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현관이 있다

고요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by아르망

쉬세요 쉬세요 쉬세요 이 집에서는

바람에 날려 온 가랑잎도 손님이랍니다


많은 집에 초대를 해 봤지만 나는

문간에 서 있는 나를

하인(下人)처럼 정중하게

마중 나가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 무거운 머리는 이리 주시고요

그 헐벗은 두 손도


- 조정권, 『고요로의 초대』, 민음사, 2011 -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를 맞이하는 말인데,

가만히 읽고 있으니

오랫동안 밖에서 헤매던 나를

집 안으로 불러들이는 인사처럼 들렸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곳을 오간다.

회사와 집을 오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일 사이를 쉼 없이 건너간다.


몸은 늘 어딘가에 도착하는데,

마음은 자꾸만 늦게 따라온다.


그래서인지

집에 돌아와도

정작 나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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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고요한 시간이 단순히 '쉬는 시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은

몸을 쉬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집으로 데려오는 시간이었다.


그 고요 속에서는

평소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괜찮다고만 말하며 지나쳤던 마음.

애써 모른 척했던 서운함.

이유 없이 지쳐 있던 하루.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어린 나.


고요는

말 없는 조용한 시간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가

비로소 들리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든다.


숲길을 천천히 걷기도 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오래 바라보기도 한다.


한 줄의 문장을 읽다가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한 채

한참을 머물기도 한다.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안에서는

그제야 중요한 일들이 시작된다.


흩어졌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불규칙하던 숨이 잔잔해지고,

나도 몰랐던 내가

천천히 얼굴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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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고요는 그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많은 것들이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잃어버렸던 마음도,

미뤄 두었던 눈물도,

다시 웃을 힘도,

그리고

나 자신도.


이제는 안다.

자기 마음을

몇 번이고 다시 집으로 데려올 줄 아는 사람이

끝내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서둘러 문을 닫지 않는다.


혹시 조금

늦게 오는 내가 있을지 모르니까.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조용히 문을 열어 주기 위해.


어쩌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고요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내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

어서 들어와.

오래 메고 있던 하루는

문밖에 잠시 기대어 두자.


그리고

오늘도,

잘 돌아왔어.'


사람은

고요를 찾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요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난다.


그래서

마음이 가장 평화로운 순간은,

아무도 없는 시간이 아니라,

마침내

내가 내 곁에 도착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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