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드러낸 '전문가'의 불편한 진실

[방구석5분혁신.전문가 생존법]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회의 막판이 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조용해진다. 방금 전까지 보고서를 넘기던 손이 멈춘다. 시장 분석도 있다. 고객 데이터도 있다. 경쟁사 자료도 있다. 화면은 빼곡하다. 그때, 누군가 묻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질문이 나오면 모두가 노트북 화면만 쳐다본다. 회의 파일만 뒤적인다. 자료는 많은데 판단이 없다. 결정이 없다.


전문가의 권위는 오랫동안 정보의 높이에서 나왔다. 남보다 더 많이 본 사람. 더 오래 외운 사람. 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다. 나는 모르지만 저 사람은 알 것이라 믿었다. 정보가 부족하던 시대에는 그것만으로도 힘이 됐다. 지식과 정보, 그것이 곧 권위였다. 전문가의 왕국은 그렇게 세워졌다.


AI는 그 성벽을 낮췄다. 아니, 성벽의 재료를 드러냈다. 우리가 '통찰'이라 부르던 것의 상당 부분은 '패턴'이었다. 판례에서 논리를 찾는 일, 영상 속 이상 신호를 읽는 일, 숫자의 흐름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일. 물론 사람의 경험은 가볍지 않다. 다만 그 경험의 일부는 우리가 믿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복제된다. 기계는 지치지 않는다. 체면을 따지지 않는다. 어제의 판단에 묶이지도 않는다.


진짜 두려움은 여기서 생긴다. 일자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체성의 문제다. "나는 전문가다." 이 문장이 흔들려서다. 가장 불편한 순간은 AI가 답을 맞힐 때가 아니다. 내가 십 년 걸려 익힌 일을 옆자리 신입이 프롬프트 한 줄로 해낼 때다. 내가 쌓아온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보이는 순간이다.


무너지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를 둘러싼 낡은 신화다. 많이 아는 사람이 오래 버틴다는 믿음. 정보를 쥔 사람이 권위를 갖는다는 공식. 반복 숙련만으로 대체 불가능해진다는 착각.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새로운 전문가는 답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다. 질문을 바르게 세우는 사람이다. 자료를 많이 모으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사람이다.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답 이후의 바카라임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환자에게 어떤 말을 먼저 건넬지, 의뢰인에게 무엇을 포기하라 말할지, 조직에 어떤 위험을 감수하자 설득할지. 여기서부터는 지식이 아니라 감당의 영역이다. 첵임의 영역이다.


기계는 답을 낸다. 인간은 그 답의 후폭풍 앞에 선다. 지식은 점점 흔해진다. 판단은 점점 비싸진다. 전문성의 중심은 아는 능력에서 감당하는 능력으로 옮겨간다.


지식의 성벽이 낮아진 시대, 진짜 전문가는 판단, 곧 바카라임의 무게로 다시 선다. 끝내 남는 전문가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판단의 결과 앞에서 도망가지 않는 사람이다. ⓒAI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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