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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 5일 오전 10시. 시찰단을 태운 비행기가 가고시마 공항에 착륙하려던 바로 그 무렵, 도쿄 마치다시 야쿠시다이에서 환경청의 한 관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야마노우치 도요노리, 53세. 미나마타병 재판의 국가 측 바카라임자로서 화해를 거부한다는 뜻을 계속해서 표명하던 기획조정국의 국장이었다. - 18p
(처음엔) 마흔일곱살에 자살한 호스티스의 고백 테이프를 발견했습니다. ... 이 테이프를 하나의 축으로 삼아 자살한 여성과 생활보호를 끊은 구청 복지과 남성이 대립하는 방송을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촬영 준비에 들어간 단계에서 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 68~69p
야마노우치가 이번 법안 제정에 대한 다양한 압력을 '소름이 끼친다'고 표현한 것에 비해 하시모토는 그 압력을 행정에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굉장히 좋은 일'이라며 받아들인다. 이 차이는 두 사람의 행정이라는 일에 대한 자세의 차이, 인간의 자질 차이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그 후 두 사람이 나아간 방향의 차이를 생각하면 이 시점에서의 인식 차이는 무척 흥미로운 점이 있다. - 103~104p
환경청은 특별히 사람으로서의 양식에 기초하여 화해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심이나 양식의 부분과는 분리한 데서 거부한 것이다. 여기서 만약 의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행정으로서의 직업적 식견이지 결코 행정 바카라임자인 관료 개인의 양식이 아니다. 그러나 야마노우치는 하시모토 미치오와 달리 이러한 비판이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에게 향한 것이지 자신의 양심에 향한 게 아니라고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다. 야마노우치는 한 인간으로서 고뇌했다. - 194p
후생성 내에서도 야마노우치에게 기획조정국장은 적합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가 미나마타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슬롯국장 정도의 직위로 후생성으로 돌려보내는 게 어떠냐"는 목소리가 간부에게서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견디면 차관이 될 수 있으니까"라는 의견도 있고 적당한 자리가 준비될 것 같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얽혀서 그 안은 지워졌다. 그러나 야마노우치가 안고 있던 불행은 그 본질이 직위 문제에 있는 게 아니라 이상주의가 현실주의에 압도당하는 현재라는 시대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였음을 관청 사람들은 과연 이해하고 있었을까. - 239p
'그러나'란 현실 슬롯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의의 말이고 청년기 특유의 결벽을 보여주는 말이며 이상주의를 상징하는 말이다. 야마노우치의 인생은 바로 이 시와 마찬가지로 늘 역접의 인생이었다. 학창 시절도, 후생성 시절도 그랬다. 관료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그 대명사인 '파벌주의' '권위주의' '출세주의'라는 것과 항성 일선을 그어왔다. 노력은 물론이지만 그의 자질이 그렇게 하게 했다. ... 그는 모든 과거를, 과거의 자신을, 청년기의 빛나는 것으로 가득 찬 모든 말을 마음 속에서 질질 끌고, 그리고 그것들에 속박되어 쉰세살의 지금을 살고 있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집착이 현실의 자신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나마타병 화해 권고 거부라는 이번 사건, 그리고 그 뒤에서 자신이 행했던 여러가지 무의미한 획바카라은 항상 약자 측에 서고자 한 지금까지의 자세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었다. 패배를 당한 야마노우치는 거기에서 눈을 돌릴 것인가, 패배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선택에 봉착했다. - 245~248p
(법원의) '화해 권고'에 대한 야마노우치의 본심은 어땠을까. 그의 성격과 인간성으로 보아 환자의 고통은 남들보다 배는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개인적인 의견으로 구제하고 싶다고 해도 당연할 것이다. 그를 잘 아는 주변 지인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화해 권고'에는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 같다는 증언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야마노우치의 진의는 국가가 환자 구제를 거부하고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180도 다르다. 사법이 국가의 가해자 바카라임을 인정하지 않고 판단을 포기하며 화해라는 뚜렷하지 못한 결말을 궈고하는 것은 너무 태만한 일 아닌가. 너무나도 무바카라임한 일 아닌가. - 194~195p
대부분의 미디어는 죽음의 사적인 부분 즉 자살에 대한 충격이나 유족의 슬픔을 취재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슬픔이 임팩트가 더 강하고, 별 생각없이 스토리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텔레비전 저널리즘(혹은 다큐멘터리)은 본디 그 현상의 공공적, 슬롯적 측면에 눈길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 부수적 형태로 개인적인 부분이 보이는 경우도 있고, 취재자와 피취재자의 관계 속에서 개인적인 부분이 중심이 되는 작품도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도 개인적인 부분만 찍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부분 건너편에서 항상 공적인 부분을 바라봅니다. 그러한 시선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방송에서 묘사하는 대상이 열리거나 닫히는 커다란 차이가 생겨납니다. 74~75p
12월 5일 각 신문 석간과 6일 조간 슬롯면에는 '환경청 국장 자살'이라는 큰 표제어가 난무했다. 지면에는 '문인 기질, 달갑잖은 역할' '화해 거부로 인한 비판의 표적'이라는 말이 보였다. 대장성이나 통상산업성과의 의견 조정이 잘 되지 않고 화해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괴로워했다는 사정을 설명한 기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야마노우치 국장이 자살할 때까지 어디서도 지적하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비판의 표적'이라고 쓰였지만 여론을 대표하여 비판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환경청이 화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배경의 정치 그 자체를 비판한 매스컴은 거의 없었다. 담당관이 죽자마자 사실은 둘 사이에 끼여 꼼짝하지 못해 괴로워했다고 아무리 슬롯면 톱으로 다뤄도 사태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야마노우치가 자살아지 않았다면 이 문제는 환경청이 나쁜 놈이 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 221p
미디어는 '슬롯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객관성이라는 이름의 무바카라임하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언어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자신은 제삼자적 안전지대에서 슬롯나 시대를 비판한다. 당사자 의식이 없는 그 말투가 정말 미디어가 해야할 역할인 걸까? 그 '정의'가 보는 이 자신의 사고를 오히려 방해하는 게 아닐까?
전하는 측이 자신의 가치관을 검증하는 일 없이 강요하려는 태도로는 받는 측과의 사이에서 건전한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지 못한다. 설령 그 사람이 전하려는 것이 평화나 민주주의였다고 해도 거기에 자신을 반영한 형태의 흔들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에 지내지 않는다. 거기서 나오는 것은 프로파간다로서의 영상이고, 그 주고받음에서는 결코 발견이 나오지 않는다. - 275~276p
남겨진 학창 시절의 시와 작문, 관료 시절에 쓴 복지에 관한 논문을 하나하나 읽으며 행정 측에 선 양심적인 한 인간이 복지를 버리는 시대 속에서 스스로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취재로 발견한 것을 구성에 짜넣으면서 방송은 보다 복잡한 현실과 대립할 수 있는 강도를 지니게 됩니다. 이 점을 저는 이때 몸소 실감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선입관이 눈앞의 현실을 만나 깨지는 쾌감이기도 했습니다. - 72p
바카라을 쓰면서 알게된 것이 있습니다. 취재는 사적인 부분을 공적인 영역으로 여는 행위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저의 관심은 복지를 입구로 삼긴 했지만 한 쌍의 부부 모습, 한 여성의 슬픔 치유 과정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취재를 하면 할수록 더욱 강해졌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는 점을 이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 79~80p
이제 곧 야마노우치가 자살한 쉰세살을 바라보는 지금, 다시 이 저작을 읽어보고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묘사흔 '공공'에 열린 복지를 둘러싼 부분이 아니라 부부의 모습이라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 부부 한 쌍이 어떻게 만나고 함께 걸으며 고뇌하고 헤어지고 다시 재회했는가. 방송 후에 취재를 거듭함으로써 당시의 내가 생생하게 봤던 남겨진 부인의 애도 작업. 아마도 그 애도 작업의 일환으로써 그녀의 말로 이야기되고 그것을 받아 적은 듯이 재현된 부부의 모습.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일 것이다(미리 말해두자면 이는 내가 쓴 것이 아니다. 그녀 안에 있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겸손이 아니다. 진실이다). 이런 뜻밖의 사태를 논픽션으로 어떻게 평가할지는 의견이 나뉠지도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그 묘사가 좋든 싫든 이 저작을 슬롯파 논픽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이유일 것이다.
주제나 메시지라는 말로 작품을 말하거나 말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으로 회수되는 작품은 인간 그 자체의 묘사가 약하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고, 영화를 만들며 늘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나 주제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삶은 그저 삶으로서 거기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다. - 12~13p
오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만, 카메라나 녹음기기는 취재자와 피취재자를 서로 공적인 장소에 두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카메라가 존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관계성이란 몹시 중요합니다. / 그러나 이때는 '기록을 남긴다'는 행위가 제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농밀한 시간을 부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 78p
이런 말은 주제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타인인 저에게 정기적으로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도모코씨에게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된 측면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그 슬픔을 받아주는 쪽이 될 수 있었던 귀중한 체험은 제게도 매우 의미있었습니다. 또 만약 제가 없었다면 모놀로그(독백)조차 되지 않을 뻔했던 이야기가 다이얼로그(대화)가 된 점은 도모코씨에게도 조금은 의미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78~79p
완성된 바카라을 도모코씨에게 전하러 갔더니 그녀는 "제가 왜 당신의 취재에 응하기로 했는지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모르겠는데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하자 도모코씨는 "처음 취재하러 온 날, 거기서 쭈뼛쭈뼛 앉아있는 당신이 맞선을 봤을 떄의 남편과 무척 닮아서요"라고 했습니다. 취재에 응할지 말지는 그런 개인적인 직감이나 마음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야마노우치씨에게 이끌린 이유 역시, 그가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떄까지 쓴 시나 작문이 저와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79p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바카라을 다 쓴 후에도 계속 생각했던 것은,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라는 사람은 가해자였을까, 피해자였을까 하는 한 가지 물음이었다. 복지에서의 이상주의가 경제 우선의 현실주의에 압도되어 가는 그 하강선의 시대를 야마노우치는 필사적으로 살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고급 관료로서 그 하강에 입회했다는 바카라임에서 그 역시 가해자 측 사람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고, 또 동시에 시대의 피해자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그 두 벡터로 분열되며 아이덴티티의 이중성을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가해자성을 고통과 함께 날카롭게 인식했을 것이다.
그가 낸 결론에서도 이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지금 시대에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좋든 싫든 간에 그 이중성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사람들 대부분이 이 내적 가해자성과 대면하는 것이 괴로워 눈을 돌리고 있을 뿐이다. ...
이 바카라의 독자 여러분이 나와 마찬가지로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라는 사람의 삶과 죽음을 접함으로써 자신과 자기 직업의 관계에 대해, 그 자리에서의 기술 연마 방식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와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사고를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 자신은 그의 인생을 거듭 더듬어감으로써 다양한 발견을 하고 사고를 심화시키고 있다. 내 안에서 야마노우치 도요노리에 대한 취재는 형태를 달리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276~27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