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사람을 대하는 마음
- 장석주 <대추 한 알>, 『붉디 붉은 호랑이』, 애지, 2005 -
이 문장을 읽고 난 뒤부터였다.
길을 걷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가던 풍경들이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았다.
어느 봄날,
담장 아래 조용히 피어 있는 민들레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다.
저 작은 꽃은
몇 번의 비를 견디고,
몇 번의 새벽을 지나
오늘 내 앞에 피어 있었을까.
세상에 혼자 자라는 것이 있을까.
꽃 한 송이에
수많은 계절이 스며 있고,
나무 한 그루에
셀 수 없는 바람이 머물러 있으며,
한 사람의 웃음 뒤에
말로 다 하지 못할 시간이 쌓여 있다.
- 정현종 <방문객> ,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
대추 한 알과
방문객.
하나는 작은 열매를,
하나는 한 사람을 이야기하지만
내게 결국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만 바라보지 않는 일.
그 안에 조용히 익어 온 시간까지 함께 바라보는 일.
그래서 오늘도
길가의 작은 꽃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 앞에서,
조금 더 천천히 걸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