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유서 쓰기 2026

올해 유서 쓰기는 즐겁지 않다.

by그림한장이야기

2026년에 저는 두 번의 죽음을 맞닥뜨렸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은 아직 저를 떠나지 않았고 망령처럼 남은 날들 동안 따라다닐 것입니다.


올해 유서 쓰기는 즐겁지 않다.

즐거운 유서 쓰기 2026


제가 바라본 죽음들은 한결같이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준비된 죽음이란 없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그 죽음을 목도하는 사람도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저의 마음이 안정된 상태입니다. 이 유서 쓰기 프로젝트를 한 해 건너뛸까도 생각했었죠. 유서를 이렇게 쓰고 있다는 것은, 일상을 되찾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쭉 이어온 "즐거운 유서 쓰기"라는 제목에서 "즐거운"이란 단어는 지금 제 마음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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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안정된 뒤 하게 된 생각들 중 "유서를 쓰길 잘했다!"가 가장 먼저 든 생각입니다.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긴 투병 기간을 지난다고 해도 죽음은 예상치 못한 그 순간에 찾아옵니다. 유서를 쓸 수 있을 때 써야 합니다. 유서를 쓸 수 있을 때란 건강할 때입니다.


주위의 대부분 상황에서 유서가 준비된 경우가 극히 드문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재벌집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치부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유서라는 경직된 용어를 좀 다르게 말해보죠.


유서란, 당사자에게는 원초적인 죽음의 공포와 당당히 마주 서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족에게는 최소한의 고인의 흔적을 간직하게 됩니다. 그 흔적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유서에는 유산 문제, 장례 절차 등등 행정적인 내용만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보다 자유롭게 쓴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적은 고인의 이야기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번 2026년에 추가될 저의 유서 내용입니다.



(유서 ver 3.0 - 2026년 작성)

할 수 있는 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

하지 않는 이유가 "귀찮다"라면 너무 보잘것없는 이유이다. 하고 싶은 일인데 안 하는 이유가 "귀찮음" "창피함" "남들 안 하니까" "돈이 안 돼서" 등등 인지 잘 살펴봐라. 자기 자신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이유가 되는지 안되는지... 지금 안 하면 기회가 또 올지 장담할 수 없다. 죽음은 갑자기 오니까.


(유서 ver 2.2 - 2025년 작성)

2025년 유서 업데이트는 없습니다.


(유서 ver 2.1 - 2024년 작성)

치매에 관해서

내가 치매에 걸릴 경우 죄바카라 감 없이 적당한 요양원에 보내라.

나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면 치매 관련 임상실험에 지원하기를 희망한다.

(2024년 현재 기준, 치매에 대한 명확한 나의 의견이 확립되지 않았다. 위의 내용은 변경될 수 있다.)


(유서 ver 2.0 - 2023년 작성)

읽거나 말거나

"과정은 실력이고 결과는 운이다." 2023년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이 한 문장이다. 당신들의 영원한 숙제 한 가지를 해결해 주겠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할까? 잘하는 것을 해야 할까? 결과가 운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결과 즉 성공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실력의 영역인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결과에 다다르지 못하고 과정만 헤매다가 죽을 운명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은 반드시 과정이 즐겁기 마련이다. 좋아하지 않은데 잘하는 일은 결과만 따지고 과정은 관심 밖이다. 과정이 즐거운 일은 결과가 나쁘더라도 남는 게 있다.


(유서 ver 1.0 - 2022년 작성)

유산

나의 모든 유산은 아내가 살아있을 경우 모두 아내에게 귀속된다. 만약 아내가 세상에 없다면 슬롯에 환원한다.


장례절차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으니 장례식을 할 필요가 없다. 돈을 아껴라. 장례비용 너무 비싸다. 단, 살아있는 사람들이 나의 장례식을 치러야지 마음이 편하다면 마음대로 하라. 난 어차피 죽었다. 혹시라도 수의나 관, 장례용품 등의 가격대를 정할 때 망설여진다면 제일 싼 것으로 하라. 걱정 마라 귀신이 되어서 왜 싼 걸로 했냐며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바람은 장례식이 없는 것이다. 내 시신의 남은 부분이 의학적으로 유용하다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 후 남은 시신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장 싼 방법으로 처리하길 바란다.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고 내 몸은 죽어서 아무것도 못 느낀다.


지적, 디지털 재산

내가 남긴 모든 지적, 디지털 유산도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아내에게 모두 귀속된다. 만약 아내가 세상에 없거나, 지적 재산권을 행사할 주체가 불분명하게 된다면 모두 무료로 공유되고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를 밝힐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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