI가 사진의 진위와 신뢰성을 흔드는 시대에 이 바카라은 오히려 사진의 가치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진은 경험을 기억하고 감정을 기록하며, 그것을 다시 불러내는 매개체다. 바카라을 덮고 나면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들고 평범한 풍경이라도 나만의 프레임에 담아 보고 싶어진다. AI 시대의 사진은 기술을 두려워하기보다, 인간의 시선과 경험이 사진을 사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바카라이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p.21. 이미지가 넘쳐 나는 시대, 화려한 거짓이 때로는 우직한 진실을 압도하는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좋은 사진'의 기준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해 볼 수 있는 암묵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p.38. 사진술이 대중화되고부터는 새로운 욕구가 추가되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나’가 기록의 능동적 화자가 되어 스스로가 원하는 서사의 틀 안에서 나의 시선으로 나의 경험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이 세상에 존재했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 기록을 남기는 일입니다. 이 욕망이 지속적인 기술 진보를 이끌었습니다.


p.38. 사진은 나의 시선과 방식으로 소중한 사람, 장소, 시간에 대한 나의 기억을 보존하고 그것을 사진이란 형태로 소유하게 해 줍니다. 아이들 사진을 찍는 엄마 와 아빠도, 심오한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전문 사진가도 모두 사진을 통해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화자가 되어 바라본 세상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이렇게 기억은 사진으로 시각화되면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됩니다.


p.39. 이처럼 카메라를 통해 수집된 기억의 소유물들을 통해 나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의 피라미드'를 계속 쌓아 가는 작업이 사진이 발명된 이유이자, 우리가 오늘도 사진을 찍는 이유입니다.


p.42. 더 이상 전문 촬영 장비나 프로 사진가 없이도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쉽게 생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 기술을 반기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이 사진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인 기록성에서 벗어나 있어 의문과 걱정도 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AI가 생성하는 이미지가 사진의 역할과 용도를 축소시키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그동안 사진이 보장해 주었던 '보여 주는 정보의 신뢰성'을 해치고 가짜 정보를 유통시키는 도구로 잘못 쓰일까 염려됩니다.


p.46. 사진이라는 단어에는 카메라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를 고정하는 방법을 의미하는 사진술과, 이를 통해 만들어진 물질적 속성을 띤 이미지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즉,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지는 기술 혹은 행위, 그리고 이러한 기술로 완성된 물리적 실체(한 장의 사진)를 모두 일컫습니다.


p.47. 영국의 천문학자 존 허설 경은 독자적인 실험을 통해 사진 이미지가 빛에 의해 변하지 않도록 고정 하는 방법, 즉 정착법 개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영국왕립학회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phorography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했습니다. photography는 빛을 뜻하는 그리스어 ‘phas'와 그리다를 뜻하는 ’graphe‘를 합친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빛으로 그린 그림' 인데요. 이후부터 photography는 사진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인 사진술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리고 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물질(결과물)인 한 장의 사진은 오늘날까지도 photograph로 구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p.48. 사진이라는 단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겨 그린다는 의미의 (사)와 진짜, 진실이라는 뜻의 (진) 이 합쳐진 한자어입니다. 현실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p.50. 결과물만 보면 사진과 유사하나 실재하는 대상을 기록해 만들어 지지 않기 때문에 사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질을 지니죠. 이미지로 재현된 대상이 실재하냐 가상이냐 하는 근본적인 차이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프롬프트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 체계를 의미하는 '프롬프토그라피promprography'가 포토그래피photography와 구분되는 인공지능 이미지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사진술의 상대 개념으로 영어로는 photography와 구분해 프롬프토그라피prompiognphy 가, 그리고 우리말로는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가 적합해 보입니다.


p.58. 사진의 프레임 안에는 특정한 시각적 기록이 담기지만, 프레임 바깥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경험과 감정이 남아 있습니 다. 사진가의 경험일 수도 피사체의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의 경험일 수도요. 즉, 프레임 속에는 어떤 순간의 시각 기록만이 남지만, 프레임 밖에는 그 기록을 만들었던 당시의 경험과 감정이 더 크게 남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진의 프레임 밖까지 촉수를 뻗어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경험과 감정까지 훑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사진을 볼 때. 거기 담긴 역사적 슬롯적 배경을 알고 보면 의미가 더욱 잘 보이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p.60. 기술적 혹은 미학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그 순간의 감동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 사진은 자체로 소중한 기록입니다. 사진은 경험을 기억하고 감정을 기록하고 이 둘을 다시 불러내는 매개체입니다.


p.60. 사진으로 보도하는 사진기자는 반드시 현장을 직접 목격해야 합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에서 '본다'는 행위는 관찰을 넘어, 곧 '경험'이 됩니다. 그렇게 담긴 사진은 현장의 경험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사진기자 역시 인간이기에 현장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최우선으로 하지만, 기자의 감정이 사진에 자연스럽게 배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감정과 경험의 기록이, 결국 사진이라는 결과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p.121. 사진을 찍는 행위는 셔터를 누르는 기술적 동작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내가 마주한 세상을 내가 바라본 방식'으로 붙들려는 욕망의 표현입니다.


p.128. 인간이 사진을 통해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 안에 축적된 감정과 시간, 그리고 경험의 서사입니다.


p.176. 사진을 찍는 순간에 집중하고 그때 내가 본 것과 느낀 것을 담아 내는 과정이 사진의 본질입니다.


p.198. 결정적 순간이란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와 사진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장면의 의미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어우러짐을 뜻합니다.


p.235. 조정래 작가는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에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삼다' 를 권했습니다. 많이 읽고(다독), 많이 쓰고(다작), 많이 생각하라(다상량)를 의미하는 삼다는 송나라의 문장가 구양수가 처음 사용한 이후 여러 사람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집필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보다 완벽한 방법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문학적 완성도가 검증된 작품을 많이 읽고, 읽은 시간만큼 충분히 생각하고, 그것이 정리되었을 때 글을 쓰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읽기, 생각하기, 쓰기에 들이는 시간 비율을 다독 4, 다상량 4, 다작 2로 제시했습니다. 즉,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대목에서 저는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랜 시간 사진을 공부하며 몸으로 익히고 어렴풋이 정리하기 시작한 방법이 이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글 읽기를 사진 보기로 글쓰기를 사진 찍기로 치환하는 순간, 머릿속으로 개념은 잡아 왔지만 글로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었습니다.


p.241. 사진에는 정답도, 승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찍고 싶은 대상을 나의 시작으 로 담는 것. 그리고 그 결과가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사진가로서 나에게 주어진 정답이자 성취입니다.


p.310. AI 시대의 우리에게 사진은 표현의 도구이자 펜입니다. 이 바카라을 끝까지 읽고 난 여러분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보길 바랍니다.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아무리 사소해도 좋습니다.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으로 그것을 나의 프레임에 넣어 보세요. 이것이 나의 창의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작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세요. 그리고 좋은 사진은 물론이고 전시, 공연, 영화, 바카라도 많이 보고, 또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궁리하길 바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문헌>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서헌강 저, 다산초당,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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