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km가 가르쳐준 값비싼 수업료와 따뜻한 가족의 품
토론토의 맑은 아침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캐나다 특유의 느릿하고 단단한 행정의 속도를 예감케 했던 서비스 온타리오의 파란 간판.
이사(移徙)라는 단어는 언제나 설렘과 설렘의 뒤편에 숨은 고단함을 동반합니다.
낯선 공간에 우리 가족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하나씩 채워 넣고,
새로운 주소지를 손에 쥐었을 때의 묘한 안도감.
하지만 한국과 캐나다라는 커다란 두 세계를 바쁘게 오가는 삶 속에서,
미처 보이지 않던 행정의 빈틈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매서운 청구서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얼마 전, 나의 빛바랜 운전면허증을 갱신하기 위해 오랜만에 토론토의 '서비스 온타리오(Service Ontario)'의 초록색 간판 아래에 섰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도착했음에도 문이 열리기 전부터 늘어선 긴 대기 줄을 보며,
캐나다 특유의 느릿하고 단단한 행정의 속도를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면허증 사진을 새로 찍고 주소 변경 절차를 순조롭게 마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참 순조롭네"라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던 것도 잠시,
기존에 내 이름으로 되어 있던 차량을 남편의 명의로 바꾸기 위해 전산을 조회하던 직원.
이윽고 그가 건넨 모니터 화면에는 온 가족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청천벽력 같은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미납된 스피드 티켓(속도위반 고지서)이 3건 있습니다.
연체료를 포함해 총 600달러입니다."
한화로 거의 6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 집으로 고지서를 단 한 장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운 기계 같았습니다.
이사를 한 후 운전면허증 주소는 바꾸었지만,
차량 등록증(Green Slip)의 주소 변경을 누락한 탓에
모든 고지서가 텅 빈 옛집의 우편함으로 배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소를 제때 갱신하지 않아 우편물을 수령하지 못한 것은
온전히 본인의 바카라임이라는 냉정 지침 앞에 서니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더욱 더 가슴이 아렸던 것은 도로 위에서 경찰관에게 직접 단속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빌딩 숲과 주택가 곳곳에는 'Automated Speed Enforcement'라 불리는 무인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안전을 최고로 가치 있게 여기는 이 나라의 스쿨존은
제한 속도가 시속 30km로 극도로 엄격합니다.
찰나의 순간, 시속 10km 남짓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 기계는 차가운 셔터를 눌렀고,
주인이 사라진 옛 주소지 위에서 최고 수준의 연체료를 매달 조용히 적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거금을 결제하고 나오는 길,
온타리오의 맑은 하늘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가족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열심히 생활하며 사소한 지출 하나도 아끼던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미안함과 자바카라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내가 캐나다에 늘 머물며 이사하자마자 꼼꼼히 챙겼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배운 캐나다에서의 삶,
그 냉정한 땅에서도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언제나 나를 품어주던 가족이라는 가장 따뜻한 울타리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미안하다는 말에, 남편과 아이들은 오히려 내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 주었습니다.
"엄마, 우리가 몸이 다치거나 큰 사고가 난 게 아니잖아요.
돈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앞으로 더 안전하게 운전하라는 커다란 액땜을 한 셈 치자고요."
상담학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타인의 상처를 위로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정작 내 삶의 작은 폭풍 앞에서는 이토록 유약해지다니.
하지만 그 순간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언제나 묵묵하게 그 자리에서 나를 품어주던 가족이라는 가장 따뜻한 울타리였습니다.
600달러라는 숫자는 분명 아깝고 쓰라린 상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상처를 덮어준 가족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보석 같은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캐나다는 소수와 약자, 특히 어린이와 여성을 보호하는 법률이 눈물겨울 정도로 철저한 나라입니다.
스쿨존의 시속 30km라는 엄격한 규제도 결국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슬롯적 약속일 것입니다.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자비 없는 페널티를 부과하는 이 느리고 냉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때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삶의 방식을 배워나갑니다.
오늘도 캐나다라는 낯선 타국 땅에서 이민자로,
혹은 유학생으로 치열하게 삶을 일구어가고 있을 수많은 이들에게
나의 부끄러운 고백과도 같은 이 기록이 작은 등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사를 마쳤다면 오늘 당장 운전면허증 뒤에 가려진 차량 등록증의 주소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세요.
그리고 혹시 예기치 못한 삶의 청구서를 마주하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마시기를.
그 청구서보다 훨씬 더 값진 가족의 품이 우리 곁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