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한테 찍혔다!!!

소소잡썰(小笑雜說)

젊은 시절 한때 나는 투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오십보 백보인 정치꾼들끼리 국민들 아닌 저희들만을 위해 벌이는 잔치판이라 생각해서다. 어떤 놈이 당선되건 내 삶에 도움이 된단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DJ와 YS가 거물급 야당 지도자로 정치판을 주름잡던 시절 아픈 기억 때문에 더 그랬다. 군부독재에 맞서 국민들이 힘을 모아 6.29선언을 이끌어냈는데 이들이 망쳤다 판단됐기 때문이다. 두 후보가 뜻을 모아 단일화만 했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대선을 망침으로써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정치군인 중 한 명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준 거다.


이걸로도 모자라 얼마 후엔 YS가 적과의 동침을 감행하는 3당 야합까지 전격 단행해 버렸다. 정권 교체를 위한 전술적 판단이었다는 등 해석은 분분하지만 당시 피끓는 20대였던 내겐 그건 다만 정치적 야합이요 배신일 뿐이었다. 6월 항쟁을 허망하게 만든 두 야당 지도자의 독선과 이기심에 크게 실망했던 터라 그 실망감은 더 컸다.


이후 한동안은 정치에 대해, 투표에 대해 시큰둥한 태도로 살았다. 플라톤 선생이 "정치를 외면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 하셨지만, 통 관심이 가질 않았다. YS에 이어 DJ가 정권교체에 성공해 대통령에 오를 때조차 투표에 대해 별 열의는 생기지 않았다.



내가 정치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노무현이라는 신인급 정치인이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부터였다. 신인급인데다 그 성장배경 역시 흙수저급인 그가 돌풍을 일으키는 걸 보며 우리나라 정치도 바뀔 수 있겠단 희망을 품었다. 내 한 표 같은 작은 의지들이 모이면 큰 줄기를 바꿀 수도 있고, 3선이니 4선이니 하는 기성 정치인들 중심으로 돌아가던 정치판 역시 한바탕 물갈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기꺼운 마음으로 투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출마한 후보들 면면과 공약을 꼼꼼히 살펴봤고, 기성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투표 후에도 나한테 '찍힌' 사람이 조금씩이나마 세상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보게 됐고, 말만 번드르했던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기억에 아로새기기 시작했다.


사실 투표란 건 소시민인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선 먹고 사는데 별 도움도 안 되는, 그저 번거롭기만 한 무익한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는 세상을 소시민에 불과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딸들에게 좀 번거롭더라도 투표만큼은 꼭 하라고 가르쳐오고 있다. 딸들 역시 이에 적극 공감해 투표권이 생긴 이래 선거 때마다 가족이벤트처럼 가족 모두가 함께 투표장에 가고 있다.


한땐 투표라는 행위가 몇몇 정치꾼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라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궁극적으로 투표는 나와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거라는게 지금 내 믿음이다. 우리 후손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내일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걸, 정치하는 그들을 눈 부릅뜬 채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만 그들 역시 우리의 존재를 느끼고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니까 투표를 해야 한다. 꼭 해야 하고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판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도 꼭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나한테, 우리한테 찍혔다. 또 찍히고 싶으면 선거운동 때처럼 열심히 꾸준히 잘 하고, 찍히고 싶지 않으면 더더욱 열심히 꾸준히 잘 하길 바란다. 선거가 끝난 뒤라도 내가, 우리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