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지금은 네가 안 다닌대서 안 가는 거고, 너 예전에 피아노, 미술, 수영, 공부방, 태권도, 합기도 또 뭐냐, 플라잉 요가까지 했었잖아. 안 보내주긴 뭘 안 보내줘!"
"내가 다니고 싶어서 다닌 건 별로 없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네가 다니고 싶다고 해서 다닌 게 아니었구나 그게... 나 뭐 한 거니?'
딸은 그간 내가 해준 것들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하면서 지금 자신이 원하는 걸 당장 해달라 조르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나도 그런 걸까? 엄마가 내게 해준 게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엄마가 해주지 못한 것만을 기억하는 걸까? 자식이란 게 이런 건가... 한숨이 났다.
딸은 다음 날 친구들과 체육관에서 체험수업을 하고 왔다며 내 앞에서 배운 걸 해 보였다.
"엄마, 잘 봐. 나 쩔지?"
"뭐가? 춤추냐?"
"아 잘 봐. 쩔지?"
손을 잽싸게 뻗는 동작인 거 같은데 느릿느릿. 보고 있자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너 나 웃기려고 일부러 그러지?"
"아냐. 잘 봐. 관장님이 나 잘한다 그랬어. 진짜 쩔지?"
"그래. 쩐다. 쩔어."
"그럼 나 내일부터 다녀도 돼?"
"아뉘."
나는 정 다니고 싶으면 중간고사가 끝난 뒤에 시작하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딸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 날은 편지와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와서 나를 설득하려 했다.
"엄마 돼지바 별로 안 좋아해. 그리고 지금 돈이 없어."
나는 돈이 없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돈 쓰는 걸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카드가 있기 때문에.
딸의 약속 편지
딸의 끈기에 두 손 든 나는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1번, 지금 등록하면 딱 한 달만 해줄 건데 중간고사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그다음 달부터 등록 안 해준다.
체육관비는 한 달에 17만 원. 아이한테는 솔직히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지금 우리가 너의 취미생활까지 지원해 줄 능력이 못돼. 운동을 정 하고 싶으면 나중에 네가 돈 벌어서 하면 안 되겠니?'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부모로서 당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이너스 백만 원이나 백십칠만 원이나 뭐 그게 그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딸에게 카드를 건넸다.
또 한 번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중학교 때 원하는 걸 못해준다고 말했던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며칠 뒤에 체육관을 찾아갔다. 관장이 나와서 딸이 집중력이 좋다고 칭찬을 한다. 딸이 운동하는 걸 숨어서 지켜보다 돌아왔다. 딸이 나를 위해 사다 놓은 돼지바를 꺼내 먹었다. 가루가 많이 떨어져서 싫어했는데 오늘은 그게 거슬리지 않을 만큼 달콤했다. 운동하며 웃고 있던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