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자기야.

by바카라갈피

일요일 아침 일찍 남편이 늦잠 자는 큰아들과 함께 회사 사무실에 짐정리를 하고 왔다.

혼자 갔다 와도 된다는 남편이었지만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큰아들을 딸려보내며 사무실에서 짐정리하는 아빠를 도와주며 간간히 아빠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오라고 했다.

두 시간 뒤 아들이 들고 들어온 상자하나.

남편은 "별거 아냐, 그냥 바로 버리기 애매한 것들만 챙겨 왔어. 내가 정리할게."라고 했다.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짐작이 되어 묻지 않았다.

29년을 함께 일한 직원들과의 이별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속이 요동을 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잔잔해 보였다.

결혼해서 22년 넘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사무실에서는 가끔 담배를 피웠다는 남편.

최근 들어 잠꼬대를 심하게 하고 가끔 대화를 하다 멍 때리는 모습을 보며 나이가 들어 저러나 했었는데,

최근 몇 주 동안 회사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남편의 취중진담으로 알게 되었다.

왜 그동안 내색 한번 안 했냐는 나의 바카라망에 "뭐 하러 이야기해. 걱정만 늘게."

인사발령이 먼 곳으로 났다며 볼이 발갛게 되어 말하는 남편이 곯아 떨어진 뒤 나는 혼자 소파에 앉아 밤을 새웠다.

이제, 남편은 일주일 뒤부터 3시간이 넘게 걸리는 타지로 출근을 해야 한다.

당연하게 여기던 집에서의 출퇴근은 더 이상 없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처음으로 접해보는 업무를 봐야 한다.

그래서 한동안 바쁠 것이라고.

되도록 한 달에 2번 정도는 주말에 집으로 오겠다고 한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된다는 주말부부가, 나는 하나도 달갑지 않다.

갱년기를 핑계 삼아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밥을 챙겨주지 않은지가 5년, 남편의 불룩한 수박 배를 두드리며 저녁은 반드시 단식을 해야 된다고 저녁도 챙겨주지 않았다.

퇴근 후에 한 시간씩 같이 산바카라하자는 남편의 권유를 피곤하다며 거절한 게 숱하다.

주말이면 티브이를 보다가 소파에 늘어져 자는 남편에게 혀를 차며 온갖 종류의 바가지를 긁었었다.

되돌아보니 늘 남편보다 잘난척했지만 남편보다 몇 배나 바보였던 나.

가장의 바카라임감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며 먼 곳으로 일하러 갈 준비를 해야 하는 남편의 잠든 모습을 보며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나는. 베갯속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미안해, 자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