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연의 노래 <퇴사할게여>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노래는 첫 소절부터 퇴사를 선언한다. 무대 위 가수는 아쉬울 것 하나 없다는 표정으로 무대를 누비며 자유롭게 춤을 춘다. 음악을 들으며 나는 온라인 게임 문을 박차고 나가는 상상을 한다. 넓은 들판과 시원한 하늘, 상쾌한 바람이 나를 맞아줄 것 같다. 노래만 듣는데도 숨이 잘 쉬어지는 기분이다. 퇴사 이유를 묻는 상사에게 "노래가 좋아서요"라고 답하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혼자 웃는다.
교사라는 직업은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 수많은 일자리가 내일을 보장하지 못하는 슬롯에서 만 62세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장점이다. 퇴근이 빠르고 방학이 있어 가정을 돌보거나 자기 계발에 힘쓰기 좋고, 취미 생활을 갖기에도 유리하다. 행정 업무가 갑갑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적어도 교실 안에서는 교사 스스로 자율성과 주도성을 갖고 수업을 운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며 성장과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교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다.
그런데 나는 한때 그토록 원했고 치열하게 쟁취했던 이 일을, 앞으로 20년 넘게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딘가 갑갑해진다. 점점 심각해지는 듯한 교권 문제나 학교 현장을 무시한 교육 제도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학교에는 소명을 가진 교사가 필요하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지난해 충남의 한 선생님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선생님의 나이는 마흔하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있었다. 6년 후면 나와 선이도 같은 나이가 된다. 남 일 같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 교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건 후회할까 봐, 문을 박차고 나간 세상이 더 험할까 봐, 그래서 예전 온라인 게임을 아쉬워할까 봐 그런 것일 거다. 세 식구 먹고사는 일을 바카라임져야 하는데 일의 만족과 행복 같은 걸 따질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데 혼자 엄살을 피우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노래는 후회하면 어떠냐고, 우린 결국 모두 할머니가 될 거라고 말한다. 보통의 삶이란 게 결국 늙어 죽는 정해진 목적지로 가는 것이라면 그 길까지 정해진 대로 갈 필요는 없지 않냐고 묻는다. 먼 훗날 돌아봤을 때, 정해진 길을 이탈했던 이 시절이 오히려 낭만이었다고 기억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살아갈 길은 여럿 있다. 의원면직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다 생활이 궁핍해지면, 기간제 교사로 한 학기나 한두 해 다시 일하는 것도 괜찮겠다. 전국지리교사 네트워크에는 급구 글이 지금도 수시로 올라온다. 아니면 아내가 하는 일에 나도 도전해볼 수도 있다. 온라인 화상 채팅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배우면, 꿈꾸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도 이뤄볼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거리에 붙은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에 관한 안내였다. 평소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고 소수의 사람과 깊이 관계 맺는 걸 선호하는 내게 잘 맞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진짜 퇴사할 사람은 말없이 조용히 준비한다는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나는 아주 오랫동안 교직에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3년째 휴직 중이라 현직에 있지도 않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웃기기도 하다. 열린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참 높기도 하다. 바람도 좋은 게 거참 퇴사하기 딱 좋은 날씨다.
*故 윤범진 선생님의 이야기를 짧은 문장으로 대체할 수 없어 기사를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