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쉼표28 :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요!]
2년전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을 마음을 한껏 설레게 만든 영화가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파산핑으로 불리는 [사랑의 하츄핑]. 우리 집은 'TV를 보여주기보단 바카라을 읽어주자'는 주의지만,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게다가 딸을 키운다면 티니핑을 모르는 아이로 키우기는 왠만한 영재만들기 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다섯살이 된 우리 딸도 드디어(?) 공주병과 함께 티니핑의 세계에 입문해버렸다.
모처럼 엄마와 아빠가 각자 아이들과 한명씩 짝을 지어 1:1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딸에게 엄마랑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딸은 '티니핑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꺼냈고, 마침 영화관에서 '사랑의 하츄핑'을 재상영하던터라 나는 생각보다 쉽게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어 산뜻한 마음으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다행히 어른이 듣기에도 괜찮은 상큼한 노래가 많이 나왔고, 무엇보다 영화 속 내용에 한껏 몰입해 "안돼애~~" 불안해했다가, 내 손을 꽉 모아쥐고 "제발..."하고 기도하는 아이의 순수함에 같이 젖어들 수 있어서 엄마인 나에게도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 주의 : 이제부터는 영화 [사랑의 하츄핑]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첫 영화관 데이트를 기념하기위해 포토카드까지 뽑아주면서 즐겁게 집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
딸은 영화관 데이트의 흥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다시 미운 네살력을 뽐내며,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되지 않으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떼를 쓰거나, 징징거리면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딸의 그런 행동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놀랍지 않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하츄핑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했어!"
라는 억지주장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남편은 내게 "그런 이상한 교훈의 영화였어?"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하츄핑과 로미의 우정과 용기를 다루었던 영화의 주제에서 내가 놓친게 있었나 한참을 기억을 되돌려보았다.
그랬다. 영화 속 여자주인공 로미공주는 자신의 짝이 되어줄 운명의 티니핑을 찾고있었는데, 번번히 실패하던 중 바카라 속에서 운명처럼 끌리는 '하츄핑'을 발견하고는 '하츄핑'과 짝꿍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하츄핑'은 괴물이 되어버린 티니핑들이 사는 무시무시한 나라에 살고있었고, 그렇게 위험한 곳에 사는 티니핑과는 짝이 될 수 없다고 엄마, 아빠는 강하게 반대한다. 생각치 못한 부모님의 반대에 속상해하며 잠 못이루는 로미에게 그날밤 할머니가 찾아와 말을 건낸다.
"로미야, 네가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렴. 할머니는 로미를 믿는단다"
그렇게 하츄핑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은 시작된다. 부모님의 반대로 몰래 여행을 떠나고, 주인공이 장애물을 헤쳐서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 구조는 어른들에게는 너무 흔한 서사이기에 그 부분이 딱히 내 머릿속에 남지 않았지만, 우리 딸에게는 하츄핑과 로미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서로에게 평생의 짝이 되어 마법같은 일이 펼쳐지는 극적인 순간보다 할머니와 로미의 짧은 대화가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억지주장의 근거를 찾아낸 뒤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유치원에 입학한 뒤 스스로 해야하는 일도 많아지고, 지켜야하는 규칙도 많아지면서 버거운 아이에게 부모인 우리도 "이건 네가 혼자 하는 거야. 규칙이야"를 너무 강조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압박 속에서 아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속 할머니의 말이 아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닦지않은 채 몰래 바지를 올리려고 슬그머니 눈치를 보는 딸과 눈이 마주쳤다.
"소변 보고나면 휴지로 제대로 닦아야지. 그건 스스로 해야하는 일이야." 라는 말을 속으로 삼켜냈다. 그리곤 아이에게 말했다. "소변 보고 휴지로 닦는거 아직 힘들지? 엄마가 휴지를 접어주고 똘양이가 닦아볼래? 엄마가 접어주면 똘양이가 잘해낼수 있을 거라고 엄마는 생각하거든. 똘양이 생각은 어때?"
쭈뼛쭈뼛 눈치를 보던 아이의 눈빛에서도 반가운 빛이 감돌았고,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네!"하고 대답했다.
아이의 마음을 읽고, 적절한 도움을 주고, 또 믿어주는 것.
매번 다짐하지만 현실 육아에서 도통 적용하기 어렵던 그 원칙을 나는 하츄핑 영화를 통해 한 번 더 배웠다.
그러니 어린이 애니메이션에서, 게다가 픽사도 아닌 하츄핑에서 어른이 뭔가를 배울 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인 것이다. 그렇게 딸과의 첫 영화관 데이트는 내게 큰 교훈을 남겼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영원히 내게는 매순간 배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