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5
헤밍웨이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의 글쓰기 지론은 ‘아는 것만 써야 한다’였다. 직접 보고 겪지 않은 것을 쓰면 언젠가 바닥이 드러난다고 믿었다. 작가의 상상력 또한 경험에서 비롯한다고 여겼고 “경험으로 배우는 게 많아질수록 더 진실에 가깝게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은 헤밍웨이가 작가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헤밍웨이는 전투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훗날 소설에 녹여냈는데, 그의 소설 작품에 자전적 요소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기사는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딱딱한 형식을 벗어나 대화체를 섞어 넣고, 소설의 한 장면처럼 상황을 묘사한다. 헤밍웨이의 직설적이고 간결한 문장은 첫 온라인 게임 에서 배운 글쓰기 기초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의 기사를 읽고 있으면 직접 보고 들은 현장이 그대로 그려진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저널리스트로서의 역량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롤로그
‘뉴 저널리즘’의 초창기 모습은 영국에서 사실주의적 소설(realistic novel)의 초창기와 똑같다는 것이다. 문학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 19세기 중반에 비평가들은 일상적으로 소설의 축자적 사실관계(literal accuracy)를 체크하곤했다. 마치 그 축자적 사실관계가 광고에 보장된 것이거나 혹은 작가가 지켜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흡사 요즘 영화 관람객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 제작자에게 ‘이 영화가 30년대 갱들을 다룬 것이라면, 어떻게 주인공이 1941년형 플리머스가 주차된 수족관에서 총을 맞을 수 있죠?’ 따위의 항의 편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당시 소설가들은 썩 내키지않았지만 불필요한 발품팔기 취재, 즉 ‘파헤치기(digging)’를 일상적으로 했다. 말 그대로 정확하게 쓰기위해서. 취재는 소설쓰는 과정의 일부였다. 찰스 디킨스는 작품 <니콜라스 니클비>를 쓰기위해 필요한 사실(material)을 얻기 위해서 친구의 아들을 찾는척하면서 가명을 써서 악명높은 요크셔의 기숙학교들을 세군데 이상 찾아다녔다. - 출처 : 고나무 기자 블로그 '픽션이 아니다'
인쇄 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인은 패혈증으로 부어오른 손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활자판의 납 성분이 긁힌 상처 속으로 침투한 것이다. 의사는 왼손 엄지를 절단하자고 말했다.
“아니, 그게 뭔 소립니까? 그게 참말입니까? 차라리 잠수함 잠망경을 자르는 게 낫죠! 저는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손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고요. 소싯적에는 하루에 인쇄판을 여섯 쪽까지 맞췄어요. 자동식자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죠. 지금도 인쇄 일에는 수요가 있어요. 원래 예술적인 일은 손으로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손가락을 잘라버리면······ 생각을 좀 해보세요, 엄지를 잘라버리면 이 손으로 스틱을 어떻게 잡습니까? 선생님, 꼭 잘라야 하는 게 맞아요?”
노인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뚝거리며 병원 문을 나섰다. 전쟁터에서 오른손을 잃는다면 차라리 자살하고 말겠다던 어느 프랑스 화가야말로 노인의 외로운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날 밤, 몇 시간 만에 노인이 돌아왔다. 잔뜩 술에 취한 상태였다.
“거, 의사 양반, 해버립시다! 자를 거 다 자르십시다!” 노인이 끅끅거리며 말했다. - 「구급차에 실려오는 사람들」(1918),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일반적으로 역피라미드 구조의 탄생 배경은 기술적 요인, 정치적 요인, 교육적 요인, 경제적 요인 등 네 가지로 설명된다(Pötteker, 2003 참조). 예를 들어, 기술적 요인은 역피라미드 구조의 탄생 시기를 미국 남북전쟁 기간(1861∼1865년)으로 본다. 당시 기자들은 기사를 전신으로 보냈는데, 도중에 끊기더라도 중요한 정보는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기사를 역피라미드 구조로 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피라미드 구조가 미국 신문에서 표준화된 기사형식으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그 수십 년 후다. 푀트커(Pötteker, 2003)는 1855∼1920년의 <뉴욕헤럴드>와 <뉴욕타임스>를 분석하여 1890년대까지는 역피라미드 구조가 표준이 아니었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역피라미드 구조는 1900년 즈음 미국 신문에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 - 「역피라미드 구조의 한계에 대한 이론적 논의(2008)」, 박재영 등
만약 산문 작가가 자신이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면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생략할지 모르고, 독자는 작가가 충분히 진실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마치 작가가 진술한 것처럼 그 사건을 강렬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빙산이 위엄 있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8분의 1만이 수면 위에 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 모르기 때문에 생략하는 작가라면 그의 작품에 공간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후의 죽음> 중
기자가 문학의 영역을 넘보자, 소설가는 언론의 영역을 침범했다. 취재한 사실을 기사에만 쓰고 더 풍부한 이야기는 소설로 옮겨 담는 ‘이중의 글쓰기’가 굳이 필요할까. 그냥 사실 그 자체로 가득한 소설을 쓰면 되지 않을까. 미국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는 야심을 품었다.
1959년 11월 미국 캔자스시티의 작은 마을에서 일가족 4명이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커포티는 이 사건에 대한 단신 기사를 읽고 흥미를 느꼈다. 이후 6년여 동안 피해자·살인자·목격자·수사관 등 수백 명을 직접 인터뷰해 주간지 <뉴요커>에 사건 기사를 연재했고, 1966년 단행본 <냉혈>(In Cold Blood)을 펴냈다. 그의 글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시켰다. 이 글은 무엇인가? 소설인가? 기사인가?
기대만큼 재미있진 않다는 ‘개인적 리뷰’를 전제하고 말하자면, 커포티의 <냉혈>은 경계비이자 기념비다. 사실주의 문학의 전형이자 뉴저널리즘의 표상이며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원천이다.
문학계에서는 이를 소설이라 불렀다. <냉혈>은 ‘논픽션 소설’, 즉 사실을 옮긴 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커포티 자신도 소설로 여겼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을 해냈다. 오직 사실로만 이뤄진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언론계에선 이를 기사로 보았다. 미국의 기자 톰 울프는 <냉혈>을 극찬하면서 “이제 문학은 저널리즘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뉴저널리즘’이라는 말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1973년 <뉴저널리즘>이라는 바카라을 펴냈다. 이 바카라에는 톰 울프를 비롯해 헌터 톰슨, 게이 탈레시 등 ‘실명으로 이뤄진 이야기’를 추구했던 당대 기자들의 기사가 담겨 있다. - 「기사와 소설, 이중의 글쓰기」, 2013년 11월4일 한겨레21일 온라인판, 안수찬
(글을)장면(scene-by-scene)으로 글 구성하기, 대화, 시점, 그리고 슬롯적 삶 묘사하기(detailing of status life). 장면 구성과 대화는 활자 작가보다 영화감독이 더 잘 구사한다. 그러나 시점과 슬롯적 삶의 묘사는 필름보다 활자에서 더 잘 구현된다. 어떤 영화감독도 인물의 마음속으로 관객을 데려가본 적이 없다. 영화감독들은 별걸 다 해봤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도 시도했다. 카메라를 주인공의 ‘시점’으로 삼기도했다. 요즘 유행은 메모리 플래시(플래시 백)이다. 그 어떤 것도 영화 속 인물 속의 머릿속으로 당신을 데려가주지 못했다. 어떤 사실주의적 소설들은 매우 성공적으로 주인공의 정신적 삶과 정서적 분위기를 구현했다.
리포터로서 당신의 중요한 과제는 당신이 취재하고자하는 장면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만큼 충분히 오래 취재원옆에 머무를 수 있느냐다. 다른 취재 비결이나 장인의 취재 비법같은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