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웬즈데이란? 조지 소로스는 어떻게 영국 파운드를

Feat. 파운드 공매도와 ERM 탈퇴

by디노 백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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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디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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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디노입니다.

세계 금융시장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1992년 9월 16일, 조지 소로스가 영국 파운드 하락에 거대한 돈을 걸었던 블랙 웬즈데이(Black Wednesday)입니다.

이날 영국은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돈을 외환시장에 투입했습니다.

금리도 올렸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영국은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상대는 다른 나라의 정부도, 군대도 아니었습니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이었습니다.

소로스는 이 거래에서 약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영국 정부가 파운드 방어 과정에서 입은 비용은 훗날 약 33억 파운드로 추산됐습니다.


그래서 소로스에게는 아주 유명한 별명이 붙었습니다.


“The man who broke the Bank of England.”
영란은행을 무너뜨린 남자.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투자자라고 해도 어떻게 국가의 중앙은행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사실 블랙 웬즈데이의 핵심은 소로스가 영국보다 돈이 많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소로스는 영국 정부가 끝까지 지키기 어려운 환율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1992년 유럽의 통화위기부터 조지 소로스의 파운드 공매도, 그리고 우리 투자자가 배울 수 있는 교훈까지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 유럽은 왜 환율을 묶으려고 했을까? EMS·ERM·ECU 이야기


지금 유럽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폐가 있습니다.

바로 유로(Euro)입니다.

하지만 1992년에는 아직 유로화가 없었습니다.

독일은 독일마르크, 프랑스는 프랑, 이탈리아는 리라, 영국은 파운드를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유럽 국가들끼리 무역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회사가 영국 회사와 물건을 사고팔기로 계약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계약할 때는 1파운드가 3마르크였는데, 한 달 뒤 돈을 받을 때는 2.5마르크가 된다면 어떨까요?

물건은 똑같이 팔았는데 환율 때문에 받을 돈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면 사업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생각합니다.



“아직 하나의 화폐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환율만큼은 안정적으로 관리해보자.”

여기서 등장한 것이 EMS(European Monetary System)입니다.

우리말로는 유럽통화제도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유럽 국가들이 서로의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1979년 출범시킨 전체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제도를 만들었다고 환율이 저절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겠죠.

실제로 각 나라 통화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규칙이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한 것이 ERM(Exchange Rate Mechanism)입니다.

우리말로는 환율조정메커니즘 또는 유럽환율메커니즘이라고 부릅니다.

EMS가 전체 시스템이라면, ERM은 그 안에서 실제 환율을 관리하는 규칙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용어가 더 등장합니다.

ECU(European Currency Unit)입니다.

ECU는 지금의 유로처럼 사람들이 현금으로 들고 다니던 화폐가 아닙니다.

여러 유럽 국가의 통화를 묶어 만든 공동 계산 단위였습니다.


쉽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EMS = 유럽 통화 전체 시스템

- ERM = 환율을 일정 범위에 묶어두는 규칙

- ECU = 환율 계산 등에 활용하는 공동 통화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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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정부는 환율에 '절대 깨지면 안되는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ERM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도로를 하나 떠올려보겠습니다.

도로 양쪽에 가드레일이 있으면 자동차가 일정 범위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ERM도 비슷한 방식이었습니다.

각 나라 통화마다 중심환율(Central Rate)을 정하고, 그 위아래 일정 범위 안에서만 환율이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일반적인 ERM 통화에는 중심환율을 기준으로 ±2.25%의 변동폭이 적용됐습니다.


하지만 영국 파운드에는 처음부터 더 넓은 ±6%의 변동폭이 허용됐습니다.

영국은 1990년 10월 8일 ERM에 가입하면서 파운드와 독일마르크 사이의 중심환율을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1파운드 = 2.95 독일마르크

그리고 실제 양자 환율 규정상 파운드가 떨어질 수 있는 하단은 약 2.778마르크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영국 정부가 시장에 이렇게 선언한 셈입니다.

“파운드 가격이 여기까지 떨어지면 우리가 방어하겠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국 경제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닌데, 정말 이 가격이 적절한 걸까?”

“만약 이보다 더 낮은 가격이 정상이라면?”

“영국 정부는 얼마나 오랫동안 방어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질문들이 중요합니다.

정부는 방어할 가격을 정했지만, 시장은 그 가격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2.778마르크는 당시 공식 양자 환율 하단입니다.

단순히 2.95에 6%를 빼서 계산한 값이 아니라, ERM의 환율 표시와 양자 한계 규정에 따라 정해진 수치입니다.



■ 영국은 경제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리고, 파운드를 살리려면 올려야 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방어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자국 통화를 직접 사들이는 것입니다.

파운드가 계속 떨어지면 영란은행은 보유하고 있던 외화를 팔고 파운드를 사들입니다.

파운드의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 하락을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는 금리를 올리는 것입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파운드를 가지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가 늘어납니다.

외국 자금이 들어올 수도 있고, 파운드를 팔려던 투자자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금리를 너무 높이면 영국 기업과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납니다.

주택시장도 어려워지고 소비와 투자는 위축됩니다.


파운드를 지키려고 금리를 올리면 영국 경제가 더 나빠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독일과 영국의 경제 사정은 정반대였습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됩니다.

독일 정부는 동독 지역을 재건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고, 그 과정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커졌습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높은 금리를 유지했습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물가를 잡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반면 영국은 이미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습니다.

경제만 생각하면 영국은 금리를 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파운드와 독일마르크의 환율을 ERM 범위 안에서 유지하려면 금리를 마음대로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독일

- 통일 이후 인플레이션 압력 증가 → 높은 금리 필요


2. 영국

- 경기침체와 경제활동 둔화 → 낮은 금리 필요


그런데 두 나라의 환율은 ERM으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고, 파운드를 지키려면 금리를 올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블랙 웬즈데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모순입니다.

조지 소로스는 단순히 파운드가 비싸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은 지금의 환율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고금리를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가능성에 주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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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에서 시작된 균열, 스웨덴·이탈리아·영국으로 번진 유럽 통화위기


블랙 웬즈데이를 소로스와 영국의 일대일 싸움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럽 곳곳에서 고정환율 체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겠습니다.

마치 잘 세워놓은 도미노에서 하나씩 균열이 발생하는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첫 번째 균열, 핀란드


당시 핀란드 경제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핀란드는 소련과 교역 관계가 깊었는데, 소련이 붕괴하면서 수출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금융위기까지 겹쳤습니다.

경제는 나빠지고 있었지만 핀란드는 자국 통화인 마르카(markka)를 ECU에 연동하고 있었습니다.

시장에서는 의문이 커졌습니다.

“핀란드가 정말 이 환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결국 1992년 9월 8일, 핀란드는 마르카의 ECU 연동을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했습니다.

환율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두 번째 압박, 스웨덴

이번에는 스웨덴 이야기입니다.

스웨덴 역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스웨덴은 자국 통화인 크로나(krona)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금융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 중 하나가 등장합니다.

500%.

오타가 아닙니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1992년 9월 16일 한계대출금리를 무려 500%까지 올렸습니다.

일반 국민의 모든 대출금리가 500%가 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은행들이 중앙은행에서 돈을 조달할 때 적용되는 특정 단기금리를 극단적으로 올린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시장에 이런 메시지를 보낸 셈입니다.

“크로나를 빌려서 공격하려면 엄청난 이자를 부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시장의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스웨덴은 9월에는 환율을 방어했지만, 결국 11월 19일 고정환율을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했습니다.

금리를 500%까지 올렸던 나라조차 환율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세 번째 균열, 이탈리아

이제 시장의 불신은 ERM 내부로 퍼집니다.

그중 하나가 이탈리아의 리라(lira)였습니다.

이탈리아는 당시 높은 국가부채와 재정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시장은 리라의 기존 환율 역시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1992년 9월 13일, ERM 참가국들은 리라의 중심환율을 낮추는 재조정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9월 16일, 이탈리아 리라의 ERM 참여도 중단됐습니다.

시장은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서로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환율도 결국 바뀔 수 있구나.”

그리고 그날 영국에서도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당시 ERM 회원국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위기를 설명한 국가별 순서가 정확한 날짜 순서를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탈리아 리라의 재조정 결정은 9월 13일, 스웨덴의 500% 금리와 영국의 ERM 이탈은 모두 9월 16일에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소로스가 네 나라를 차례로 직접 공격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유럽의 여러 고정환율 체제가 불안해지면서 시장의 공격과 자금 이탈이 연쇄적으로 나타났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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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로스는 어떻게 파운드를 공매도해 10억 달러를 벌었을까?


이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지 소로스가 이끌던 퀀텀펀드(Quantum Fund)는 파운드 가치가 하락하는 방향으로 거대한 포지션을 구축했습니다.

당시 포지션 규모는 약 100억 달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거래에서는 소로스와 함께 일했던 유명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투자를 공부하시는 분들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주식 공매도는 들어봤는데, 화폐는 어떻게 공매도하나요?”

원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파운드를 빌려서 먼저 팔고, 나중에 파운드가 떨어지면 싸게 다시 사서 갚는 것입니다.


가상의 거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환율이 다음과 같다고 가정하겠습니다.

- 1파운드 = 2.80 독일마르크


여기서 투자자가 1,000파운드를 빌립니다.

그리고 1,000파운드를 시장에 팔면 2,800독일마르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기다립니다.

영국이 결국 환율 방어를 포기하면서 파운드 가치가 떨어졌다고 가정하겠습니다.

- 1파운드 = 2.50 독일마르크


이제 가지고 있던 2,800마르크로 파운드를 다시 사보겠습니다.

- 2,800 ÷ 2.50 = 1,120파운드

처음 빌린 돈은 1,000파운드였습니다.

빌린 돈을 갚으면 120파운드가 남습니다.

이것이 공매도의 기본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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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계산은 설명을 위한 가상의 예시이며, 실제 투자에서는 이자와 거래비용, 환율 변동, 파생상품 구조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파운드가 예상과 반대로 강해지면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즉, 소로스의 투자는 결과적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위험이 없는 거래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로스는 단순히 “파운드가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영국 정부가 환율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금리정바카라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베팅은 단순한 가격 예측이 아니라, 그 가격을 유지하는 구조가 무너질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 1992년 9월 16일, 블랙 웬즈데이의 하루


드디어 역사적인 1992년 9월 16일 수요일.!

이날 시장에서는 파운드 매도세가 거세졌습니다.

영란은행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파운드를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매도 압력을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1. 오전, 영란은행의 파운드 방어

영란은행이 파운드를 삽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계속 팝니다.

영란은행이 다시 사들입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파운드를 계속 매도합니다.

시장에서는 이미 영국이 현재의 환율을 끝까지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2. 정오 무렵, 금리를 10%에서 12%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영국 정부는 강력한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 금리 10% → 12%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올린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높아지면 그 나라 통화를 보유할 유인이 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운드에 대한 매도 압력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3. 오후, 이번에는 금리 15%

결국 영국 정부는 더 강한 조치를 발표합니다.

금리를 15%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여전히 파운드를 팔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투자자들은 영국 정부가 금리를 올릴 의지가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영국 경제가 과연 15% 금리를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이미 영국은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습니다.

기업도 어렵고 가계도 어려운 상황에서 초고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한다면 경제에 더 큰 부담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의지를 보여줬지만, 시장은 그 정바카라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했습니다.



4. 저녁, 영국의 항복

결국 같은 날 저녁 영국 정부는 파운드의 ERM 참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음 날 시행할 예정이었던 15% 금리 계획도 철회했습니다.

파운드는 더 이상 ERM의 하단 방어선을 지키지 않아도 됐고, 시장에서 가치가 빠르게 하락했습니다.

이날이 바로 금융 역사에 기록된 블랙 웬즈데이(Black Wednesda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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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파운드를 방어할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방어를 계속할 때 치러야 할 경제적 비용이 너무 커졌다는 것이었습니다.




■ 조지 소로스가 영란은행보다 돈이 많아서 이겼을까?


저는 블랙 웬즈데이에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소로스가 엄청난 자금을 동원해서 영국 중앙은행을 이겼다.”

물론 소로스가 동원한 자금은 상당히 컸습니다.


하지만 영국 파운드의 하락을 소로스 한 사람의 힘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여러 헤지펀드와 글로벌 금융회사, 기관투자자들이 유럽 통화에 대한 포지션을 조정하고 있었습니다.

소로스도 훗날 자신만 그런 거래를 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동시에 영국의 환율정바카라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돈의 크기보다 영국 정부가 지켜야 했던 약속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사실상 시장에 선언했습니다.

“파운드가 정해진 방어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시장은 반대로 질문했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팔아보겠습니다. 어디까지 방어할 수 있습니까?”

영란은행이 파운드를 사들여도 매도 물량은 계속 나왔습니다.

정부가 금리를 올리겠다고 발표해도 투자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정바카라과 영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바카라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환율 방어가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 여건이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중앙은행이 방어에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92년 영국에서는 시장이 예상한 정바카라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소로스가 베팅한 것은 단순히 파운드 가격이 아니었습니다.

영국 정부가 지금의 환율정바카라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었습니다.




■ 블랙 웬즈데이 이후 유럽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사건으로 유럽의 통화통합 계획이 모두 끝났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럽은 기존 환율제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통화통합을 계속 추진했습니다.


1993년에는 ERM의 일반적인 환율변동 허용폭이 ±15%까지 확대됐습니다.

기존의 지나치게 좁은 환율 방어선이 공격받기 쉬웠다는 교훈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리고 1999년, 유로화가 공식적인 통화로 출범했습니다.

2002년에는 유로 지폐와 동전이 실제로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은 서로 다른 화폐를 사용하면서 환율을 묶어놓는 방식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렇다고 단일통화 계획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경제·통화 통합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유로화 도입은 블랙 웬즈데이 한 사건 때문에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유럽 통화통합 구상은 그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1992년 위기는 각 나라의 경제 상황이 다른데 환율만 고정해두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 2026년에도 블랙 웬즈데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1992년의 사건을 2026년에 다시 꺼내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34년 전 영국의 환율제도와 지금의 국제금융 환경은 다릅니다.

그렇지만 투자자가 시장을 바라보는 원칙에는 여전히 배울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부가 강하게 약속했다고 해서 모든 정바카라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환율과 금리, 재정정바카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바카라의 의지보다 경제의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겠다고 발표하는 것과 그 높은 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투자할 때 현재의 숫자만큼 지속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환율만이 아니라 주식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올해 높은 이익을 기록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익이 일회성 요인 때문이라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지금은 실적이 좋지 않지만 앞으로 산업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이익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기업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투자자는 현재의 숫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이 가격과 실적, 그리고 정바카라은 무엇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가?”

“그것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가?”


저는 이 질문이 투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블랙 웬즈데이는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경제사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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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하며...


조지 소로스의 블랙 웬즈데이를 공부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어쩌면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속할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영국 정부에는 중앙은행이 있었습니다.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도 있었고 금리를 올릴 권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나라가 높은 금리를 계속 유지하면서 정해진 환율까지 지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소로스가 특별했던 이유는 그 문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모순을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그 모순이 결국 무너질 가능성에 거대한 돈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로스의 베팅에도 위험은 있었습니다.

영국이 성공적으로 환율을 지켰다면 그의 투자도 큰 손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결과만 보고 거대한 공매도를 따라 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가 시장을 바라본 방식입니다.

환율이라는 숫자 하나를 본 것이 아니라 금리와 물가, 경기침체와 통화정바카라을 함께 살펴봤다는 점입니다.


저는 블랙 웬즈데이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소로스는 영란은행보다 돈이 많아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영국 정부가 끝까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베팅해 이겼습니다.”


1992년 9월 16일.

겉으로 보기에는 한 헤지펀드와 중앙은행의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돈과 돈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정바카라과 현실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영국 정부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시장을 바라볼 때 현재의 가격뿐 아니라, 그 가격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그것이 블랙 웬즈데이가 오늘날 우리 투자자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늘 여러분의 곁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투자 해설과

쉽고 재미있는 설명으로 함께 풀어가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공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노가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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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하려면, 세상 만사를 다 알아야 한다.
결국 투자란, 세상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공부입니다.

by 디노




모든 분이 진심으로 수익 나길 바라는 디노의 맘이 오늘도 전해지길 바랍니다.



시장을 이기는 투자...

우리 모두 부자 되는 투자...

디노가 응원하겠습니다.

행복한 투자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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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돈이 된다! 급등주 투자법'에 이어 두 번째 바카라으로 '세력주 투자 기술'을 냈습니다.

많은 응원과 구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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