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계단의 요가 수행 여정은 이제 가장 깊고 미묘한 내면의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야마 (Yama)와 니야마 (Niyama)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바로잡고, 아사나 (Āsana)와 프라나야마 (Prāṇāyāma)를 통해 몸과 호흡을 길들였으며, 프라탸하라 (Pratyāhāra)를 통해 밖으로 흩어지던 감각의 에너지를 안으로 거두어들였습니다. 이 단단한 기초 위에서 우리는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다라나 (Dhāraṇā, 집중)의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활 시위를 당겨 과녁의 한 점을 겨누듯,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마음을 선택한 대상 위에 묶어두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다라나는 아직 시작일 뿐, 마음은 여전히 쉽게 흔들리고 주의는 흩어지곤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집중의 노력을 넘어, 마음이 저절로 고요하게 흘러 마침내 대상과 하나가 되는 더 깊은 의식의 상태, 즉 디야나 (Dhyāna, 명상)와 사마디 (Samādhi, 삼매)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마치 강물이 드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 마침내 그 일부가 되는 것과 같은, 의식의 심해 (深海)로 들어가는 여정입니다.
디야나 (Dhyāna): 끊어짐 없는 고요한 흐름
다라나 (집중)의 연습이 깊어지고 무르익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일곱 번째 계단인 디야나 (Dhyāna, 명상)의 문턱에 서게 됩니다. 『요가 수트라』는 디야나를 “그곳 (집중 대상)에서 인식 (pratyaya, 프라탸야)이 하나로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흐름 (ekatānatā, 에카타나타)”이라고 정의합니다. 다라나가 마치 점점이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마음을 대상 위에 계속해서 되돌려 놓는 과정이었다면, 디야나는 그 물방울들이 이어져 하나의 끊임없는 물줄기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기름을 따를 때 중간에 끊어짐 없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듯이, 마음이 선택한 대상 위에서 더 이상 큰 노력 없이도 고요하고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상태입니다.
이 디야나의 상태에서는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다’는 노력의 느낌이나 자각조차 점차 희미해집니다. 마음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대상에게로 향하며, 대상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의 흐름은 고요하게 이어집니다. 다른 잡념들이 끼어들 틈이 거의 없어지고, 마음은 깊은 평화와 안정감 속에 머무릅니다. 외부 세계의 소리나 감각 자극들도 더 이상 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주의력은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오롯이 대상과 함께 흐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명상 상태입니다.
디야나는 단순히 마음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대상에 대한 맑고 깨어있는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매우 생생하고 활력 있는 고요함입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대상의 본질을 더 깊이 통찰할 수 있게 되며, 마음의 더 미묘한 움직임들을 관찰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마치 고요해진 호수 표면에 하늘과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비치듯이, 디야나의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지혜를 얻기 시작합니다. 이 끊어짐 없는 고요한 흐름은 마음이 대상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마지막 단계, 사마디로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사마디 (Samādhi): 주객 (主客)이 사라진 완전한 합일
디야나 (명상)의 고요한 흐름이 더욱 깊어지고 강렬해지면, 마침내 우리는 아쉬탕가 요가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계단인 사마디 (Samādhi, 삼매)에 이르게 됩니다. 『요가 수트라』는 사마디를 “그것 (디야나)이 오직 대상 자체의 빛남 (arthamātranirbhāsam, 아르타마트라 니르바삼)으로 나타나고, 자신의 본래 모습은 마치 비어있는 듯 (svarūpaśūnyam iva, 스와루파 슈냠 이바)이 될 때”라고 설명합니다. 이 심오한 정의는 사마디 상태의 핵심적인 특징, 즉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합일을 가리킵니다.
디야나 상태에서는 여전히 ‘내가 대상을 명상하고 있다’는 미세한 주체 (나)와 객체 (대상)의 구분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사마디에서는 이 마지막 분리의 벽마저 허물어집니다. 명상하는 ‘나’라는 의식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명상 대상만이 그 자체로서 충만하게 빛납니다. 마치 강물이 바다에 완전히 합쳐져 더 이상 강물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게 되듯이, 혹은 소금이 물에 녹아 그 형태는 사라지고 물 전체가 짠맛이 되듯이,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 사이의 모든 경계가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이 사마디 상태에서는 더 이상 마음의 작용 (칫따 브릿띠)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의 물결은 완전히 가라앉고, 마음은 그 근원의 순수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요가가 추구하는 ‘마음 작용의 멈춤 (니로다하)’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오직 순수한 존재, 순수한 의식만이 남습니다.
『요가 수트라』는 사마디에도 여러 단계와 종류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예를 들어, 명상 대상이라는 ‘씨앗’ (bīja, 비자)이 여전히 남아있는 사비자 사마디 (sabīja samādhi, 유상 삼매)와, 그 씨앗마저 사라져 대상 없는 순수한 의식 상태에 이르는 니르비자 사마디 (nirbīja samādhi, 무상 삼매)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또한 집중 대상의 성격에 따라 분석적 (사비타르카), 비분석적 (니르비타르카), 성찰적 (사비차라), 비성찰적 (니르비차라) 등으로 구분되는 삼프라즈냐타 사마디 (samprajñāta samādhi, 유심 삼매)와 이 모든 구분을 넘어서는 아삼프라즈냐타 사마디 (asamprajñāta samādhi, 무심 삼매)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이러한 세부적인 구분들은 사마디라는 ‘합일의 경지’ 가 단순한 무의식 상태가 아니라, 매우 미묘하고 다양한 깊이를 가진 의식의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인 사마디에서는 ‘나’라는 개별적인 존재의 한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우주적인 실재, 즉 뿌루샤 (참된 나)가 자신의 본래 모습 속에서 온전히 깨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완전한 자유와 평화, 요가가 약속하는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다라나에서 디야나를 거쳐 사마디에 이르는 이 마지막 세 단계는 분리된 과정이라기보다는, 집중이 점차 깊어지고 정제되어 마침내 완전한 흡수와 합일로 나아가는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입니다. 빠딴잘리는 이 세 단계를 묶어 삼야마 (Saṁyama, 통제 또는 통합)라고 부르며 , 이 삼야마를 통해 수행자는 다양한 초월적인 능력 (vibhūti, 비부티)과 지혜를 얻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마침내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의식, 즉 ‘합일의 경지’ 를 회복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의식의 심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값진 보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