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친정 모임 이야기

한 알의 밀알이 울창한 나무가 되어

by김별


우리 친정 사촌들은 일 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모인다.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4남매를 홀로 키워내신 친할머니의 택호를 딴 'OO가' 모임이다.


내 나이 20대에 시작하여 자녀들이 어린 시절 바닷가와 계곡을 오가며 계속된 이 모임이 어느덧 40년을 훌쩍 넘겼다.


송정 바닷가와 송일정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아이들은 자라 출가했고,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는 요양원에 계신 작은 고모님과 구순이 넘은 큰 고모님만이 자리를 지켜주신다.


이번 모임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피도 섞이지 않은 조카사위들이 일박이일 내내 고모님의 굽이굽이 살아온 이야기와 한 풀이 섞인 노래를 공감하며 듣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정'의 힘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뭉클해졌다.



자갈치회와 함양 두릅의 만남, 그리고 부산국밥


부산 송정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 자갈치에서 공수해 온 싱싱한 회를 맛봤다. 우리 시골집에서 갓 뜯어온 두릅과 엄나무 순도 인기 최고였다. 아들·며느리 팀과 딸·사위 팀으로 나눠 윷판을 벌이니, 가슴속에 고여있던 일상의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씻겨 나갔다.


사실 사람 사는 세상에 왜 갈등이 없었겠는가. 형제끼리, 사촌끼리 사소한 충돌과 불화도 있었지만, 이 모임이 화해의 촉매제가 되어주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다 보니 누군가는 당겨주고 누군가는 밀어주며 40년 세월을 버텨온 것이다. 영원한 회장님인 왕언니와 네 집이 돌아가며 봉사하는 총무들의 헌신 덕분이기도 하다.


모처럼의 나들이인 만큼 며느리들에게 먼저 "바닷바람 쐬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딸들이 나가 해변 버스킹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며 소화를 시켰다. 흥겨운 노래 뒤로 옛 바닷가의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큰 고모는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노래와 이제 끊으신지는 오래지만 '남초'로 견뎠다. 학교 문턱도 못 가 보셨는데 신기하게 기억력도 좋으시고 돈과 숫자개념은 아예 없으신 분인데 정은 오염되지 않은 옹달 샘물같아서 내가 천년 기념물이라 별명을 붙였다.


부산 갈매기 노래는 주로 야구장에서 부르고 기장 갈매기, 자갈치 아지매등 부산 노래도 있는데 해운대의 사랑이 흥겹다.


이튿날 아침, 부산 국밥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다음 가을 모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 마음이 꽉 찬 포만감을 느꼈다. 옛날 할머니 집 마당에서 소 한 마리를 다 잡아먹으며 잔치를 하던 그 시절처럼 말이다. 집안에서야 엎치락 뒤치락도 하지만 밖에서 누가 우리 가족을 헐뜯으면 서슴없이 날을 세우는 '우리가 남이가' 정신도 여전하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의식처럼 할머니를 떠올린다. 6.25 전쟁 중에 장남이 실종되는 모진 풍파를 견디며 자식들을 억척스레 키워내신 할머니. 지금의 서른다섯은 아직 세상이 낯선 청년의 나이일지도 모르나, 그 시절 할머니는 이미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스스로를 땅 밑에 묻으셨다. 그 희생의 토양 위에서 감자알 같은 우리 열여섯 사촌이 각자의 빛깔로 여물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숙연해진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촌 오빠의 빈자리를 잊지 않고 지켜주는 올케언니를 보며,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하는 가족의 끈을 실감한다. 이제 어느덧 손주를 둔 조부모 세대가 된 우리들. 앞서간 이들이 남긴 사랑을 되새기며, 남은 시간 서로의 안부를 귀히 여기자고 다짐해 본다.


할머니라는 깊은 뿌리에서 시작된 이 울창한 나무는, 오늘도 우리라는 가지를 뻗어 가족이라는 이름의 비옥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 기사는 오 마이 뉴스에도 채택되었습니다~^^


- 40년 된 친정 모임, 그 뿌리에 있는 한 사람 : https://omn.kr/2hy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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