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당신의 삶을 위한 ‘다리’

by이호창

1-1.5. 당신의 삶을 위한 ‘다리’



우리는 삶 속에서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선을 긋고 살아갑니다. 이 경계선은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는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근원적인 고통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세상과 분리되어 홀로 존재한다는 이 감각은 우리 삶 깊숙한 곳에 불안과 결핍감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이 분리된 ‘나’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대부분 밖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받으려 합니다. 또는, 더 많은 지식을 쌓아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외적인 성취가 분리된 ‘나’를 더 강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하나의 역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밖을 향한 노력은 우리가 애초에 벗어나려 했던 그 ‘분리된 나’를 오히려 더욱 견고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식을 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지식은 ‘아는 나’와 ‘알려지는 대상’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지식을 소유할수록, ‘나’라는 주체 의식은 더욱 강해집니다. 세상은 ‘나’의 분석 대상으로 나뉘고, 앎이 깊어질수록 아는 주체로서의 고립감 역시 깊어질 수 있습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타인과 하나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나’라는 의식을 붙든 채 상대를 만나면, 그 관계는 종종 ‘나’를 확인하고 ‘나’의 결핍을 채우려는 수단이 됩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하고 ‘나’를 비추어 보며, 두 개의 분리된 자아는 완전한 합일에 이르지 못한 채 서로를 맴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처한 근본적인 딜레마입니다. 우리는 분리감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만, 그 노력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있습니다. ‘나’라는 경계선을 그대로 둔 채, 그 경계선 밖의 것들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의 울타리를 더 화려하게 치장할 수는 있어도, 울타리 자체가 주는 고립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분리감의 고통을 운명처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진정한 해결의 길은 없는 것일까요?

고대의 지혜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돌이키라고 말합니다. ‘나’의 경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경계 자체가 과연 실재하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질문하라고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즉 분리된 ‘나’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본래의 전체성과 연결되는 체험의 과정이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할 ‘다리’입니다.

이 다리는 우리가 지금껏 의지해 온 외적인 성취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신념 체계를 받아들이거나 복잡한 철학 이론을 암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머리로 이해한 지식은 또 다른 소유물이 되어 ‘나’를 강화할 뿐입니다.

진정한 다리는 우리의 가장 구체적인 현실, 즉 ‘지금 여기’의 우리 자신을 재료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거나 혹은 애써 외면했던 것들, 바로 우리의 몸, 우리의 호흡,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감정입니다. 우리는 이 구체적인 재료들을 통해 분리되었다는 ‘생각’을 넘어, 연결되어 있다는 ‘체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 번째 재료는 우리의 ‘몸 (Body)’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몸과 분리되어 살아갑니다. 우리는 몸을 ‘나의 소유물’로 여기며, 마음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도구로 취급합니다. 때로는 몸을 욕망의 근원지로 보아 억압하고, 때로는 노화와 질병의 근원지로 보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몸을 ‘통해서만’ 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몸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유일한 현실입니다.

몸을 깨달음의 장애물이 아니라, 우주와 만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로 다시 바라보는 것이 모든 수행의 시작입니다. 몸의 감각 하나하나는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생명의 진실을 전달합니다. 몸의 긴장을 알아차리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나’라는 생각의 세계에서 벗어나 실제의 세계로 돌아오는 첫걸음입니다. 몸은 영혼의 감옥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지혜가 깃든 신성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재료는 우리의 ‘호흡 (Breath)’입니다. 호흡은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내’가 숨을 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바깥의 공기를 받아들이고 다시 내보내는 교환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세상과 분리되어 홀로 숨 쉴 수 없습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우주 전체를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숨을 내쉬는 것은 ‘나’를 다시 우주로 되돌려주는 행위입니다. 호흡은 안과 밖이 끊임없이 하나로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 단순한 호흡의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나’라는 분리된 생각에서 벗어나 더 거대한 생명의 흐름과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호흡은 또한 과거와 미래라는 생각의 시간을 떠나, 유일하게 실재하는 ‘지금 이 순간’에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는 닻이 됩니다.

세 번째 재료는 우리의 ‘마음 (Mind)’과 그 작용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분리감은 사실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관념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붙이고, 판단합니다. ‘이것은 나다’, ‘저것은 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라고 세상을 조각냅니다. 우리는 이 마음의 작용, 즉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나’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우리는 이 생각의 흐름에 완전히 빠져, 스스로가 생각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이 소란스러운 마음의 표면에서 벗어나는 길이 필요합니다. ‘요가 (Yoga)’라고 불리는 고대의 지혜는 바로 이 마음의 작용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기술을 체계화했습니다.

이 길은 생각을 억지로 멈추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며, 또 다른 폭력이 될 뿐입니다. 대신, 우리는 한 걸음 물러나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그저 바라보는 법을 배웁니다. 마치 강물의 흐름을 지켜보듯, 판단 없이 알아차리는 연습을 합니다.

이 고요한 관찰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이나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지켜보는 더 깊고 고요한 ‘의식’ 그 자체입니다. 마음의 물결이 잠잠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동안 소음에 가려져 있던 내면의 깊은 평화, 즉 본래부터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바탕을 마주하게 됩니다.

네 번째 재료는 우리의 ‘에너지 (Energy)’, 즉 삶의 모든 경험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는 길 외에, 정반대처럼 보이는 또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경험과 감정을 피하거나 억누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 담긴 거대한 에너지를 활용합니다.

우리는 보통 특정한 감정들을 ‘부정적인 것’으로 분류합니다. 분노, 두려움, 질투, 그리고 강렬한 성적 욕망까지, 우리는 이런 것들이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감정들을 억압하거나 외면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자신을 ‘좋은 나’와 ‘나쁜 나’로 다시 분리하는 행위입니다. 스스로와 전쟁을 벌이면서는 결코 온전한 평화에 이를 수 없습니다.

‘탄트라 (Tantra)’라고 불리는 이 대담한 길은, 이 모든 에너지가 본래 신성한 힘의 다른 표현이라고 선언합니다. 분노는 잘못 사용된 거대한 힘일 뿐이며, 욕망은 본래의 하나됨을 향한 강력한 그리움입니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아니라, 그 에너지를 다루는 우리의 미숙함에 있습니다.

이 길은 쾌락에 빠지는 방종과는 정반대에 있습니다. 이것은 불을 다루는 고도의 기술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강력한 에너지의 불길 속으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가, 그 불길에 타버리는 대신 그 힘을 자각과 변형의 연료로 사용합니다. 이 길은 삶의 어떤 부분도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독이라고 여겼던 것조차 약으로 바꾸어내는 변형의 지혜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몸과 호흡, 마음과 에너지를 재료로 하여 놓이는 이 다리는, 우리를 지금의 삶에서 벗어난 어딘가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다리는 우리를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으로 더욱 깊이 돌아오게 만듭니다.

이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어느 날 아침 문득 낯설게 느껴졌던 내 손의 주름에서 기나긴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매일 무심코 마시던 차 한 잔의 따뜻함에서 태양과 구름과 땅의 모든 연결을 느끼는 일입니다. 나를 괴롭혔던 타인의 말 속에서 그 사람의 두려움과 ‘나’와 다르지 않은 고통을 함께 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이 분리감은, 사실 우리를 본래의 집으로 안내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였습니다. 그 고통이 있었기에 우리는 비로소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안으로 돌아올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찾아 헤매던 진리는 저 멀리 광활한 우주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 당신의 몸짓과 숨결 속에 이미 온전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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