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이르쿠츠크

유라시아 기행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by김별


시베리아의 파리, 바이칼과 이르쿠츠크의 시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로 나흘을 달려 도착한 곳, 지구의 푸른 눈이라 불리는 이르쿠츠크(Irkutsk)다. 남북한의 78배에 달하는 거대한 영토, 동서 시차만 11시간이 나는 러시아의 품 안에서 바이칼 호수와 시베리아의 정취를 마주하는 시간들이었다.



시베리아의 파리, 12월 혁명 유배의 역사


바이칼호 서쪽에 자리한 이르쿠츠크는 17세기 러시아가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를 동쪽으로 개척하는 과정에서 세운 전초기지였다. 당시 러시아가 찾아 나선 것은 모피였고, 그 길은 바이칼을 지나 몽골과 중국으로 이어졌다. 지리적으로는 바이칼호의 관문이자 시베리아 개척의 중심지였다.


이르쿠츠크는 흔히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린다. 이 아름다운 별명의 이면에는 뼈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1825년, 나폴레옹을 격퇴하고 서유럽의 자유주의를 경험했던 러시아의 청년 장교들이 짜르체제의 전제정치를 타파하고 자유로운 공화국을 꿈꾸며 ‘데카브리스트(12월 혁명) 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모스크바에서 가장 먼 이 황량한 유배지로 끌려온 청년 장교들은 좌절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식과 예술적 소양을 쏟아부어 이 거친 변방을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그런데 혁명가들의 부인 중 자발적으로 남편을 따라나선 이는 120명 중 단 11명에 불과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나는 조금 뜨아했다. 귀족 가문의 여인들에게 시베리아 유배는 사랑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겠지만, 그래도 어찌 사랑을 선택하는 숫자가 그것밖에 안된단 말인가 싶어서 씁쓸했었다.

남녀의 사랑에서 지순한 열정은 갈 수록 드물어지는듯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래도 안나 카레리나의 나라에서 낭만이 있던 때였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남편을 따라 나서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남긴 헌신과 고결한 정신은 이르쿠츠크의 붉은 벽돌 건물과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 사이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오늘날까지 이 도시의 품격을 지탱하고 있다.


훗날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가 이곳을 지나면서 이르쿠츠크는 유럽 러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핵심 도시로 거듭났다.


칭기즈칸이 초원을 하나의 길로 만들었다면, 러시아는 철도를 놓아 그 길을 근대 문명의 동맥으로 완성한 셈이다.


출처- 동아일보



바이칼과 알혼섬의 민족적 시원


이르쿠츠크행의 진정한 목적지는 단연 바이칼(Baikal) 호수다. 호수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거대했다.


둘레는 2,000킬로미터가 넘고, 가장 깊은 곳은 2킬로미터에 이른다. 지구 담수의 5분의 1을 홀로 품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으며 가장 오래된 호수다. 2,500만 년 전에 생성된 이 태초의 바다는 사피엔스가 등장하기도 전, 영장류가 나타나기도 전에 태어났다. 330여 개의 강이 흘러들지만 흘러나가는 강은 오직 앙가라강 하나뿐이다.


바이칼이 품은 27개의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알혼섬의 지마봉(1276m)에 오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산 정상에는 우리 민족의 오방색을 닮은 색색의 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자작나무(밝달나무) 숲속에는 우리의 솟대와 장승을 닮은 나무 기둥들이 세워져 있어서 마냥 신기했었다.


식당에서 만난 아가씨 종업원의 낯익은 얼굴에 고려인인지 물었더니, 자신은 부랴트 원주민이라 웃으며 답했다. 만주와 몽골, 부랴트, 아메리카 원주민까지 북방계 민족이 공유하는 유전적 기억 속에서, 나는 이곳이 언젠가 우리 선조들이 거쳐 갔던 민족의 시원지가 아닐까 하는 깊은 전율을 느꼈다.


호숫가에 발을 담그고 한참을 서 있으니 시간의 감각이 사라졌다.


한낱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역사는 너무도 짧고, 자연의 시간은 끝없이 길었다. 러시안인들이 왜 이곳을 '신성한 바다'라 부르며 속죄하고 참회하는지,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푸시킨이 노래했던 러시아의 영혼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유민의 길과 러시아 정교회의 영성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해주를 거쳐 이곳에 이르는 길은, 가뭄과 가난을 피해 함경도를 떠난 유민들이 개척했던 눈물겨운 모피길이자 발해의 길이기도 했다. 국경을 넘어 신한촌을 일구고 의병 투쟁에 나섰던 선조들의 발자취가 이 거대한 시베리아 대지위 곳곳에 겹쳐진다.


도시 곳곳에서 만난 러시아 정교회 성당은 둥근 양파형 돔과 화사한 색채 덕분인지 서유럽의 성당보다 훨씬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주었다. 내부 역시 화려하기보다 정적이고 경건한 분위기가 깊게 배어 있었다.


이르쿠츠크의 둥근 돔 아래, 정적인 예배당을 바라보다 문득 한 인물이 떠오른다. 바로 26년째 러시아의 실권자로 군림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그는 과거 무신론을 국시로 삼았던 소련의 KGB 요원 출신이지만, 이제는 영성과 담을 쌓던 공산주의의 유산과 선을 긋는다. 그에게 이제 종교는 단순한 개인적 신앙을 넘어서, 구소련이 말살하려 했던 전통적 가치와 영성을 되살려 러시아인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이 된 셈이다.


현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와 푸틴은 비잔틴 제국 시절의 ‘교회와 국가의 조화’를 현대에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끈끈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크렘린궁과 총대주교청은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이며 서구의 ‘도덕적 타락’에 맞서는 수호자로서 러시아의 영적 결속을 다져왔다.


척박한 시베리아의 대지 위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정교회 성당의 종소리 속에 거대한 제국을 지탱하는 묘하고도 강력한 정교 유착의 서사가 묵직하게 깃들어 있는듯했다.


카잔성당 -사진출처 인터넷



영토적으로는 세계 1위이나 러시아 인구는 1억 4천만 명이다.


러시아 인구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러시아인이 다수를 이루지만, 고려인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이곳은 서유럽의 백인 문화보다 오히려 같은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점에서 더 큰 친밀감으로 다가왔다.


2016년 내가 찾았던 이르쿠츠크는 도시 곳곳에 다소 낙후된 모습도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은 순박했고 무엇보다 대국이 뿜어내는 광대한 자연의 위로 속에서 잠시나마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는 2미터 두께로 얼어붙어 자동차가 달린다는 한겨울의 바이칼을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칭기즈칸이 초원으로 유라시아를 하나로 묶었듯이, 러시아는 철도로 그 길을 완성해 태평양에 닿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이 기나긴 철길은, 파리까지 닿고자 했던 청년들의 꿈이자 언젠가 우리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파리로 향할 평화의 길이다.


문명의 시원에서 시작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는 이제 러시아가 태평양을 향해 품었던 꿈이 시작된 곳, 유라시아 철도의 동쪽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본다.



다음 화 예고: 시베리아의 얼음바다를 뒤로하고, 다음 화에서는 닫힌 철길과 열린 바다가 공존하는 대륙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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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와 호수 주변 오방색으로 물든 전망대. 이르쿠츠크 성당과 주민들

호수 안의 27개의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인구 3천명의 알혼섬, 그 높은 지마봉 1276미터에는 우리 민족의 오방색처럼 색색갈 천이 나부끼고 자작나무 일명 밝달나무 숲에는 장승도 있는데 우리 것과 흡사했다.

10년 전 사진이 이렇게 짜집기 된 것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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