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관계에 대하여
예전에 기타를 배운 적이 있다.
손끝이 줄을 처음 누르던 날,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손가락 끝의 아픔이 아니었다.
여섯 줄 뿐인 악기 안에
어떻게 이토록 많은 계절과 표정이 숨어 있을 수 있는지,
그 사실이 참으로 신기했다.
하나의 기타였지만
어느 줄도 다른 줄의 목소리를 대신하지 않았기에.
줄들은 그렇게
저마다 다른 높이에서 떨리고,
저마다 다른 울림을 품은 채
함께 하나의 음악이 되어 갔다.
어릴 때의 나는
사랑이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믿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닮을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을 오래 함께 건너다보니,
사랑은 닮아가는 일만이 아니라
서로를 서로답게 남겨 두는 일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도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길이 있고,
누구도 대신 견뎌 줄 수 없는 계절이 있다.
강은 두 기슭이 붙어 있을 때가 아니라,
서로를 마주한 채 거리를 지킬 때
비로소 흐를 수 있다.
나무도 너무 가까이 서 있으면
햇빛은 한쪽으로만 기울고,
꽃들은 피어날 자리를 잃는다.
사랑에도
햇살이 드나들 틈이 필요하다.
바람이 지나갈 자리 하나쯤은
남겨 둘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서로를 그늘로 덮지 않고,
한 사람의 계절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연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친구와 친구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는 마음은
관계를 오래 살아 있게 하는 숨이 된다.
기타도
줄과 줄 사이의 간격을 잃는 순간
더 이상 음악을 만들 수 없다.
한 줄이라도
다른 줄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면,
그 기타는
끝내 아무 노래도 품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기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음악은 줄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과 줄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기타는 여섯 줄이 하나라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여섯 줄이 끝내 서로가 되지 않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가장 사랑하는 사이라도,
각자의 고독 속에서 심어야 할 씨앗이 있다.
각자의 계절 속에서 피워야 할 꽃이 있다.
각자의 자유 속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 가야 할 나무가 있다.
기타 줄은
평생 서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평생 함께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