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4. 아타나시우스 키르히어

『오이디푸스 이집티아쿠스, Oedipus Aegyptiacus』

by이호창

4-14.4. 아타나시우스 키르히어 (Athanasius Kircher)의 오이디푸스 이집티아쿠스



17세기 서구 지성계는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적 성과와 과학 혁명의 맹아가 교차하는 역동적인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콜레지오 로마노 (Collegio Romano)의 교수이자 예수회 수사였던 아타나시우스 키르히어 (Athanasius Kircher, 1602-1680)는 당대 유럽 학문 세계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포괄적인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려 시도했습니다. 지리학, 천문학, 언어학, 의학을 망라하는 수십 권의 저서를 남긴 그는 동시대인들로부터 ‘100가지 기술을 가진 스승 (Magister Centum Artium)’이라 불리며 유럽 최고 지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키르히어의 학문적 지향점은 단편적인 사실들의 수집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학문과 종교적 파편들을 가톨릭 신학이라는 단일한 진리의 축으로 통합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적 기획의 중심에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원하여 발전해 온 기독교 카발라 (Christian Kabbalah)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키르히어는 이 유대교적 신비주의 방법론을 고대 이집트의 지혜와 결합하여 기독교 신학의 보편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키르히어는 그의 학문적 야심을 집약하여, 1652년부터 1654년에 걸쳐 『오이디푸스 이집티아쿠스, Oedipus Aegyptiacus』라는 방대한 분량의 저작을 출간했습니다. 이 바카라의 제목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스핑크스가 낸 난해한 수수께끼를 풀어낸 영웅 오이디푸스의 이름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키르히어는, 수천 년 동안 해독되지 않아서, 마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유럽인들에게 완벽한 비밀로 남아있던,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Hieroglyphica)의 원리를 자신이 최초로 규명해 냈다는 학문적 자부심을 이 제목을 통해 명확하게 선언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단순히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고고학적 성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집트 상형문자 안에 감추어진 상징 체계를 분석함으로써, 그 안에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성육신 등 핵심 교리를 지시하는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계시가 보존되어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키르히어의 연구는 ‘고대 신학 (Prisca Theologia)’이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관점은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에게 완전한 진리를 계시하셨고, 이 진리가 에녹과 노아를 거쳐 인류에게 전승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키르히어는 대홍수 이후 노아의 자손인 함의 후예들이 이집트에 정착하여 고대의 순수한 지혜를 보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전설적인 지혜의 스승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Hermes Trismegistus)가 이 순수한 진리를 시각적인 기호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이집트 상형문자입니다. 이후 이집트의 궁정에서 성장한 모세는 이 상형문자에 담긴 신성한 지혜를 완벽하게 전수받았고,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준 비밀스러운 구전 전통이 유대교의 카발라로 발전했습니다. 이 계보학적 논리를 통해 키르히어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히브리어 카발라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신성한 지혜를 담고 있는 두 가지 다른 표현 양식일 뿐임을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키르히어에게 이집트 상형문자는 단순히 음성을 기록하기 위한 표음문자 (Phonogram)나 일상적인 소통을 위한 실용적인 기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상형문자를 하나님의 이데아와 우주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가장 직접적이고 순수한 형태로 시각화한 이상적인 표의문자 (Ideogram)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유대교 카발라 학자들이 히브리어 알파벳의 형태와 획 하나하나에 우주 창조의 신비와 신의 속성이 내재하여 있다고 믿었던 ‘문자적 신비주의’를 이집트의 언어 체계로 그대로 확장한 것입니다. 키르히어는 로마의 오벨리스크 (Obelisk)에 새겨진 동물과 사물들의 문양을 분석하면서, 그것들이 물리적인 동물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신의 지혜, 천사들의 위계, 그리고 우주를 관통하는 영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나타내는 암호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기호학적 접근은 언어 자체가 신의 본질을 매개하는 신비로운 도구라는 기독교 카발라의 핵심 원리를 완벽하게 수용한 결과입니다.

『오이디푸스 이집티아쿠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업은 카발라의 방법론을 세계의 다양한 종교와 철학 전통으로 확장하여 거대한 비교종교학적 통합을 시도한 부분입니다. 키르히어는 유대교 카발라에서 하나님의 신성하고 권능 있는 이름으로 간주되는 72개의 신성한 이름 (Shemhamphorasch)의 구조를 분석했습니다. 이 72개의 이름은 구약성서 출애굽기 14장의 특정 구절을 구성하는 히브리어 문자들을 수비학적인 원리에 따라 재배열하여 도출된 것입니다. 카발라 학자들은 이 이름들이 우주를 통치하는 72명의 천사를 지시하며 하나님의 속성을 세분화하여 보여준다고 믿었습니다. 키르히어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수집해 온 방대한 언어학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콥트어, 아랍어, 시리아어, 페르시아어, 심지어 신대륙의 언어와 중국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72개 민족의 언어에서 신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찾아내어 이 카발라의 72개 이름과 대응시켰습니다. 그는 각기 다른 민족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로 신을 부르지만, 그 이름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편적 계시 아래 하나의 체계로 묶일 수 있음을 논증했습니다.

이 논증의 구체적인 결과물은 바카라에 수록된 방대한 원형 도표와 기하학적 다이어그램으로 시각화되었습니다. 키르히어는 도표의 정중앙에 만물의 근원인 히브리어 테트라그라마톤 (YHWH)을 배치하고, 그 중심으로부터 밖으로 뻗어 나가는 방사형 구조를 따라 72개 민족의 언어로 표기된 신의 이름들을 배열했습니다. 이 도표는 바벨탑 사건 이후 전 세계로 흩어진 인류의 언어들이 겉으로는 서로 단절되고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원과 목적지에는 단 하나의 유일한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하학적으로 증명하는 장치였습니다. 그는 라틴어와 헬라어 같은 유럽의 언어뿐만 아니라, 한자로 표기된 동양의 신 (神)이나 아랍어의 알라 (Allah)까지도 이 원형의 구조 안에 정확한 위계를 부여하여 편입시켰습니다. 이는 당대 유럽 지식인들이 수집할 수 있었던 모든 인류학적 및 언어학적 데이터를 가톨릭 신학의 질서 안으로 포섭한 백과사전적인 성취였습니다. 이 시각적 결과물은 세상의 어떠한 종교적 문화나 언어의 다양성도 결국 기독교적 진리라는 하나의 중심을 향해 수렴된다는 것을 명증하게 보여주었으며, 기독교 카발라가 유럽과 유대교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인 차원의 보편적 진리로 확장하려는 극적인 지적 팽창주의를 대변합니다.

이 과정에서 키르히어는 당대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검열 속에서 이단적 요소로 간주될 수 있는 타 종교의 관행을 철저히 배제하고 정통성을 수호하는 방법론적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고대 이집트 종교와 이교도들의 철학 안에 빛과 어둠이 혼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교도들이 동물 형상의 상형문자를 보고 짐승 그 자체를 숭배하게 된 것은 우상숭배라는 어둠이자 타락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상형문자가 원래 지시하고자 했던 내면의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와 삼위일체의 흔적은 진리라는 빛입니다. 키르히어의 과제는 이교의 외피라는 어둠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진 신성한 빛만을 추출하여 기독교 신학의 제단 위에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카발라와 이집트 지혜를 주술적이거나 마법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단죄하고, 오직 신의 섭리를 지성적으로 관조하고 삼위일체의 신비를 입증하는 변증학적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키르히어의 상형문자 해독은 완전한 오류였습니다. 19세기 초 장프랑수아 샹폴리옹 (Jean-François Champollion)이 로제타스톤 (Rosetta Stone)을 바탕으로 상형문자가 표음 문자와 표의 문자의 복합적인 결합임을 밝혀냄으로써, 상형문자가 순수한 형이상학적 상징 기호라는 키르히어의 전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었습니다. 키르히어는 언어의 역사적, 문법적 실제 구조를 파악하기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기독교 카발라의 신학적 틀에 맞추어 문자의 의미를 자의적이고 사변적으로 창조해 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타나시우스 키르히어의 『오이디푸스 이집티아쿠스』가 지니는 지성사적 가치와 기독교 카발라 체계 안에서의 위상은 결코 훼손되지 않습니다. 그의 저작은 17세기 지식인이, 분열된 세계와 다양한 문화적 타자들을 마주하며, 그 모든 차이를 포괄하는 단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 체계를 세우려 했던 숭고한 지적 투쟁의 기념비입니다. 그는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요한 로이힐린이 문을 연 언어 신비주의와 혼합주의적 사유를 당대 최고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동원하여 가장 방대한 규모로 밀어붙였습니다. 문자와 상징이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우주의 질서를 담고 있는 성례전적 매개체라는 그의 확고한 신념은 중세와 르네상스의 신비주의가 도달할 수 있었던 형이상학적 사유의 한 정점을 보여줍니다. 키르히어의 거대한 기획은 실증적인 사실의 토대 위에서는 그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 기획은 인간의 언어와 상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무한성을 탐구하려 했던 시도로서 의미가 큽니다. 이는 기독교 카발라가 도달했던 가장 극적이고 장엄한 사상적 성취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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