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어질 때 비로소 피어나는 위로
낮의 소음이 잦아든 자리에 달빛이 내려앉습니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낮 동안 아이들의 서툰 몸짓과 마음의 소리를 문장으로 옮기며 지친 하루를 보냈습니다.
창가 너머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며, 문득 어둠은 누군가에게는 숨고 싶은 곳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비로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따뜻한 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찾아간 밤의 창경궁. 그곳에서는 '물빛연화(水光蓮花)'라는 이름의 빛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춘당지 호수 위에 내려앉은 미디어아트는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색채보다 그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검은 물결이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선명해집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상담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고민과 특수교육 현장에서 마주하는 인내의 시간들은
어쩌면 우리 생의 '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밤이 있기에 우리는 아주 작은 희망의 빛에도 이토록 감동하고,
서로의 곁을 지키는 등불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경복궁의 야간개장처럼 치열한 예약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누구나 입장료 천 원이면 누릴 수 있는 이 밤의 호사.
마치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해"라고 말해주는 상담사의 따스한 조언 같았습니다.
춘당지를 돌아 대온실로 향하는 길,
은은한 청사초롱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봅니다.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의 뒷모습에서,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걷는 다정한 모습에서
저는 또 다른 형태의 '연꽃'을 봅니다.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선 이곳에서, 오늘 하루 치열했던 '나'를 잠시 내려놓고
조선의 밤을 빌려 걷습니다.
4월의 밤공기는 제법 차가웠지만,
눈앞에 펼쳐진 물빛 연꽃은 마음의 온도를 1도쯤 올려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어느 깊은 밤을 지나고 계신가요?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혹은 오늘 하루를 버텨낸 피로감 때문에 마음이 시리다면 잠시 창경궁의 밤을 거닐어 보시길 권합니다.
어둠을 밀어내려 애쓰지 마세요.
그저 그 어둠 속에 가만히 머물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당신만을 위한 빛의 연꽃이 피어날 테니까요.
제가 보았던 그 물빛연화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