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4.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

by이호창

5-21.4. 시몬 베유 (Simone Weil)의 '중력과 은총' 및 주목의 기도



20 세기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시몬 베유 (Simone Weil, 1909-1943)는 매우 독보적이고 타협 없는 영적 투쟁의 궤적을 남긴 사상가입니다. 그녀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 수준의 철학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학문적 상아탑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공장 노동자와 농장 일꾼들의 가혹한 노동 현장으로 직접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육체적 노동의 피로와 빈곤을 관념이 아닌 실제 자신의 육체로 겪어냈습니다. 이 철저한 노동과 고통의 체험 한가운데서 그녀는 가톨릭 성당을 방문하거나 영적인 시를 암송하던 중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력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세례를 받고 공식적인 교회의 제도로 들어가는 것을 끝내 거부했습니다. 이방인과 이단자 그리고 억압받는 모든 자들과 함께 교회 문밖에서 연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의 사상은 전통 신학의 교리적 틀을 벗어나 인간의 심리적 법칙과 기독교의 십자가 신비를 가장 투명하고 엄밀한 철학적 언어로 결합한 독창적인 체계를 이룹니다.

시몬 베유의 영성 철학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구조는 두 가지 상반된 힘의 법칙입니다. 그녀는 이 두 가지 힘을 중력 (La Pesanteur)과 은총 (La Grâce)으로 규정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중력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인간의 심리와 영혼의 차원으로 정확하게 치환한 개념입니다. 중력은 인간의 자아가 자신을 확장하고 보존하며 타인을 지배하려는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물리적인 돌맹이가 땅으로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낮은 곳을 향해 추락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반드시 타인에게 그 고통을 전가하여 자신의 내적 균형을 맞추려는 심리적 보상 심리 역시 영적 중력의 정확한 작동 결과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과 권력을 추구하고 영광을 갈망하며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외부의 위안을 찾는 모든 행위는 이 심리적 중력의 철저한 지배 아래에 있습니다.

베유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 안에는 이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단언합니다. 중력을 이기고 영혼을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은총뿐입니다. 은총은 인간의 심리적이고 자연적인 법칙을 완전히 역행하는 초자연적인 에너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은총이 아무 곳에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베유는 은총이 오직 빈 공간 (Le Vide)으로만 들어온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자아가 중력에 이끌려 욕망과 권력으로 꽉 차 있을 때 은총이 개입할 물리적이고 영적인 공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은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 자신의 자아를 비우고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철저한 진공 상태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자아의 팽창을 멈추고 빈 공간을 감수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중력의 법칙을 위반하는 기적의 시작입니다.

이 빈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베유는 ‘창조 해체 (La Décréation)’라는 매우 독창적이고 심오한 신학적 개념을 제시합니다. 기독교의 창조는 신이 무로부터 만물을 만들어낸 사건입니다. 베유는 신의 창조 행위를 신의 팽창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축소와 물러남으로 해석합니다.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이 자신의 권능을 스스로 축소하고 자리를 비워주었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 의지를 지닌 독립된 존재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자신을 부인하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신을 향해 돌려드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사랑의 방식은 신이 부여한 자신의 독립된 자아와 자유 의지를 스스로 파기하고 해체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무화시킴으로써 신이 다시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채울 수 있도록 공간을 반환해야 합니다. 창조 해체는 육체적인 생명을 끊는 자살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나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이기적인 의지와 소유욕을 완전히 파괴하여 신의 뜻만이 작동하도록 자아를 근본적으로 지워버리는 영적인 권리 포기 선언입니다.

베유가 제시한 창조 해체의 철학적 구조는 유대 신비주의 사상인 카발라 (Kabbalah)의 핵심 우주론과 매우 정밀한 개념적 유사성을 공유합니다. 16 세기 유대교 신비주의 학자인 이삭 루리아 (Isaac Luria, 1534-1572)는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침춤 (Tzimtzum)이라는 교리를 정립했습니다. 침춤은 신의 자기 수축 혹은 거두어들임을 의미합니다. 루리아의 신학에 따르면 절대적이고 무한한 신이 유한한 물질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한하게 퍼져 있는 자신의 현존을 특정 지점에서 거두어들이고 물리적인 빈 공간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신이 자신을 비워낸 이 텅 빈 공간 안에서 비로소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형성되었습니다. 세계의 창조는 신의 에너지가 외부로 뻗어나간 결과가 아니라 신이 스스로를 제한하고 뒤로 물러선 철저한 철수와 양보의 결과라는 것이 카발라의 핵심적인 창조론입니다.

베유의 창조 해체는 이 카발라의 침춤 교리를 인간의 윤리적이고 영적인 차원으로 완벽하게 역전시킨 실천적 과제입니다. 카발라는 신의 수축을 우주가 생성된 과거의 형이상학적 사건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합니다. 반면 베유는 이 신성한 수축을 인간이 현재의 일상 속에서 주체적으로 모방하고 반복해야 할 가장 강력한 신앙적 의무로 전환시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무한성을 수축하고 빈 공간을 내어주었듯이 인간 역시 신과 결합하기 위해 자신의 팽창하는 자아를 수축시켜 신이 머물 수 있는 빈 공간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신의 하강과 인간의 영적 상승은 모두 존재를 비워내는 이 철저한 수축의 운동을 통해서만 성립됩니다.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수축하고 창조를 해체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동반합니다. 베유는 이 고통을 불행 (Le Malheur)이라는 특별한 개념으로 분류합니다. 불행은 일반적인 육체의 질병이나 일상적인 슬픔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불행은 육체적인 고통, 슬롯적인 철저한 소외, 그리고 영혼의 깊은 수치심이 동시에 결합하여 인간의 인격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입니다. 불행에 빠진 인간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며 신조차 자신을 버렸다는 절대적인 버림받음의 공포를 체험합니다. 그녀는 이 불행의 완벽한 모델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육체의 형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슬롯적으로 철저히 조롱당했고 신에게서마저 버림받았다는 절대적인 단절감을 경험했습니다. 이 철저한 부재와 공백의 순간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신의 뜻에 온전히 복종했습니다. 베유는 인간이 불행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중력의 충동을 거부하고 그 빈 공간을 조용히 견뎌낼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온전하게 참여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고통 속에서 자아가 찢겨나갈 때 발생하는 그 틈새를 통해서만 신의 은총이 직접적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자아의 해체와 빈 공간을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유지하는 인식론적 메커니즘은 주목 (L'Attention)이라고 합니다. 베유에게 기도는 소리 내어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특정한 종교적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진정한 기도는 철저한 주목으로 구성됩니다. 그녀가 말하는 주목은 근육을 긴장시켜 특정 대상에 집중하는 이성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목은 내면의 모든 생각과 판단 그리고 선입견을 정지시키고 마음을 텅 비우고 열어두는 수동적이고 철저한 대기의 상태입니다. 인간은 어떤 진리를 자신의 지성으로 포획하거나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저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진리가 스스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절대적인 고요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지성의 작용을 멈추고 자아의 개입을 차단한 채 외부의 거대한 진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이 텅 빈 관찰의 상태가 바로 시몬 베유가 정의하는 가장 높은 차원의 기도입니다.

주목의 기도는 종교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학문적 탐구와 이웃 사랑의 영역으로 정확하게 확장됩니다. 그녀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기하학 문제를 풀거나 라틴어를 번역하는 학습 과정 자체가 이 주목의 능력을 훈련하는 가장 탁월한 영적 실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학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잡념을 비우고 문제 자체에 오롯이 시선을 고정하는 훈련은 훗날 신의 은총을 기다리는 기도의 훈련과 완벽하게 동일한 인지적 구조를 지닙니다. 나아가 이 주목의 시선이 고통받는 타인을 향할 때 그것은 기독교적 이웃 사랑의 최고 형태가 됩니다. 베유가 말하는 연민은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거나 동정심을 베푸는 자아의 확장 행위가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의 자아를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고통받는 타인의 존재 자체가 내 안에 있는 그대로 들어오도록 나를 지워내는 주목입니다. 나의 판단과 충고를 멈추고 상대방에게 온전한 빈 공간을 내어주는 것만이 타인의 불행을 온전하게 수용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시몬 베유의 철학은 종교를 인간의 위안이나 심리적 안정제로 전락시키는 현대의 세속화된 신앙을 철저하게 해체합니다. 신앙은 내 삶의 조건을 개선하거나 자아를 강화하기 위해 신의 능력을 동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실용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참된 기독교적 영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팽창시키려는 인간 심리의 중력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스스로를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가혹한 역행의 과정입니다. 십자가는 자아를 긍정하는 축복의 상징이 아니라 자아를 파괴하는 절대적인 수단입니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수축하는 거대한 희생을 감내했듯 인간 역시 무한한 진리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 안의 모든 이기적 의지를 파기하는 창조 해체의 노동을 감당해야 합니다. 판단을 중지하고 텅 빈 내면을 유지하며 진리와 타인을 기다리는 주목의 실천은 이기적인 중력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은총의 법칙을 증명해 내는 가장 명료하고 본질적인 신앙의 실천적 방법론으로 역사 속에 정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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