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역이민, 그 낯선 회귀가 가르쳐준 진정한 삶의 온도
"16년의 정착을 뒤로하고 다시 마주한 풍경. 익숙한 도시의 실루엣 위로, 멈춰있던 나의 에너지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마흔의 문턱에서 떠났던 캐나다, 그곳에서의 16년은 제게 '풍경'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로키산맥의 웅장함과 단풍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아름다웠고,
특수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상은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서도 문득문득 발바닥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막연한 불안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
그것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여행자의 긴장감을 품고 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16년의 정착을 뒤로하고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선택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 좋은 곳을 두고 왜?"라며 만류했지만,
30년 넘게 마음을 공부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온 상담사로서 저는 제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이제는 낯선 풍경이 아닌,
익숙한 눈빛들 사이에서 '나'라는 땅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제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놀라울 정도의 효율성이었습니다.
행정 업무나 의료 서비스의 속도는 단순히 '빠름'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 국가와 시스템이 나를 지탱해 줄 것이라는 확신,
상담학적으로 말하자면 '심리적 안전 기지(Secure Base)'가 내 나라 땅에는 견고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예약 없이도 달려갈 수 있는 병원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역이민자의 삶은 비약적으로 안정되었습니다.
어제는 남편과 함께 한강에 나갔습니다.
한강 버스 창가에 부서지는 윤슬을 바라보며 편의점 라면 한 그릇을 나누어 먹었죠.
캐나다의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는 제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한강의 다정한 물결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꽉 차올랐습니다.
그것은 '소속감'이 주는 안도감이었습니다.
16년 만에 다시 찾은 고국의 풍경은 저를 이방인이 아닌 '주인공'으로 맞아주었습니다.
내 나라의 말을 하고, 내 나라의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과 섞여 지내는 일상.
한강의 밤바람은 로키의 찬 바람보다 훨씬 더 따뜻하게 제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해야 했던, 16년의 영원한 여행자. 이제는 창밖의 풍경을 배경이 아닌 나의 일상으로 안아보려 합니다."
흔히 역이민을 '돌아옴'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게는 이것이 거대한 '나아감'입니다.
한국의 역동적인 인프라와 열정적인 사람들은 상담사로서의 저를 다시 깨웠습니다.
30년 경력의 노하우를 우리 부모님들과 나눌 수 있는 지금,
저는 캐나다에서의 평온했던 시절보다 훨씬 더 강렬한 생의 활력을 느낍니다.
잘 갖춰진 인프라 안에서 저는 다시 글을 쓰고,
새로운 상담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이가원'이라는 이름 뒤에 붙은 여러 수식어를 더 단단하게 채워가고 있습니다.
역이민을 고민하는 이들이 제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어느 나라도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당신의 영혼이 가장 나답게 숨 쉴 수 있는 곳,
당신의 눈동자가 가장 따뜻하게 빛날 수 있는 곳을 찾으세요."라고요.
제게 그곳은 바로 지금, 이곳 한국입니다.
16년의 긴 여행 끝에 찾은 이 평범한 일상이 제게는 가장 위대한 치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