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의 봄날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 자유

by아르망


나무도 산도 계절도

그대로 붙잡아둘 수도 없고

내가 그 안에 끼어들 수도 없다.


그래도 그런 것들을

아름답다고 부를 수 있음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해방된 기분이었다.


- 미야시타 나츠, 『양과 강철의 숲』, 이소담 옮김, 예담(위즈덤하우스), 2016 -




아이들을 교회 키즈 프로그램에 맡겨 두고 근처 카페에 들어왔다.

약 세 시간.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이겠지만,

오늘의 나에게는 작은 계절 하나가 통째로 주어진 시간이다.


평소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온전히 나와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이.


아, 이 얼마 만에 만나는 나인가.

카페 2층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그리 높은 곳도 아닌데,

마음만은 산 정상에 올라선 사람처럼 자꾸만 외치고 싶어진다.


'야~~호~~'


ChatGPT Image 2026년 7월 29일 오후 11_46_14.png


재즈가 천천히 공간을 채운다.

그 음악을 따라 시선도 천천히 흘러간다.


마시멜로처럼 폭신한 의자.

곳곳에 놓인 작은 쿠션들.

부드럽게 휘어진 곡선과 단정한 직선.

문득 선(線)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나 싶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는 그렇게 어렵기만 했던 선들이,

오늘은 공간의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탁자의 나뭇결은 오래된 나이테를 닮았다.

마치 성숙한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구석구석 놓인 소품들도 하나의 여행처럼 다가온다.

골동품 자동차와 작은 보물상자,

클래식한 비행기, 먼 바다를 건너왔을 것 같은 범선.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고 있을 것 같은 빈티지 타자기.

기타를 든 남자의 동상.


유리병 속 꽃과 초록 잎들은 오랜 친구처럼

나란히 서서 신나게 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오늘은 이상할 만큼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풍경 하나하나가 또렷하다.


예전에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아이들을 데리고 몇 번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깨달았다.

세상에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은 모험도 있다는 것을.


예쁜 장식들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긴장의 대상이 되었고,

커피는 향을 음미하기도 전에 들이켜야 했다.

혹시라도 무언가를 깨뜨릴까 봐 마음은 내내 출구 쪽에 가 있었다.

결국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커피를 비우고 나오곤 했다.


'휴,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네.'

그 한마디에 안도하며.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풍경을 서두르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오래 머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참 충만하다.


바닐라 라떼를 한 모금 마신다.

오늘따라 거품은 더 부드럽고 향은 더 깊다.

커피 한 잔이 이렇게 달콤했던가.

입안에 번지는 풍미를 따라 마음까지 천천히 풀어진다.


ChatGPT Image 2026년 7월 29일 오후 11_41_49.png


주변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소리와 달리 내 입술은 조용하다.

하지만 내 안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아이들의 침묵은 늘 불안하다.

조용해서 가 보면 어김없이 벌어진 난장판.


그런데 지금의 침묵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떠밀린 고요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고독이니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렇게 잠시 나를 만나는 시간도 사랑한다.


카페에 앉아 있는 지금의 나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마음의 숲에는 어린잎이 돋고,

바닐라 라떼처럼 부드러운 설렘이 천천히 번져 간다.


카페 안의 풍경들은

오늘 나에게 나무였고, 산이었고, 계절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붙잡아 둘 수도 없고,

그 안에 오래 머물 수도 없다.


조금 뒤면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야 한다.


하지만,

잠깐의 자유는 나를 조금 다듬어 놓았고,

잠깐의 고독은 내 세계를 조금 넓혀 놓았다.


비록 겉모습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을 아름답다고 부를 수 있음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해방된 기분이었다.


ChatGPT Image 2026년 7월 28일 오전 12_43_29.png


작가의 이전글다정한 작은 구멍, 작은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