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시리즈를 보고

30년 차 퇴직 교사의 소회

by김별



나는 30년 동안 중등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했던 교사다.

동시에 남편과 함께 제도권 공교육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두 아들은 대안학교로 보냈던 독특한 이력을 가진 학부모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점과 교실 현장의 적나라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이 있다.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바르게 키우기 위해 엄하게 가르쳐야 하고, 외려 미운 아이에게는 겉으로만 좋은 척 방임하면 된다는 교육적 지혜가 담긴 속담이다.


그러나 오늘날 입시 위주의 공교육은 이미 인성 교육의 끈을 놓아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인성을 넘어, 그나마 학교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지식 전달을 위한 수업’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드라마는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교육 현장을 떠나온 내 시선에 비친 극 중 모습은 극화된 단면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차가운 현실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드라마 ‘참교육’은 무너진 교권을 바로잡기 위해 교육부 산하 ‘교권보호국’의 영웅 같은 인물들이 등장해 문제 학생과 악성 학부모를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파격적인 서사를 그린다.


이 드라마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큰 각광을 받는 배경에는, 공권력과 교육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한 학교폭력의 피해를 매운 주먹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되갚아 주는 데서 오는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한 마디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의 원리다. 마치 중앙정부와 멀리 떨어진 시칠리섬에서 마피아가 실권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거 처럼.


그러나 드라마가 주는 속 시원한 통쾌함 뒤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길게 남는다. 물리적 폭력과 복수극은 당장의 사이다는 될지언정, 결코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면이 꺼진 뒤에도 여전히 미진하게 남는 그 지점이야말로 우리 슬롯가 다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진짜 ‘참교육’의 영역이다.




내가 근무했던 30년 동안에도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는 늘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드라마에 묘사되는 것처럼 학생들이 동급생이나 교사를 대놓고 협박하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조작해 여론을 선동하며 영악하게 폭력을 일삼는 일은 없었다.


과거의 체벌이 ‘사랑의 매’라는 이름 하에 교실 안의 훈육 수준에 머물렀다면, 지금 드라마 속 학교는 사이버 폭력, 원조교제, 마약, 심지어 조직폭력배와 연루된 거대한 범죄의 축소판과 같다.

이런 현실이라면 어떤 부모가 마음 놓고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겠는가. 결국 이 모든 비극적인 장면의 본질에는 학교와 교실 내 ‘정당한 권위의 붕괴’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가치관이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미완의 존재다. 그렇기에 학교는 단순히 입시를 위한 지식을 주입하는 곳을 넘어,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성을 갖춘 인간으로 자라나도록 돌보고 양육하는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그 역할을 해야 할 교사들은 부패한 권력형 학부모나 악성 민원을 쏟아내는 사이코패스 같은 이들에게 무방비로 휘둘리고 있다. 게다가 학교의 관리자들 마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과연 어떤 교사가 아이들을 사명감 있게 교육할 수 있겠는가.


현직에 있을 때, 나는 아이들이 무심코 뱉는 말 한마디만 들어도 굳이 가정방문을 하지 않고 그 집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었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유치원에 가기 전 가정교육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방증한다. 초등입학전 7세에 이미 인성의 틀이 완성된다는 말도 있다.

부모가 집에서 교사를 한낱 ‘월급쟁이’나 자기 아랫사람 대하듯 깎아내린다면, 그 아이가 학교에 가서 교사의 말에 권위를 부여하고 귀를 기울이겠는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교실은 슬롯와 가정의 거울이다. 학교 교육 못지않게 부모의 역할과 슬롯적 대접이 아이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타격을 준다.


어느 슬롯나 조직에든 최악의 인간형은 존재하며, 교실 안에도 거친 아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최하위의 몇몇이 교실 전체 분위기를 휘어잡고 난장을 판을 치는데도 시스템이 이를 방관한다는 점이다. 질서와 권위가 완전히 무너진 교실은 하이에나의 소굴과 다름없다.


그 안에서 교사의 수업권은 물론, 다수 학생의 건전한 친구 관계와 학습권은 사정없이 짓밟히고 결국 줄줄이 무고한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무너지는 교실의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자 바카라임이다.




교육에는 오답은 있어도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살아 숨 쉬는 인격체를 대하는 교육 현장에서 100% 완전한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의 노력뿐만 아니라 슬롯적 공감대,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의 바카라임 있는 가정교육이 삼박자를 이루어야 한다.


나는 현직 시절 일 년에 몇 차례씩, 진도 나가기 바쁜 아이들의 바카라을 과감히 덮게 하고 인성 교육을 하곤 했다. 몇몇 아이들이 불안한 기색으로 “선생님, 진도 나가야 해요”라고 말할 때면, 나는 단호하게 일갈했다.

“공부만 잘해서 나중에 나라의 큰 도둑놈 될 생각은 하지도 마라.”


오늘날 우리의 입시 교육은 좋은 점수를 받아 명문대에 가고, 대기업에 취업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을 목표로 삼은 지 오래다.


부모들 역시 자녀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오죽하면 자기방 청소도 안 하는 요즘 애들이다. 집안일을 돕거나 가족의 대소사를 챙기며 배려를 배우기보다, “밥 빨리 먹고 학원이나 가라”며 공부라는 면죄부 하나로 모든 기본 도리를 생략해 준다.

‘공부만 잘하면 인성이 어떻든 다 용서된다’는 일등 지상주의 문화가 가정에서부터 묵인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을 키울 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조건적인 허용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외식 자리에서 지나치게 장난을 치고 소란을 피우면, 식당 구석에서 엄하게 벌을 세우다 일남팔녀 외아들의 두 손주를 두신 시어머니께 내가 되려 호된 꾸중을 듣기도 했다.


외국 부모들은 자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외출 금지 같은 벌칙을 당연하게 내리며 슬롯적 약속을 가르친다.

반면, 한국의 수많은 부모는 공부만 1등이면 사달라는 것을 다 사주며 그것을 부모의 미덕이라 착각한다.



결국 지금 학교의 비극은 우리 어른들의 자업자득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배운 가치관을 학교라는 도화지에 그대로 투영할 뿐이다. 서로 양보하고 공존하는 법 대신 “돈과 성적이 최고”라는 부모의 노골적인 가치관을 학습한 아이들은 교실에서도 그대로 행동한다.


드라마 ‘참교육’은 무너진 공교육에 묵직한 돌직구를 던지지만, 동시에 우리 슬롯와 가정, 그리고 부모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가해자의 부모들이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개중에는 돌연변이 자식도 있긴 하다.


그러니 부모와 슬롯, 학교 모두가 극 중의 통쾌한 사이다 액션에 대리만족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어떻게 ‘인간답게’ 키워낼 것인가에 대해, 우리 시대의 ‘진짜 어른’들이 더 깊이 아파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교사인권 학생인권 따로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며 그 신성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협력하고 조화로워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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