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힘
우리는 자주 말한다.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
하지만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했는가?”
이해는 머리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에게 다가가려는 태도의 문제이다.
조직 안에서 생기는 갈등의 상당수는 악의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오해에서 출발한다.
상사는 분명히 지시했다고 생각한다.
구성원은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느낀다.
강사는 열심히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학습자는 “그래서 내가 뭘 해야 하지?”라고 느낀다.
고객사는 요구사항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컨설턴트는 “그 의미가 그런 줄 몰랐다”고 말한다.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하나이다.
서로 이해하려 했지만, 상대의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
조지 버나드 쇼, 20세기 초 연설로 전해짐
이해하려는 행동은 중요하다.
이해시키려는 행동도 중요하다.
하지만 둘 다 자기중심적이면 실패한다.
이해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내가 들은 것이 맞는가?”
이해시키려는 사람은 이렇게 확인한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결국 이해와 설명은 모두 상대지향적 행동이어야 한다.
상대지향적 행동이란 상대에게 맞춘다는 뜻이다.
상대의 수준에 맞춰 낮춘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교육 담당자가 임원에게 교육안을 설명할 때와 현업 팀장에게 설명할 때는 달라야 한다.
임원은 전략적 효과를 본다.
팀장은 현장 적용 가능성을 본다.
학습자는 “내 업무에 도움이 되는가”를 본다.
같은 내용도 상대에 따라 언어가 달라져야 한다.
역지사지는 좋은 말이지만, 막연하게 쓰면 훈계가 된다.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이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 입장에 서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역지사지 역량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상대가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상사가 예민한 이유는 성격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위에서 일정 압박을 받고 있을 수 있다.
교육생이 집중하지 않는 이유도 태도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업무 마감, 평가, 피로가 겹쳤을 수 있다.
상황을 보면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사람마다 익숙한 언어가 다르다.
재무 담당자는 숫자로 이해한다.
영업 담당자는 고객 반응으로 이해한다.
인사 담당자는 조직 변화로 이해한다.
현장 리더는 실행 부담으로 이해한다.
내 언어만 반복하면 설명이 아니다.
상대 언어로 번역해야 설명이다.
사람은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이 상하면 이해도 어렵다.
“그게 아니라요”라는 말은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이미 방어적으로 변했다면 그 말은 공격처럼 들린다.
먼저 감정을 낮춰야 한다.
“제가 너무 제 관점에서 말씀드렸을 수 있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이해의 문을 연다.
역지사지는 타고나는 감각이 아니다.
반복해서 익히는 기술이다.
회의 전 스스로에게 묻는다.
“상대가 이 안건을 들으면 가장 먼저 걱정할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 설명 방식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할 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임원은 비용 대비 효과를 궁금해할 것이다
팀장은 인력 공백을 걱정할 것이다
구성원은 평가와 연결되는지 신경 쓸 것이다
교육 담당자는 운영 리스크를 먼저 볼 것이다
상대의 걱정을 먼저 말하면 신뢰가 생긴다.
“팀장님 입장에서는 교육 시간 때문에 업무 공백이 가장 부담되실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공감의 시작이다.
갈등 상황을 나와 상대의 싸움으로 보지 않는다.
제3자가 보는 장면으로 바꿔 본다.
“지금 이 대화를 옆에서 본다면 무엇이 문제로 보일까?”
그러면 감정의 온도가 낮아진다.
내가 옳다는 생각보다 관계의 흐름이 보인다.
상대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상상해 본다.
아침부터 회의가 많았는가.
보고를 앞두고 있는가.
팀원의 문제로 지쳐 있는가.
성과 압박을 받고 있는가.
사람은 자신의 하루를 들고 대화에 들어온다.
그 하루를 고려하지 않으면 대화는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해하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이다.
하지만 잘 듣는다는 것은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내 언어로 다시 확인한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번 교육의 핵심은 만족도보다 현업 적용률이라는 말씀이시지요?”
되묻기는 시간을 쓰는 행동이 아니다.
오해 비용을 줄이는 행동이다.
상대가 말한 내용 뒤에는 의도가 있다.
“이번 과정은 짧게 해 주세요.”
이 말의 의도는 다양하다.
시간이 없다는 뜻일 수 있다
비용을 줄이고 싶다는 뜻일 수 있다
학습자의 피로를 걱정한다는 뜻일 수 있다
핵심만 전달하라는 뜻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짧게 운영하고자 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 부담 때문입니까, 아니면 핵심 집중 때문입니까?”
질문이 깊어지면 이해도 깊어진다.
상대의 말을 듣는 동안 우리는 이미 평가한다.
“또 무리한 요구를 하네.”
“현장을 모르는 말이네.”
“왜 이렇게 부정적이지?”
이 판단이 빠르면 이해는 늦어진다.
먼저 수집해야 한다.
그다음 해석해야 한다.
마지막에 판단해야 한다.
“먼저 이해하고, 그다음 이해시켜라.”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1989
이해시키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게 구조화하는 사람이다.
조직에서는 시간이 부족하다.
긴 설명보다 방향이 먼저 필요하다.
“이번 교육의 목표는 리더의 피드백 행동을 현장에서 바꾸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먼저 말해야 한다.
그다음 근거와 방법을 붙이면 된다.
사람은 자기 일과 연결될 때 이해한다.
교육 담당자에게는 운영 안정성을 말해야 한다.
임원에게는 성과 기여도를 말해야 한다.
팀장에게는 현장 적용성을 말해야 한다.
학습자에게는 업무 효용을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교육도 이렇게 달라진다.
“커뮤니케이션 교육입니다.”
이 말은 약하다.
“팀장들이 지시와 피드백 과정에서 생기는 재작업을 줄이기 위한 교육입니다.”
이 말은 강하다.
상대의 문제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추상어는 오해를 만든다.
예시는 이해를 만든다.
“주도적으로 하세요”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회의 전에 본인 안건의 선택지 두 가지와 추천안을 준비해 오라는 뜻입니다.”
“소통을 잘하세요”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상대가 이해했는지 마지막에 한 문장으로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구체성이 없으면 사람은 각자 다르게 이해한다.
각자 다르게 이해하면 결국 오해가 된다.
오해 없는 조직은 없다.
하지만 오해를 빨리 발견하는 조직은 있다.
그런 조직은 세 가지 습관을 갖고 있다.
“알겠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했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확인은 불신이 아니다.
협업의 안전장치이다.
일만 던지지 않는다.
왜 하는지 함께 말한다.
“이번 보고서는 금요일까지 주세요.”
이보다 낫다.
“월요일 임원회의에서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하므로, 금요일까지 초안이 필요합니다.”
맥락이 생기면 우선순위가 보인다.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르게 이해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을 무능으로 보면 조직은 조용히 틀어진다.
그 말을 학습으로 보면 조직은 빨리 정렬된다.
이해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다.
성과의 문제이다.
오해는 비용을 만든다.
재작업을 만들고, 감정 소모를 만들고, 신뢰 손상을 만든다.
반대로 이해는 속도를 만든다.
같은 방향을 보게 하고, 불필요한 방어를 줄이며, 실행을 빠르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해하지 않아도 오해는 생긴다.
이해되지 않아도 오해는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해시키려고 해야 한다.
다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상대여야 한다.
내가 말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어떻게 들었는가이다.
내가 들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이다.
결국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말의 기술이 아니다.
상대를 향한 태도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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