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을 보고 난 후... (부제: 애국과 진실 사이)
"더 이상 들추지 맙시다. 그걸 궁금해할 국민이 몇이나 된다고."
- 영화 [암살자들] 중에서 -
진실을 밝히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진실은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진실은 한 명을 살리고 또 다른 한 명을 죽인다. 때문에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려 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감추려 한다. 언론과 권력(기업과 정부)은 진실 때문에 충돌한다.
때문에 글은 종종 돈과 힘에 의해 포섭되기도 제압되기도 한다.
솔직한 사람은 때론 위험하다. 솔직함과 진실됨은 다르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솔직함이 진실된 것이라 말한다면 진실은 그 슬롯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된다. 그럼 진실은 두려운 것이 되어버린다. 만약 그 진실이 자신의 치부나 혹은 타인의 치부를 들추어내는 것이라면.
언론은 사실로 진실을 드러내려 하고 문학은 허구로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그런데 요즘은 문학(예술)이 언론의 역할까지 하려는 것일까….
문예(文藝 : 문학과 예술)는 표현의 자유에서 언론보다는 좀 더 자유로움 편이다. 물론 당대의 슬롯 분위기와 권력의 색깔과 태도에 따라 문화예술도 통제 혹은 감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은 즉시성이라는 글의 특성 때문에 바로바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금방 퍼진다. 빠르게 여론을 형성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정치는 상시 언론을 주시한다. 반면 또 그런 빠른 반응은 또 다른 사실에 금방 가려지고 덮여버리기도 한다. 언론은 즉시성이 강해 영속성이 약하다.
하지만 문예는 다르다.
한 사람의 지적 감성적 자극은 오래간다. 특히 편도체를 자극하는 서사와 묘사를 가진 것은 진실이든 허구이든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후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이 문화예술의 힘이다. 과거 급속한 경제 발전 시기에 대중들은 먹고사니즘으로 인해 이런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대중의 지적 수준이 올라와서 문화예술을 통해 슬롯적 현상을 예전보다는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생기고 있다. 경제시민에서 문화시민으로의 한 단계 도약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다음은 뭘까...
세간에 이슈가 된 영화였다. 노이즈 마케팅이 적중했다. 노이즈가 많으면 많을수록 관람객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전혀 생각에 없던 영화를 보게 된 것 이 때문이었다. 이제 언론인이 아닌 영화예술인들이 진실을 밝히는 것에 동참하려는 것일까? 허구로 진실을 말하려는 것인가?
"다른 무엇보다 내 나라에 지하철을 까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 영화 [암살자들] 중에서 -
나는 영화 속의 정우성(극 중 한상일_기업인)의 대사에서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기업을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언론과 정부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 자본의 논리에만 움직이는 존재이다.
영화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유명 영화배우들이 특별 출현을 했다. 그만큼 영화예술인들은 역사에 관심이 많다. 허구를 연기하는 자들이 왜 그렇게 역사적 진실 밝히기에 열성인 것일까. 이제는 지하철을 까는 것보다 영화와 예술문화 상품을 파는 것이 더 큰 애국이 되었기 때문일까? 사실 세계적 한류열풍과 한국의 예술문화가 돈을 벌어다 주는 커다란 애국의 한 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K-POP과 한국의 영화와 문학(순문학&웹소설)이 세계인들을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관심이 한국 관광과 문화 상품으로 이어져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지 않은가? 실례로 얼마 전 케이팝 데몬 헌터스(IP) 영화 한 편이 창출한 부가가치는 4조 5000억 원(상품, 푸드 포함)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이 논리에 충실하다. 문화 예술인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 건 그들의 자본의 힘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이건 이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산업은 없다. 소외되어 있었던 문학과 출판계도 지금은 기업과 연계되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문학 작품의 표지가 빵봉지가 되면 매출이 급증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자본증식이 애국이 되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현실에서는 같은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진실을 밝히는 것이 자본증식에 기여한다면 그것도 애국이 될 수 있음인가?
이건 애초에 애국이라는 단어가 국가의 경쟁력(=경제력)을 제고하는 것이라는 국한된 범위로만 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애국도 중요하죠, 하지만 기자에게 중요한 건 진실입니다.”
- [암살자들] 중에서 박해일(재환) 대사 -
이 대사가 가슴속에 깊이 남아 울림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기서 애국은 자본증식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무고한 희생 뒤에 의혹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기 때문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의 언론인과 문화예술인들이 처한 상황과는 다르다. 과거엔 진실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품이 아닌 슬롯와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불량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나만 알고 있는 진실, 비록 그것이 허구가 가미되었을지라도 그럴듯한 개인적 서사, 역사적 서사만이 특별한 가치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AI 시대에 또 하나의 변화 물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발한 것도 싫고 너무 독창성에만 위주하는 것도 싫고 그저 진실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 [김수영 전집 2_산문] 145p -
요즘 나는 산문을 자주 읽는다. 왜일까? 이제 AI가 인간보다 더 기발하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시대이다. 여태껏 세상에 드러난 모든 사실과 정보들은 이제 AI가 재조합(융합, 연결)해서 더 기발하고 독창적으로 출력(연출)할 수 있다. 그런 시대에 앞으로 무엇이 더 희소한 가치를 지니게 될까?
최근 문학계에 산문 열풍이 불고 있다. 유명 소설가들이 너도 나도 산문집을 출간한다. 산문을 쓰지 않던 (출간하지 않던) 작가들도 산문집을 낸다. 왤까? 이는 진실성(개인적 서사)과 연관이 있다. 이제 머잖아 소설은 소설가들보다 AI가 더 잘 쓰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럼 인간은 무엇을 써야 하나? 바로 진실이다. 소설보다 산문이 더 진실에 가깝다. 물론 이건 지극히 주관적 진실이다.
개인의 기억은 변형되고 왜곡되기에 산문 또한 허구에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사건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기억된다. 작가의 과거 경험의 기억이 허구적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진실로 믿고 읽을 뿐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영화 시작 전에 올라가는 자막은 우리에게 좀 더 큰 몰입감을 선사하지 않은가. 내가 나의 지인과 친구와 가족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주관적 기억에 근거한 것이다. 이 기억은 그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들이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럼 무엇이 진실인지는 결국 각자가 믿는 것에 근거한다. 진실이라는 상품은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 마틴 스콜세지, 봉준호 감독 -
우리는 AI시대에도 여전히 진실을 갈망할 것이다. 삶을 살지 않은 AI가 쓰는 완벽한 이야기 속의 삶보다는 실제로 삶을 살아간 자의 허술한 문학 속에서 진실을 찾고 짙은 감동과 믿음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제 예술과 문학은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다. 장르의 구분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소설가이면서 산문가이고 작가이면서 비평가이고 철학자이면서 또한 문학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제 전문가(Specialist)에서 교양인(Generalist)으로의 인간의 가치척도가 옮겨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문은 AI가 맡아야 할 부분이다.
이제 진실이 상품이 되는 시대이다. 나의 진실이 상품이 되면 그럼 그건 애국인가. 나는 아직 아닌가 보다. 팔려야 애국이다. 하지만 문학은 매문(賣文)으로 그 본질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어떤 게 (이)득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죠.”
- [암살자들] 박해일(재환) 중에서 -
이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 큰 이득이 되었기에 진실은 밝혀져야 하는 것일까? 국민들이 그 진실의 득실을 제대로 따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언제가 적기인지도 알기 어렵다. 진실은 밝히는 것보다 감당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진실을 밝히려는 의도가 더 나은 슬롯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진실로 애국하는 것 아닐까..
당신은 진실로 애국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